꼭 다시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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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다
참.. 저 멀리 미국땅에서도 작은 스마트폰 하나로
얼굴 마주보며 연락할 수 있는데..
수도권에서 차타고 두세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전화 통화 하나 못한다는게 참..
정말 가슴아픈 역사네요 . 누구를 원망해야하는지..
하루빨리 종전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다시 만나 얘기해 하늘이 허락하는 날
그때 다시 만나 너에게 나 할 말이 참 많은데
...
이 노래 들으면서 이 사연을 보니 발랄한 걸그룹 노래가
이토록 슬플수도 있네요.
마지막 멘트가 가슴 한켠을 찌르네요ㅜㅜ
진짜....
뉴스속보 한번 타이밍 기막히네
그런데 나베는 종전선언 하면 안된데요
베트남처럼 공산화 될거래요
지금 베트남가서 북미 정상이 만나는건 누구냐? 나베야?
제 할아버지 가족도 비슷했습니다. 만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가 인민재판으로 돌아가시고 셋째형님은 집안이 몰살당하는걸 막으려고 억지로 국공내전에 공산군으로 참여. 막내였던 할아버지는 큰 형님과 함께 고향과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도망쳐 지금의 북한으로 도망가서 신분을 숨기고 학생으로 있다가 국군이 진주하자 길주로 올라가서 친척집에 머물렀는데 얼마 안 있어 중공군이 개입. 성진에서 국군 3사단 철수할때 조치원호라는 배를 타고 아무 연고도 없이 구룡포에 도착. 길주 청년들로 구성된 군속 신분의 정찰대로 전선에서 복무하시고 몇 번 죽을고비를 넘기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미국에 사는 친척을 통해 그때까지 기억하고 있던 주소로 고향 땅에 편지를 보냈고 셋째 형님으로부터 40년만에 편지를 받았습니다. 알고보니 셋째 형님은 국공내전 이후 북한군에 편입되어 한국전쟁 때 내려왔다가 부상을 당했다고 하시더군요. 참전 시기와 지역은 달랐지만 한쪽은 남 한쪽은 북이었다는게 ..그리고 그게 저희 집안 이야기였다는게 슬프면서도 신기하기도 하더군요. 안타깝게도 셋째 형님은 서신 왕래 몇년 후 뵙기전 돌아가셨고 이후 중국과 수교가 맺어지면서 할아버님은 50년만에 고향 땅을 방문하고 그때까지 살아계시던 둘째 누님과 친척들을 뵙고 자기 손으로 묻었던 아버지 묘도 방문하셨습니다....이런 집이 한 둘이 아니었겠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랍니다.
지금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의 이산가족들만이라도 먼저 자유왕래를 했으면...
이산가족들이 가장 용서가 안 되는게 김씨일가 일텐데 용서를 해야지 해결이 된다는게 뭔가 슬프다
소설가 박완서님도 서울에서 전쟁을맞이하고 피난가지않고 서울에 계속 계셨는데 그분책보면 인민군과 국군사이에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나와요
아니 같은나라사람끼리 편을가르라니
저렇게 한집안에서도 갈라지고
진짜 환장할노릇이었을듯
탈북자들은 몰래 몰래 전화하고 돈 부치고 한다던데
우리는 왜 못 하나요. 우리가 못 하면 탈북자도 못 하게 해야되는게 아닐지..
동족 민족 상잔의 비극.... 인데
어떤 것들은
전쟁 하자고 난리니...
에휴...
우리집도 기구한 사연이...
외가 동네가 전쟁 전에는 북한땅이었음.
외삼촌 중 한 분이 인민군 파일럿.
그당시만 해도 외가가 좀 살았던 집이라
비행훈련 나올 때마다 외삼촌한테서 연락 오고 그랬다고 함.
그러면 시간 맞춰서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마당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비행기에다 손 흔들어 줌.
전쟁 끝나고 외삼촌 소식 끊김.
우리 아버지가 육군 중사 때 엄마랑 결혼함.
우리 아버지 진급 안 됨.
생사도 모르는 외삼촌 때문이었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람.
86학번인 큰형이 육사 가려고 했더니 신원조회에서 걸림.
존재 조차도 모르고 있던 외삼촌 때문임.
그냥 4년제 대학교 가서 ROTC 지원함.
신원조회에서 또 걸림.
학사장교 지원함.
또 걸림.
그 때 쯤, 연년생인 둘째형이 육사 지원함.
역시나 걸림.
큰형이랑 둘째형이랑 불꺼진 방에서 우는 걸 봤음.
다음날 엄마가 외삼촌들한테 가서 울며불며 한바탕 난리침.
마지못해 사망신고 함.
그 후로 신원조회에서 걸릴 일은 없었지만
이미 큰형, 둘째형 인생 초장부터 고춧가루 뿌린 후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