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912002

사진, 그 기록의 중요성

회원님들 즐거운 설 명절 보내고 계신지요.
명절이지만 본가가 바로 아랫집이라 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
야심한 밤에 역시 센티한 감성은 더 살아나는데요.
오늘은 그냥 잠들기가 어려워 흔적 남겨봅니다.
그냥 단순히 저만의 생각이니 편하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은 무엇인가?
왜 사진을 찍는가?
이 두 가지 물음은 사진기를 쥐고 있다면,
사진에 대한 애착이 생겨날수록,
반드시, 그리고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입니다.
프로는 위 물음에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있지만,
초보는 계속 답이 돌고 돕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원하는 장면을 담고,
원하는 색을 표현하고,
원하는 사진을 골라내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참 못 찍는다는 것을요. ^ ^;
이는 진정 사실입니다.
대학시절,
선배의 권유로 사진기를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 열심히 배웠습니다.
3년을 낑낑대면서 나름 기초부터 차근차근 찍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
사진 찍기 시작한지 같은 과 동기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은지 3개월 되었다는데 이미 저를 한참 추월하고 있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비교 자체를 하는 것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이 일은 두고두고 제 가슴 속에 남아 저의 사진에 대한 자세를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동기는 중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배우고, 고등학교 시절 미술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였는데
확실히 그 감각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당시에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제가 찍은 사진은 단 한 구석도 좋아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정형화된 듯 자유롭고, 파격적인 듯 정제된 느낌의 사진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랄까요.
그 때, 사진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점점 사진기를 멀리하다 1년 정도 사진기를 손에서 놓게 되었습니다.
의욕 상실이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군대를 갔고, 아주 우연히도 그 곳에서 사진병으로 복무하면서 제 사진 인생은 2막이 시작 되었습니다.
군대의 사진은 오로지 행사, 각 잡힌 사진.
반드시 찍어야 하는 컷을 잡아 찍는 사진들었습니다.
그런데 2년간 이 같은 경험이 저에게는 참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물론 실력도 그 전에 비한다면 전문적 사수들에게 배워 발전이 있었습니다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사진을 꾸준히 찍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제 사진 생활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전역할 무렵 사진병 막내 후임이 군에 들고 온 RF 카메라, R3m을 구경하고 그 매력에 빠져
뭐에 홀린 듯 M3과 DR을 덜컥 구입했습니다.
내무반에서 미친 놈처럼 히쭉거리던 때가 생각나네요.
말년 병장이니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 덜 눈치 보면서 라이카에 푹 빠져 들게 되었고,
그렇게 제 사진생활은 2막이 시작됩니다.
전역 하자마자 와이프를 만나 2년을 연애하면서 한 시도 빼놓지 않고 챙겨 다닌 것은 라이카 M3였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날 무렵 저는 어떤 필름에 담아야 할까를 놓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또 이를 정리할 홈페이지가 필요해서 부랴부랴 만들다보니 심플하다 못해 참 너무나 담백하기 짝이 없게 만들게 되었지요.
그 홈페이지가 제가 매 사진마다 소개하는 그 홈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초장에 잘 만들었어야는데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때 시작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저의 사진 생활은 온전한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행복합니다.
사진은 당연히 모자라지만, 제가 행복한 이유는 그 간의 기록이 온전히 남았다는 것입니다.
원하는 사진을 찍고, 원하는 색을 구현하고, 원하는 장면을 골라내는 일은 역시 지금도 어렵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사진기를 놓는 그 순간까지도 저에겐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에게 사진은 그저 기록하면 됩니다.
사진기, 렌즈...도구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원바디 원렌즈가 프로의 미덕이지만,
저는 초보라 욕심이 앞서 궁금하면 이것 저것 다 씁니다.
이처럼 사진으로서는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제가 스스로 가장 자신 있게 생각하는 부분은
저는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브레송의 1장과 제 사진 1장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유명 사진 작가의 잘 찍은 사진 1장의 가치는 엄청나지만,
제 사진은 30년 정도는 묶어 놓아야 조금 볼만한 사진이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첫 째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저는 매일을 거르지 않고 사진을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허락되는 한 계속할 것입니다.
제 목표는 전몽각 선생님의 '윤미네 집'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사진은 무엇인가?, 왜 사진을 찍는가? 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사진은 기록이고, 그 기록의 중요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새 해 벽두부터 두서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원님들과 즐거운 사진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 ^

댓글
  • Dwarf™ 2019/02/05 01:49

    제게 카메라는 재밌는 장난감, 사진은 내가 보았을 때에 '드라마틱하다'고 느낀 장면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도구인 것 같습니다.
    사진이 좋은 것은 필력이 없어도 시를 쓸 수 있고, 그림솜씨가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들을 계속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 그리고 같은 사물을 완전히 다른 각도로 접근해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일상을 기록하는 도구로서의 카메라, 사진도 매우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잘 봤습니다~.

    (sfIAlL)

  • 갓차맨 2019/02/05 01:49

    요즘 뭔가 제가 생각하던 것과 어느정도 감정이 공유되는 부분이 있어서 글을 남기네요
    내가 본 순간들을 인생에서 기록하고 싶다 그러나 그걸 좀 더 멋있게 담고싶다 라는 욕심이 생기는 요즘이었어요
    저는 미술전공을 했고 심지어 대학교때 수동카메라를 들고다니며
    전공 중 사진 수업도 받았었는데
    제가 요즘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사진을 열심히 찍고 다니는 걸 주위사람들이 보면 왜 그렇게 사진을 찍냐고 묻습니다
    작가할거냐고 스튜디오 하려고 하냐고
    대학졸업 후 미술과는 거리가 먼 요식업을 하고 살았기에
    이런 모습이 지금 제 주위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나 봐요.
    내가 했던 '예' 쪽과 내가 거리가 이렇게 멀어졌었구나.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럴수록 내가 더 잘찍어야 지금 내 이런 행위도 인정받는거다 생각하며 뭔가 저를 혹사시켰던 것 같습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본질적으로 내가 왜 카메라를 다시 들었는지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네요
    윤미네집 정말 눈시울이 붉어지며 인상깊게 봤던 책이었습니다
    m10mode님 가족만의 윤미네집 기대됩니다.. ^^

    (sfIAlL)

  • 론말보 2019/02/05 02:09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모두 "괜찮은 소설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모두 "괜찮은 화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여견이 되는 만큼, 능력이 되는 만큼만 즐기면 됩니다.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사진의 특성상, 기계가 이미지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또, 예술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뭔가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즐기시는 것 같네요. 오래 즐기시길 바래요~

    (sfIAlL)

  • 사진보초 2019/02/05 02:15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해준다.. 사진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sfIAlL)

(sfI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