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의 봉건제도는 프랑크 제국이 무너지면서 생긴 유럽대륙의 대혼란과 외적의 침략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기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대신 자신들을 보호해줌을 계약함으로 생겨났다. 기사도 기사 나름 장비를
유지해야했기에 지속적으로 돈이 필요했고 서로간의 이익이 맞아 떨어져 생긴거라 볼 수 있다.
백성들은 기사에게 그 기사는 더 많은 병력을 거느린 기사에게.. 이하 반복으로
영주는 대영주에게 보호를 약속받고 대영주는 왕에게 상호 보호를 약속 받는 식이었다.
이런 봉건제도는 방어에 특화되어 있는 제도이기에 상대방을 공격할때는 큰 문제에 봉착한다.
철처히 계약으로 이행되는 봉건제 때문에 아무리 권력 높은 왕이라도 계약서 원정시 계약 이상의 일수로 기사를
부려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통 기사들이 원정에 나서면 30~40일 남짓으로 함께했다. 이외에도 각종 세부 계약
때문에 대규모 병력을 일으켜 남에 땅을 친다는 건 사실 호락호락한게 아니었다.
1066년 잉글랜드 왕위전쟁 때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은 잉글랜드를 치기 위해 병력을 소집했으나 그의 영주들은
"우리 계약서에는 노르망디 밖으로 원정하는 건 없으니 못가요." 라며 소집을 거부하는 일도 발생했으며
결국 겨우 소집된 병력들은 주로 전리품을 약속받고 한탕 벌려는 가난한 기사들과 농민들이 주류였다(..)
뭐 계약서에 외부로 나가 싸우는게 가능했다 한들 기사들이 계약서 이상의 일수를 초과해서 싸워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국왕들은 기사들에게 '초과근무 수당'을 줘야했으며 이게 꽤나 돈이 되기에 많은 영주들은 다른
군주와 단기계약을 맺고 투잡을 뛰는 등 '전쟁 = 돈벌이' 공식이 성립된 것이다.
아예 13세기즘 되면 영주들이 직접 나가서 싸우는 대신 군역세를 대신 내고 전투에 참여를 안하는 판이 되버리니
결국 그 군역세를 받은 왕은 영주들 대신 싸워줄 병사와 기사들을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전개덕에 중세유럽의 용병 시장은 그야말로 대전성기을 갖게된거시다.
기사의 충성심 운운 하는건 일종의 판타지였지
그건 아님. 충성심은 있었음. 헌데 그건 영토가 없는 평기사와 제후의 관계고, 제후와 제후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계약.
기사도 이미지가 너무 미화 된거 같다
막짤에 5번뭐야 ㅋㅋㅋ졸귀네
그래서 위조와 억지가 판을 쳤다고함
어디어디 강까지가 계약임 땅땅
ㅇㅇ 어디어디(같은 이름 다른지역)강까지 맞음
이런식
그치, 기사도는 그저 사무라이정신이엿지
솔직히 가만히 있어도 먹고살만한데 굳이 남동네 가서 더 벌려고 그러고 싶지는 않을듯.
아니근데 워로드 아조씨 4만년 연재는 오늘 안해요?
한마디로 지역 유지급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