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꺄아악-!! "
스물여덟, 청년은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이 돌처럼 굳어 움직이질 않았고, 앞유리 너머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를 차로 치었다.
죽었을까? 저 모습은 역시 죽었겠지. 살인자. 어린아이를 죽인 살인자. 끔찍한 살인자. 스물여덟 처음, 60개월 할부로 산 첫차가 너무 기뻐서 밤새 달리다 어린아이를 쳐 죽인 살인자.
청년은,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은 움직일 줄 몰랐고, 앞유리 너머 여인을 보던 시선도 돌아갈 줄 몰랐다.
아이를 안고서, 끝없을 것 같던 비명을 지르던 여인이 드디어, 청년을 돌아보았다.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눈빛으로 청년을 돌아보았다.
청년의 정신이 아찔해지던 그 순간,
" ?! "
벌떡 일어나 차를 향해 달려들던 여인의 모습이-, 마네킹처럼 정지했다!
밤의 도로가, 주변의 모든 것이 시간이 멈춘 듯 정지했다!
그리고-,
" 안녕하십니까? 생명교환 서비스입니다~ "
" 으아악?! "
옆자리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청년은 기겁하며 물러났다!
아무도 없어야 할 옆좌석에, 나비넥타이 정장 차림의 사내가 웃고 있었다!
청년이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힌 사이에, 사내가 설명을 시작했다.
" 저희 일이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라, 잘 모르실 테니~ 설명드리겠습니다. 방금 어린아이를 죽이셨죠? "
" 으어어...?! "
" 만약 고객님께서 치어 죽인 그 생명이, 어린아이가 아닌 다른 존재라면 어떻겠습니까? 고양이? 개? 구관조? 금붕어? "
사내는 말을 하며 손을 휘저었고, 그때마다 허공에 동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청년은 경악한 얼굴로 사내를 보았고, 사내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 지금 이 사고를 제가 바꿔드리겠다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아닌, 다른 것을 치어 죽인 것으로 말입니다. "
청년의 눈이 급히 확장하며, 몸짓이 다급해졌다! 이 사고를 되돌릴 수 있다고? 저 어린아이를 죽이지 않은 거로 할 수 있다고??
" 저, 정말입니까?! 정말로 그게 가능합니까?! "
" 물론입니다. 단! 요금은 내셔야죠? "
사내는 히죽 웃었다.
청년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요금'이라고? 그 단어가 조금 겁났지만,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제, 제가 뭘 드리면 되는 겁니까...? "
" ? "
청년의 질문에 사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 뭐라뇨? 돈이죠 돈. 현금이요. "
" 네?? 아... "
청년은 잠깐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 그럼 얼마나...? "
" 교환 할 생명에 따라 다릅니다. "
" 예? "
사내는 빙긋 웃으며, 여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교환 할 수 있는 생명은, 저 여인과 관련된 존재들만이 가능합니다. 그 가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지요. "
" 무슨... "
" 예를 들면, 고객님께서 100억을 낸다고 칩시다. "
" 배, 백억?! "
" 예를 들어서 말입니다 예를. 만약, 고객님께서 100억을 내시면, 저 여인의 어린 아들이 아닌, 저 여인의 피를 빨아먹은 적이 있었던 '모기'가 대신 차에 치여 죽습니다. "
" 모, 모기?? "
" 그 금액에 따라~ 교환 되는 생명이 달라지는 것이죠. 메뉴북 드릴까요? "
" 네? "
사내는 어디서 꺼냈는지, 검은빛이 도는 책을 갑자기 건넸다. 얼떨결에 받아든 청년이 첫 페이지를 넘기자-
[ 여인의 피를 빤 적이 있는 모기 = 100억 원 ]
" ... "
청년은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 시장에서 여인이 귀여워한 적이 있었던 구관조 = 10억 원 ]
" 구관조...? "
" 어떻습니까? 꽤 괜찮지 않습니까? 어차피 저 여인이 구관조를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
사내는 훌륭한 상품이라는 듯 떠들어댔지만, 청년에게 십억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청년은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 여인이 키우는 고양이 = 1억 원 ]
" 으음... "
" 고양이! 이거 정~말 가성비 좋은 상품이죠! 뭐, 저 여인에게 원망 좀 받고 욕도 좀 먹겠지만...그래도 고양이 죽였다고 감옥에 가진 않을 것 아닙니까? 게다가 깔끔하게 '즉사'라서 치료비니 뭐니 돈 들어갈 필요도 없이, 재물손괴죄로 고양이값 몇 푼만 물어주면 됩니다. "
사내는 아주 좋은 상품이라는 듯 떠들어댔지만, 청년은 미간을 좁힐 뿐,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 여인이 봉사활동 갔던 산동네의 할아버지 = 천만 원 ]
" 이건 무슨...?! "
페이지를 펼친 청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사람 죽인 살인마가 되기 싫어서 이러는 건데, 기껏 바꿀 것이 또 사람이라고?
옆의 사내가 그 표정을 읽고는, 말했다.
" 아~ 고객님이 이 분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러시는구나~! 이 할아버지는 무연고자랍니다. "
" 무연고자요? "
" 예! 그러니까 고객님이 합의할 사람이 없다는 거죠! 물론, 사망사건이니 형사로 금고형 정도는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누구에게 원망받을 일도 없고, 어마어마한 합의금에 인생 망칠 일도 없고, 운 좋으면 금고형도 면할지 모르죠~! 천만 원이면 아주 싼 겁니다! "
" 음... "
청년은 사내의 말을 듣고 보니,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직, 마지막 페이지가 한 장 남아 있었다. 이제껏 금액이 열 배씩 줄어들었으니, 다음은 백만 원일 것이었다.
청년의 손이 빠르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 여인 = 백만 원 ]
" ! "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청년은 당황했다!
옆의 사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 백만 원 짜리는 영~ 형편이 없죠. 단순히 아이에서 여인으로 바뀔 뿐이니까... 그래도 뭐~, 과실 처리할 때 조금은 유리하겠죠. 아무래도 목격자가 아이니까~! 고객님이 지금부터 블랙박스 제거하시고~ 발 빠르게 처리하면...약간 유리해질 수 있는 정도? "
" ... "
" 추천하지 않습니다~! "
모든 페이지를 살펴본 청년은 갈등했다.
10억의 구관조가 가장 좋겠지만, 10억이 어디 쉬운가? 평범한 자신이 몇십 년을 모아도 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렇다면 1억 고양이는 어떨까? 아주 좋았다. 원망이야 받겠지만, 그래도 고양이 아닌가? 사람이 안 죽는 게 어딘가? 다만... 1억 원도 청년의 사정으로 감당하기에는 힘든 금액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면 천만 원은? 감당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어떻게든 가능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다.
" ... "
청년은 1억과 천만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것이 청년에게는 현실이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1억을 갚는 데 몇 년이 걸릴까? 모아둔 돈도, 손 벌릴 곳도 없었다.
천만 원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죄 없는 할아버지가 죽는다. 게다가 감옥도 간다지 않는가? 재수 좋으면 면할 수도 있다지만...글쎄? 지금 과실이 몇 대 몇이 나올까?
머리가 복잡한 청년은 괴롭게 얼굴을 감싸 쥐었다.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옆에서 기다리던 사내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 결정이 어려우신가요? 깜빡했는데, 한가지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
" ? "
" 제가 저희 서비스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바로~ 고객님의 기억이 모두 지워진다는 겁니다! "
" 기억이...? "
" 예. 이것은 현실을 조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고객님의 기억이 남아있다면, 오류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고객님의 모든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저 아이를 쳤던 기억도, 지금 이 순간 선택을 한 기억도 모두다! 그럼, 고객님께서 어떤 생명으로 바꿔치기 하든 간에 죄책감이 전혀 남지 않겠죠? "
" 아...!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
청년의 동공이 멈추며-,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뒤,
"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
다시 한번 중얼거린 청년은, 이윽고-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내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 결정하셨습니까? "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 예. 저는... 백만 원짜리로 하겠습니다. "
" 백만 원? 이런...! 백만 원짜리 말씀이십니까? 아 이거 뜻밖이군요. "
사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실 때, 청년이 추가로 말했다.
" 그리고 말입니다. 가능하다면-. . . "
.
.
.
' 펄럭- 펄럭- '
한낮의 4차선 도로.
바로 옆 인도의 가로수에 묶여있던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 목격자를 찾습니다! ㅁㅁ월 ㅁㅁ일 밤! 제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도망간 뺑소니 차량을-. . . ]
" 가능하다면, 굳이 아이를 살려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처음부터 제가 두 사람 모두를 '사고'로 죽인 거로... "
마지막 단어 하나 때문에 진짜, 10분은 고민한 것 같습니다.
'사고'로 할까 '실수'로 할까...;
쩝….
아쉽네요. 믿기고 존경받는 자나 사람 여럿을 치어 죽였으면 오히려 돈을 더 받았을 텐데. 물론 죄는 쌓이겠지만 말이죠….
글을 읽으면서 저게 나였다면 뭘 선택했을까~ 같이 고민했네요~
저도 고양이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고민했을것 같습니다.
(뭔가 가격과 대상 설정을 잘 하신듯~ㅎ)
그럼 할아버지가 김남우??
생명교환 서비스는 그냥 미끼고 사실은 기억이 모두 지워진다 => 죄책감이 없다. 이것이 포인트 같은데,
작가님께서 종종 쓰시는 문법이지만 볼 때마다 많은 것을 생각케 하네요.
내가 벌 받지 않고, 내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면 뭐든 해도 좋은걸까?
작가님 글은 압축률이 정말 어미어마한 듯 합니다.
이 짧은 글 안에 뭐가 담긴게 이렇게 많은지.....
초반부를 봐도 생각을 하게 되고...중반부를 봐도 그렇고...후반부를 봐도 그렇고...
진짜 이 짧은 글안에 ㄷㄷㄷ
토!!!!!!내가!!!!!!토햇다!!!!!!!!
늘 감사히 읽고있어요.
밤길조심하세요... 묶어놓고 글쓰게하고싶어요♡
와...소름 돋았어요!!! 이번글 너무너무 좋아요ㅠ
저라면 어떨까 고민하자마자 당연히 고양이! 라고 외쳤지만...막상 저 상황이 되면 아닐걸...라고 가슴 깊은곳에서 양심이 속삭임ㅜㅜ
꼬릿말이 더 소름이에요... 모두가 저같은가봐요 인간의 이기심과 비겁함?을 잘 보여줍니다ㄷㄷ
안녕하세요?
작가님 글은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읽고 있어요
항상 소재가 흥미롭고 간결해서 몰입도가 있으면서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 정말 좋아요
응원할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 어제는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랑 "돌림판" 이야기를 외워서
자기전에 아내에게 들려줬는데 흥미로워해서 좋았어요 오늘 이야기도 해줘야징!
기묘한 이야기나 서프라이즈 작가하세여
항상 남겨주시는 댓글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근데 이번 이야기는 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셨나요?;
주인공 청년의 심리변화 부분에서 조금 이해가 힘들수도 있겠다 싶었었는데... 그래서 마지막 단어도 고민하고, 제목도 일부러 노골적으로 하고 ㅋㅋㅋ;
그냥 제 우려일 뿐이었나봐요!
사실...잘 이해 안 가는 분 나오시면, 또 폼 안 나게 댓글로 다 설명드려야지!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흐하하;
잘 읽었습니다. 소름돋았고 재미있었습니다.
돈을 더 할인할 수 있었던건가요?
이번편은 다른편에 비해 좀 더 깔끔한 느낌이 들어요! 잘봤습니다!!
아... 근데 좀 헷갈리는게 있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지 않았다." 로만 되면 되는건가요?
아니면 "내가 죽였지만 나는 죽인 줄 모른다." 가 되는 건가요?
만약 후자라면 나중에라도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되는지라....
아줌마 맞지만 다 읽자 마자
아침드라마 보는 아줌마로 빙의돼서
실컷 욕을했네요!
세상에 천벌 받을놈~!!!
제가 지금 부터 이 이야기를 풀어볼테니, 저랑 똑같이 이해하신분이 있나 좀 말씀해주세요!
만약 그런 분이 없다면, 제가 너무 이야기를 어렵고, 또 알아먹기 힘들게 썼다는 증거니까요;;
이 이야기는, [청년의 미묘한 변화]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처음 청년에게는 [선택지]가 2개 있었습니다. [1억이냐 천만이냐]. 하지만 둘 다 청년의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서 고민했죠.
1억은 그 금액이, 천만원은 사람을 죽여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점이 말이에요.
그런데 이 때도 청년은, [백만원으로 두 명 다 죽이고, 뺑소니치기] 라는 제 3의 선택지를 알고는 있었어요. 나중에 현수막이 걸린 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목격자]가 살아있던 [아이 엄마] 뿐인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청년은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죠. 지금 청년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맨정신]이었거든요!
죄책감(?) 인간의 도리(?) 양심(?) 같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그런 감정이, 차마 그런 선택을 생각도 못하게 막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기억 상실]이라는 조건을 듣게 되었어요. 모든 기억이 지워진다면? 청년이 거래고 뭐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두 사람을 죽인 상황]으로 [뚝 떨어지게] 된다면? 그땐 맨정신이 아니게 되죠!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청년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뺑소니를 치고 도망 갈 것이라 판단했을 겁니다.
그 근거는-,
청년이 [2명의 사람을 죽인 행위]는 청년에게 [사고]이면서, [실수]이기 때문이죠!
[기억 상실]을 모를 때는 [2명을 다 죽인다]라는 제 3의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알고] 행하는 [고의] 였기 때문에, 죄책감(?) 인간의 도리(?) 양심(?) 같은 것들이 차마 그런 선택을 못하게 했어요.
하지만 악마에게 들은 조건에 의해서, 모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청년은 선택한 거죠. 제 3의 선택지를요.
이걸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청년의 그 미묘한 감정, 어쩌면 보편적인 인간의 [비겁함] 일지도 모르는 그것을 표현해보고 싶었었는데...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요 역시;
감사합니다!
핀트에 좀 어긋난 얘기지만..요즘 세상이..얼마나 무섭고 보는 눈이 많은데....청년이 좀 경솔한 것 같네요. 걸리면 2명살인+뺑소니까지..
결국 자기가 죽인거니까요
이야기의 초점을 다른곳에 두고 읽었네요
어린아이가 죽는다는 점
또 한 아이의 엄마가 죽는다는 점
사람을 죽인다는게 어떤건지 죽는다는게 어떤건지를 공감해서 두려워했던것이 아니라
단지 본인이 앞으로 받게 될 시선들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두려웠던 거군요...
저는 선택지를 모두 보긴했을 테지만
모기를 선택했을것 같아요.
저는 백억이 없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요
그게 맞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