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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짜 참 스승이었던 담임선생님.



중3? 16살때였어요.


우리 지역은 소위 '연합고사'라고 불려지는 시험을 통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어요.


기억 나는건.


연합고사 점수 180점 만점.

내신 70점 만점.

총 250점 만점중


커트라인이 약 200점 내외?




우리 반은

꼴등반이었어요.



다른 반 선생들은

꼴등반이라며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고요


아무튼 개무시 속에 중3 수험생(?)시절을 보내야 했답니다.




일찍이 성적이 멀어져 실업계 고교를 택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물론, 실업계에 성적과 관계없지 본인의 의지대로 진학하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을 통해 줄 세우기를 좋아하던 어른들에게



우리반은

뭐 좋은 먹잇감이었죠.




우리도 스트레스인데


꼴찌반 담임을 맡았던 담임선생님은..


얼마나 스트레스였을까요?






담임 선생님은 36세 여성분이셨습니다.

타 학교에서 온 첫 해에


우리 담임을 맡으셨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거에요.





우리는 그런 선생님을 싫어했어요.



일단 소통이 잘 안됐어요.



말 그대로 일.방.통.행.



학생들에게 반말은 하지 않았지만


차가운 존댓말로 우리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주시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공부해라~ 놀지마라~ 일찍와라 이런 것들..)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어요.


매일 단어 시험을 봤었어요.

진도 나갈 내용을 미리 예습해와야 시험을 치룰 수 있었죠.


7개를 무작위로 문제로 내셨는데

5개 이하로 맞으면


손등을 맞곤 했었어요.


다른 반에 비해 손등맞는 사람이 많아

우리를 다그치시기도 했었죠.


속상하셨는지,

눈물을 보이신 적도 있으셨어요.




중3 사춘기 애기들이 뭘 알겠습니까..

"야 담임 운대!"

"단어시험 못봤다고 왜 울어, 맞은 우리가 울어야지"


철없는 소리만했었어요.





어느 날 단체로 담임선생님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국영수사과.. 기술. 음악. 체육 이런거 다 꼴등인 우리반에게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어요.



매일 나머지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내신도 높아야 좋은 인문계, 실업계 학교를 갈 수 있다는 지론하에.



반 학생 전부가 매일 정규 수업이 끝난 뒤


남아서 공부를 했어야 했어요.


하교의 조건은


담임 선생님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싫겠어요.


다른 반 친구들은 다 집에 가거나


나를 기다리는데,



남아서 공부를 하라고 하니


다들 짜증이 났죠.




그 땐 몰랐습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지만..




우리에게 인수분해, 근의 공식 같은 수학 문제를 가르침은 물론..


한용운의 임의 침묵에 대해서 해석을 해주시기도 했죠.



예체능 시험을 보는 날은

비지스의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의 박자가 몇 박자인지

피처 보크가 무엇인지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나이 서른이 넘어서 깨닫네요.


내가 맡은 일만 하기도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






이렇게 추워지면 연합고사보러가던 날이 생각합니다.


학교 앞에서 따뜻한 레쓰비 한 캔을 주시면서 웃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지금은 쉰이 넘으셨을 선생님..


안녕하시겠죠?



댓글
  • 좋은아뒤 2018/12/03 16:55

    그 선생님은 정말 뿌듯하실거 같아요...
    나중에라도 이렇게 그분의 마음을 알아주는 제자가있어서 ^^

    (hiJ5fE)

  • 길고양이 2018/12/03 17:04

    옆에서 쿨쿨 주무시고 계실까봐 조마조마했네요~~

    (hiJ5fE)

  • 중년민턴 2018/12/03 17:08

    이런분이 진짜 존경받아 마땅한 선생님이시다.

    (hiJ5fE)

  • SP09 2018/12/03 17:18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안으면
    니들은....

    (hiJ5fE)

  • 부가세별도 2018/12/03 17:20

    너 너 너.. 니가 제일 문제였어..

    (hiJ5fE)

  • VVan 2018/12/03 17:27

    교장선생님: 선생님반 시험 못통과하면 담임선생님도 집에 못가십니다.

    (hiJ5fE)

  • 곰부럴만진놈 2018/12/03 17:29

    이런 참다운 선생님이 계신 반면 저는 최악의 선생님만 기억남..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3학년일때일임.. 담임이 여자였고 50대중후반의 할망구였음.
    3학년부터는 클럽활동을 할수 있었음. 클럽활동이라고 해봐야 보이스카웃밖에 없었음.
    어린나이에 토요일마다 보이스카웃 단원의 멋진남색 탐험가옷을 입고 등교하는 몇몇이 너무 멋있어서 꼭 보이스카웃에 가입해야지 맘먹었음.
    때가되어 선생이 보이스카웃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해서 기쁜마음으로 손을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이 아직도 비수가 되어 안잊혀짐..
    "너처럼 돈없고 가난한 애가 이런걸 하려고 하니? 넌 손내려." 였음..
    맞음ㅎ 우리집 가난했음.. 학교에서 꾹꾹 참고있다가 집에가는길에 대성통곡하며 울면서 집에갔던게 아직도 생생하다 X발거.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우리부모님이 촌지를 안줘서 그지랄 떨었던건지도...
    이십년이 지났어도 싸대기 한대 후려갈기고 싶다.. 온양온천국민학교 3학년 5반.. 담임년

    (hiJ5fE)

  • lucky 2018/12/03 18:46

    학생들에게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힘들게 사서 저런 일은 안하셨겠죠...

    (hiJ5fE)

  • 리크넬프 2018/12/03 19:03

    제가  중학교 때..
    공부하고는 담을 쌓아서 사고만 치고 다녔는데
    성적이 죄다 40~50점대였죠.
    수학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 보다 못했는지 면담을 하자더군요.
    교무실로 가니 다른말 않고 √4를 적고는
    이걸 고치면 몇이냐고 하시길래 모른다고 했더니
    제곱근의 원리를 가르쳐주시고는 다시 한 번 물으시길래 2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니 아이고 이놈아 하는 톤으로 머리 되는데 왜 공부를 안하니 라고
    하면 되니까 공부좀 하라고 하시면서 돌려 보내시더군요.
    그 뒤로는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해서 만점도 받고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수학은 학업 우수상을 놓친적이 없네요.
    특히 졸업식때 생일주 마냥 음식 찌꺼기를 넣은 졸업주를 만들었는데
    아무도 안마시는데 담임쌤이 뭐하냐고 보시더니
    원샷 하시는거 보고 진짜 남자다움이 뭔지를 느꼈습니다 ㅋㅋ
    아주 크게 영향받은건 아니지만, 분명히 제 인생을 바른 방향으로 끌어주셨고
    언젠가는 가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hiJ5fE)

  • 까트만두 2018/12/03 19:15


    학생들 아직 이해를 못했나본데
    근의 공식 못 풀면 교문 못 나간다고

    (hiJ5fE)

  • 개말소닭 2018/12/03 19:21

    학생들이 불만 가지기만 하면 다행이게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도 구구단을 못외우는 학생들 남겨서 구구단 외우고 집에 가라고 했다고 학교에 항의하고 교육청에 찌르겠다고 협박하는 학부모도 있어요.
    주작 같죠? 실화입니다.
    구구단도 모르는 채로 5학년 되기까지 이전 담임들도 그런 학부모 때문에라도 손 못쓰고 냅둔거죠.
    애들 남겨서 나머지 공부시킨다고 학부모가 교실로 찾아와서 교사 앞에서 애더러 바로 집으로 가라고 하고 교사 멱살잡았어요. 퇴근안하고 자기 개인시간에 애들 가르친건데.. 애 앞에서 부모가 교사 멱살잡았는데 안그래도 말안듣는 애가 교사말을 귓등으로나 듣겠습니까
    그런 부모는 자기가 자기 자식팔자 엉망으로 만듣 거라는 걸 알아야될텐데 당연히 모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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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로 2018/12/03 19:38

    로또인지 부동산 급등인지 아무튼 갑자기 갑부등극하신 선생님 기억이 나네유..
    그 황색 대형 주전자 가득 인삼을 넣고 끓여서 1년 내내 공급해주시고
    그 20년도 훨씩 이전 그 시절에 피자 족발 처가집통닭...
    노트, 펜, 기타등등 학용품 지급에..
    나중에 들어보니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 장학금도 몰래 주셨다던데.
    세월이 야속한 것이 이제는 선생님 이름도 기억이 안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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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잿더미처럼 2018/12/03 19:49

    각도기 잘 재세요.
    유정호님 촌지 안줬다고 모욕한 옛날 담임에 대한 영상 찍었다가 당사자한테 고소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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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컨드동정 2018/12/03 19:53

    요즘 이런 글 읽으면
    그러던 그 선생님이 제 옆에서 ~~~  혹은
    그..치만...
    이 나올까 조마조마 하면서 보게됨

    (hiJ5fE)

  • song 2018/12/03 19:54

    하지만 이상한 선생님들이 훨씬 많음. 그래서 더 대단한 것 같기도..

    (hiJ5fE)

  • Hastings 2018/12/03 20:46

    고마워하는 사람도 없고 혼자 욕억어가며
    보람도 없이 혼자 얼마나 마음이 문드러졌을까

    (hiJ5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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