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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황교익 선생의 블로그 글에 대한 답변

 

댓글의 토론이 나름대로 의미 있게  전개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가끔 나도 댓글을 달고 싶으나 그러면 모든 댓글에 댓글을 달아야 하고 댓글 랠리를 하게 되면 끝없이 이어져 참고 있다. 나도 다른 일에 시간을 내어야 하니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불고기라는 이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김찬별의 책을 읽으면서였다. 2008년의 책이다. 김찬별은 1930년대 동아일보의 기사에서 불고기라는 단어를 발견하였고 이를 책에 올렸다.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 내 정보가 많지 않아 그의 '발견'은 신선하였다. 불고기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이후 틈이 나면 불고기 자료를 찾아보았다. 김찬별이 발견한 그 기사보다 연도가 앞선 자료에서 불고기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음식 관련 전문가들은 나름대로 불고기라는 단어 찾기에 열심이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하여 불고기라는 이름의 흔적은 1922년까지 올라갔다.


불고기 관련 자료는 인터넷에서 넘친다. 너도나도 불고기에 대해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자료들이 떠도는지 나도 이미 다 보았다. 일본의 자료도 이미 다 보았다. 풍각쟁이 노래 정도는 이 분야 글쟁이들의 상식이다. 일본에서의 불고기 발달사도 상식이다. 다 아는 이야기이다. 나는 다 아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음식 전문 글쟁이로 살려면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내가 처음 한 것은 불고기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의 재검토였다. 불고기의 '시조'로 다들 맥적을 말하고 있었다. 최남선 선생이 에 그렇게 썼다고 하였다. 최 선생이 근거로 든 것은 동진시대의 저작물인 이다. 누구도 이 원본을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원본을 확인하였다. 맥적이 올려져 있는 원본의 자료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내가 처음이다. 의 원문은 최남선 선생의 해석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2009년의 일이고, 이 내용은 내 책에도 올려져 있다.


그 다음이 설하멱이었다. 설하멱의 여러 이름에서 사슬릭이란 이름을 이끌어내고 이를 산적, 사슬적과 연결시켜 설명한 것도 내가 처음이었다. 이는 한반도의 음식문화를 유라시아 대륙의 음식문화 안으로 끌어넣는 일이었다. 이때까지 한국음식을 한반도 안에 고립시켰던 연구자들의 생각을 뒤집어놓았다. 이 내용도 내 책에 있다.


일제강점기 언중이 쇠고기구이를 어떻게 불렀는지가 궁금하여 온갖 문헌을 뒤졌다. 보통은 '불고기'를 키워드로 찾겠지만 나는 달리 하였다. 쇠고기 소고기 우육 우육구이 고기구이 소육 焼肉 야키니쿠 스키야키 烤肉(중국의 불고기이다. 일본의 焼肉이 이 단어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불고기라는 말도 이 단어의 영향이 있지 않았는지 검토해본 적이 있는데,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등등이 내 주요 키워드였다. 인터넷에 없는, 인쇄물로만 있는 자료집도 뒤졌다. 그 중의 하나가 이효석이 쓴 1939년 '평양 야끼니꾸'에 관한 글이다. 이효석 선생의 이 글은 불고기와 관련하여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자료이다. 내가 처음 내놓은 자료이다.


전문 글쟁이가 겨우 인터넷에 떠도는 상식 정도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만이 아니다. 음식 분야의 다른 전문 글쟁이들도 그들의 저작물을 보면 피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인터넷에 떠도는 상식을 반복하지는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다. 지금의 불고기 논쟁은 내가 내놓은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전문 글쟁이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음식 전문 글쟁이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운명이다. 까닭이 있다. 음식 전문 글쟁이의 말은 대중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 아예 자세히 들어보려고도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한번이라도 먹어본 음식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불고기를 먹어왔으니 불고기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조금의 정보라도 입력이 되면 자신이 전문가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영화, 축구, 야구, 게임 등 일상의 취미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면 이 현상은 똑같이 나타난다. 이 영역의 전문 글쟁이의 책은 팔리지도 않고 늘 대중에게 씹힌다. 운명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운명을 즐긴다. 음식 이야기는 아직 파내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고, 그래서 내 일이 늘 새롭다.

[출처] 다 아는 불고기 이야기는 하지 않는 이유|작성자 푸디





황교익 선생님께서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가 올린 글을 보고 가르침을 내리시는 느낌이네요. 꼭 저를 지칭해서 글을 쓰신 것 같아 제 입장에서 나름대로 답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인께서 말씀하신대로, 황선생님은 맛 칼럼니스트(본인께서 '맛 칼럼니스트'라고 자처하시니 그대로 쓰겠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황선생님의 입맛 자체가 너무 보편적인 사람과는 전혀 다른 편향된 견해를 갖고 계시는 것 같고, 정치적인 자기주장을 강하게 담고 있어서 미식가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들기는 하지만요)로서 여러 연구를 하셨다고 하시니, 저같은 방외인, 문외한보다 음식에 관한 확고한 철학과 주관을 갖고 계시겠죠. 그 점 부인하지 않습니다. 맛 칼럼리스트로서 본인 취향의 맛 기준을 근거로 어떤 음식이 맛있다, 맛이 없다라고 주장하시면, 저같은 문외한이야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맛을 느끼는 감성이야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 그런 황 선생님의 독특한 관점을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최근에 미디어에서 하신 여러 발언들, 특히 '불고기', '석쇠' 등의 발언을 보면, 황선생님께서는 본인이 맛 칼럼니스트의 영역을 넘어서서 음식문화연구자로서의 역할도 자부하고 계신 듯 합니다. 아래에 선생님의 발언들을 몇 가지 인용하고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송구스럽게도, 먼저 선생님의 발언을 올리고, 그 아래에 제 의견을 첨부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전문적인 글쟁이가 보시기에는 형편없는 하수들의 방식이기는 합니다만, 제 깜냥으로는 이런 찰기체 형식으로 글을 풀어나갈 수 밖에 없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고기 관련 자료는 인터넷에서 넘친다. 너도나도 불고기에 대해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자료들이 떠도는지 나도 이미 다 보았다. 일본의 자료도 이미 다 보았다. 풍각쟁이 노래 정도는 이 분야 글쟁이들의 상식이다. 일본에서의 불고기 발달사도 상식이다. 다 아는 이야기이다. 나는 다 아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음식 전문 글쟁이로 살려면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훌륭하신 말씀이시네요. 그런데 불고기 관련 자료가 넘치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황선생님의 견해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고 검색해보면 그다지 많은 자료는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의 자료를 다 보셨다고 하셨는데, 불고기와 관련하여 말씀하실 때 일본의 전적이나 문헌, 신문, 잡지, 소설 등의 자료를 언급하신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 아는 얘기라서 말씀을 안 하신다는데, 제가 최근에 불펜에 검색한 자료들을 올린 후 반응을 보면, 제가 하찮은 검색으로 알게 된 자료만 올려도 여러 분들께서 몰랐던 얘기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일본의 자료들을 좀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본측 자료가 있다면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일본측 자료를 검색해 보려고 하면, 일본어 실력도 딸리고 또 웬만한 자료는 유료이거나 인터넷 공개를 하지 않은 자료가 많아서 쉽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많은 자료를 보았다고 하시니, 선생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좀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효석 선생 자료는 이제 그만 보여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효석 선생의 증언은 이제 글쟁이들의 상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상식이 된 것 같아서 굳이 더 언급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처음 한 것은 불고기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의 재검토였다. 불고기의 '시조'로 다들 맥적을 말하고 있었다. 최남선 선생이 에 그렇게 썼다고 하였다. 최 선생이 근거로 든 것은 동진시대의 저작물인 이다. 누구도 이 원본을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원본을 확인하였다. 맥적이 올려져 있는 원본의 자료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내가 처음이다. 의 원문은 최남선 선생의 해석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2009년의 일이고, 이 내용은 내 책에도 올려져 있다.



역시 이 부분이 선생님이 주장하신 핵심인 듯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처음 선생님 블로그에 정중하게 댓글을 남겼던 것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선생님께서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제가 선생님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을 때는 제 개인의 해석이었을 뿐, 어떤 근거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몇 종의 번역본을 검토해 봤더니, 모두 저의 해석과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아래에 이 번역서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먼저 선생님께서 보셨다는 [수신기]의 원본이 어떤 판본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블로그에 올리신, 중국의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소개한 판본이라고는 그 책뿐이니, 선생님께서 확인한 원본을 그 책으로 상정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운 상식으로는, 보통의 학자들은 선생님처럼 번역본을 언급하면서 그 책을 원본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테면, [수신기]의 경우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은 왕소영(汪紹楹)의 [수신기교주(搜神記校注)](中華書局, 1979)처럼 원문과 주석서 정도가 실려 있는 책을 말합니다.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것으로 추측되는 연변인민출판사본이라면, 그냥 연변인민출판사본 정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선생님께서 그렇게 강조하시는 오랜 내공을 의심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통 한문 고전을 인용할 때, 이른바 노대가들께서는 번역본을 인용하지 않으십니다. 원문만 언급하죠. 선생님께서 비판하신 육당 최남선 선생 같은 경우가 그런 분일 겁니다. 황선생님께서는 본인이 "[수신기]에 맥적이 올려져 있는 원본의 자료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하셨지만, 사실 선생님께서 [수신기]를 원전으로 읽을 능력은 없지 않습니까?(저는 선생님께서 여러 차례 올리신 글을 통해, 선생님께서 한문해독능력과 중국문헌에 대한 이해가 거의 바닥에 가깝다는 점을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실 황선생께서 [수신기] 번역본에서 '맥적'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시게 된 것 역시 육당 최남선이 [고사통]에서 [수신기]라는 책의 존재를 인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터넷도 없던 백년 전의 시대에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사료를 직접 읽고, 그 책에서 우리민족과 관련된 약간의 자료를 찾은 최남선 선생이 대단한 것이지(최남선의 친일 문제를 제외하고 순수한 학문적 수준의 내공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최남선의 책을 읽고 알게 된 정보로 [수신기] 번역본을 살펴보시게 된 황선생께서 굳이 '최초' 어쩌고 말씀하시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선생님께서 직접 보셨다는 연변인민출판사본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수신기]라는 책을 검색해 보면, 여러 종의 책이 뜹니다. 임동석 선생의 번역본이 가장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인 것 같고요. 그외에도 몇몇 분이 이 책의 번역본을 출간했습니다. 그런데 황선생께서는 하필 연변인민출판사본을 선택하셨네요. 이 책을 검색해 보니, 번역자가 연변인민대학출판사 편집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황선생님도 책을 여러권 내 보셔서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출판사에서 저자나 역자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저역자명을 '출판사 편집부'라고 밝힌 책의 경우 그 권위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통 각종 언어사전을 출판한 경우라면 출판사 편집부가 편찬자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허나 번역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번역자가 '편집부'라는 조직 속에 숨었을 때는 출판사에서 뭔가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자인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게다가 연변인민출판사가 자기들의 모국어인 중국어로 출간한 책이 아니고, 한국어로 출간했다면 더욱 문제가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편집부에 소속되어 번역을 담당했을 번역자는 틀림없이 조선족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조선족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족 학자 중에서도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겠죠. 그러나 조선족 출신의 이름 모를 편집자들이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 얼마나 한국어 표현의 완성도와 번역의 정확성을 기대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조선족들이 우리말을 구사하는 것을 들으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 어색함을 바로 간파합니다. 요즘은 조선족의 말투를 흉내내어 인기를 끄는 배우나 희극인들도 보이더군요. 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조선족 학자들이 한국어로 글을 썼을 때도 말할 때의 어색함이 글에 묻어나는 법입니다. 



제가 보기에 저 조선족 편집자들은 [수신기] 한문의 원문을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중국에서 현대 중국어(백화문)로 번역출간된 중국어 번역본을 참조하여, 중국어 번역문을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즉, 그분들은 '한문-한국어'로 번역을 한 것이 아니라, '한문-중국어-한국어' 순으로 이중번역을 한 것입니다. 아래서 말씀드리겠지만, 저는 황선생님께서 인용한 부분을 근거로 제 추측이 거의 맞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의 출판계에서도 영미권에서 출간된 책을 번역할 때 해당 언어 전문가들이 번역을 담당하지 않고, 일본어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아 이중 번역한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황선생이 인용한 책도 그런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블로그에 제시한 [수신기]맥적 부분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칠, 181

 

[원문]

胡床, 貊槃, 翟之器也; 羌煮、貊炙, 翟之食也。自太始以來, 中國尙之。貴人富室, 必畜其器, 吉享嘉賓, 皆以爲先。戎、翟侵中國之前兆也。

 

[번역문]

호상(胡床), 맥반(貊槃)은 적족(翟族)이라는 민족이 쓰는 용기의 이름이고 강자(羌煮), 맥자(貊炙)는 적족이 먹는 음식의 이름이다. 그런데 진무제 태시 연간부터 중원지구에는 이런 도구와 음식이 유행되었다. 귀족들과 부자들의 집에는 모두 그런 용기들을 갖추어 놓고 희사 때 귀빈들이 오면 우선 그런 용기와 음식을 상 위에 내놓는다. 이것은 서융(西戎)과 북적(北翟)이 중원지역을 침범할 징조를 미리 보인 것이다.

 

(, 중국 연변인민출판사, 2007년 발췌)

[출처] 불고기란 무엇인가- 고구려의 맥적이 기원이라고라?|작성자 푸디

 




이 부분에서 황선생님은 적족(翟族)을 특정 민족으로 해석하시고, 그것을 근거로 맥적을 '적족의 음식'이라고 엉뚱한 해석을 하셨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가 선생님 블로그에도 댓글을 남겼고, 이곳에서도 여러 번 지적했기 때문에 자세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제가 갖고 있는 [수신기]의 중국어 번역본에는 이 부분이 어떻게 해석되어 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수신기]의 중국어 번역본은 2종입니다.



1. 干寶 原著, 黃滌明 注譯, [搜神記全譯], 貴州人民出版社, 1991. 



이 책의 번역자 황디밍(黃滌明) 선생은 1947년생으로, 광서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귀주인민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종의 고전 번역서를 낸 학자입니다. 이 [수신기] 외에도 장자, 주역, 노자에 관한 번역서를 출간한 분이라고 하네요. 자 이 책의 번역을 보시죠. [譯文]이라는 표시 아래 제가 붉은 선으로 길게 체크해 놓은 곳입니다.



胡床、貊槃, 是翟族的用具。羌煮、貊炙, 是翟族的食品。

호상, 맥반은 '적족'의 용구이고, 강저, 맥적은 '적족'의 식품이라고 했네요. 얼핏 보면, 황선생님 말씀대로 翟을 翟族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윗부분의 주석을 한번 보시죠.



貊, 古代北方的民族. 翟(di, 敌), 通"狄", 古代北方各族的泛稱.

'맥(貊)'은 고대 북방의 민족이다. '적(翟)'은 '狄'과 통하는 글자로서, 고대 북방 각 민족의 범칭이다.



즉, 이 중국어 번역본에서 '적족(翟族)'은 특정한 민족이 아니라, 북방 여러 민족을 통칭하는 말로 '적족'이라고 한 것입니다. 황선생께서 인용하신 연변인민문학출판사 편집부 소속의 이름 모를 조선족 번역자는 저 중국어 부분을 번역하면서 별 생각 없이 그대로 '적족'이라고 번역한 것이구요. 따라서 황선생께서 저 번역본을 근거로 맥적은 '맥족의 음식'이 아니라 '적족의 음식'이라고 주장하신 것은 완전 엉뚱한 오역인 셈입니다.



혹시 제 주장에 오류가 있을까 싶어서 다른 책을 찾아서 교차검증을 해보았습니다.

아래 소개할 책은 중화서국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중화서국은 중국에서 백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사입니다. 아마 중국에서 제일 먼저 생긴 출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민음사에 비견된다고 할까요? 규모로는 민음사나 김영사 같은 대형출판사지만, 역사로 따지면 100년 전통을 넘어설 국내 출판사는 없을 겁니다. 중국의 학자 중에 중화서국에서 책을 한 권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학자는 이미 학계와 출판계에서 모두 인정받는 사람을 뜻한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2. 馬銀琴 注釋, [搜神记](精)/中华经典名著全本全注全译丛书, 中華書局, 2012.



이 책은 제가 이북으로 구입한 책이라서 화면이 저렇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 마인친(馬銀襟) 선생은 중국의 명문대학인 청화대학의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학자입니다. 역시 번역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翟'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았습니다.


翟: 通 "狄". 秦漢以後對北方少數民族的泛稱.

적은 '적(狄)'과 통용되는 글자이다. 진한대 이후 북방의 소수민족을 아울러 지칭하는 글자이다.



마인친 교수 역시 翟이 북방의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늘 부득이 구입한 국내서적의 번역입니다. 국내에 여러 종의 책이 나왔지만,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고, 제가 보기에 가장 신뢰할만한 번역본으로 생각되는 책을 골라서 딱 한 종만 구매해 봤습니다. 이 책의 구체적인 서지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3. 임대근, 안영은, 서윤정 옮김, [수신기 - 신화란 무엇인가?], 동아일보사, 2016.



번역자 세분은 모두 한국외대 출신의 중문학자입니다. 자세한 경력은 검색하시면 알 것이므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럼 번역을 보시죠.



번역 부분에는 제가 형광펜으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번역이 한글세대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회전의자, 샤브샤브 등은 과감한 현대어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도 翟을 오랑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번역의 문제점은 최남선 선생이 아니라 황교익 선생의 해석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황선생께서 한문독해력이 형편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황선생께선 한문학이나 중문학 연구자가 아니므로, 반드시 한문에 대한 독해력을 갖추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음식에 대해서 어원과 기원을 따지시는 분이라면, 어느 정도의 독해력은 기르시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보입니다. 모든 음식의 기원을 일제강점기로 두시는 것이 혹시 한문독해력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리고 황선생께서 원전 독해 능력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번역서를 고를 수 있는 감식안마저 없으시다는 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고 많은 번역본 중에서 하필 최악의 번역본을 고르시다니, 참 민망합니다. 이건 마치 훌륭한 한식당(좋은 한국어번역서)이나 훌륭한 중식당(훌륭한 중국어번역본)을 모두 마다하고 조선족이 운영하는 한식당도 아니고 중식당도 아닌 정체성 모호한 가게(연변인민출판사본)에 들어가서 정통 한식 또는 정통 중식을 맛보려는 태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맥적과 관련하여 황선생께서 최초로 무언가를 하셨다고 자부하시기 전에, 본인이 주장했던 치명적인 오류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검색어의 팁을 알려주셨네요. 이미 전에 한 차례 알려주신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알려주셨네요. 저도 선생님처럼 '불고기' 뿐만 아니라, '소육', '야키니쿠', '야끼니꾸', '燒き肉' 등 다양한 단어로 검색해 보고 있습니다. 좋은 팁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저도 '고육(烤肉)'과 '소육'의 관계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카오로우'는 근대 이후에 사용된 단어라서, 전통시대 중국에서는 잘 안 쓰던 단어로 알고 있습니다.




전문 글쟁이로서 황선생의 자부심은 잘 알겠습니다. 엉망진창인 제 글과는 달리, 선생님의 글을 보면 오탈자 하나 없이 깔끔하고 정돈된 문체라서 읽기가 아주 좋습니다. 아마 오랜 기자와 편집자 생활로 쌓인 내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효석 선생의 글 한 편을 발굴한 것을 근거로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어라고 주장하시기에는 근거가 부족해 보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반박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 저를 보라고 쓰신 글은 아닐 것도 같지만, 제가 어제 올린 글을 보시고 황선생께서 위의 글을 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저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황선생께서 맥적에 대한 최남선의 해석을 반박한 내용을 이미 상업적인 책으로 출간하셨다고 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책으로 출간하는 행위는 학자가 논문으로 발표하는 행위보다 훨씬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문으로 발표해 봤자 읽는 사람은 전공자 몇 명일 뿐입니다. 책은 아무리 적어도 최하 수천 명이 접하는 매체입니다. 이미 책으로 출간한 내용이라고 해서, 그 내용이 학계에 공인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선생님의 주장이 공인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으로 나오지 않은 일개 네티즌의 의견이라고 해도 경청할 부분은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 글쟁이로 자부하신다면, 자료에 대한 검토와 해석에 좀 더 신중을 기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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