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 담장에 있는
엄마 죽음을 이해해야할 아이를 보니,
30년 가까이 흘러버린 기억이지만
제가 7살때 아버지의 죽음을 인지해야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제와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오른다고 한들 슬프거나 괴롭다는 생각보단 벌써 세월이 너무 흘러버렸고 고작 제 인생에 아버지는 7년만 존재하셨구나라는 가벼운 비중때문에 더 놀라게되네요.
그냥 퇴근후 술 한잔하면서 지나간 과거에 대한 넋두리이자 뻘글일 뿐입니다.
아버지께선 제가 갓 태어난 이후부터 고향에 누님과 어머님만을 남겨둔채 혼자 타지인 대구에서 사업을 하셨습니다.
누님의 방학때되면 저는 누님따라 아버지를 보러 대구에 내려가 아버지를 보긴했지만, 아버지는 음식을 하실줄 몰랐기에 대구 아버지 집보단 근처에 살던 막내고모네 댁에 지내면서 아버지와 방학을 같이 보냈던게 기억이 납니다.
빠른 년생으로 국민학교입학을 앞두던 그해 겨울,
아버지는 1월1일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많은것이 갑작스러웠습니다.
강원도에 계셔야할 어머니가 갑자기 대구로 오셨다는 연락과 함께 이모들도 대구로 왔다는 얘기도 전해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도 이모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누님과 저, 그리고 막내고모 아들인 제 사촌동생과 함께 셋은 당시 스무살이던 사촌형과 함께 막내고모네 집에 머물러있었습니다.
이상하긴했지요.
새해첫날인데 아버지도 고모도 고모부도 아무도 안보이셨고, 어머니는 갑자기 대구에 내려오셨다고 하는데 저희들을 만나러 오지도 않으셨으니깐요.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너무 어렸던 저희 남매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차라리 발인전날까지만 비밀로 해두고 사촌형이 저희를 돌보게 하고 장례식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였습니다.
당시에는 무척 어른처럼 보였던 사촌형이였지만 고작 스무살이였던 사촌형도 큰 이모부(제 아버지)의 죽음을 비밀로 하면서 저희들을 웃으면서 돌봐줘야한다는게 참 힘들었을 것이였고 모든게 사촌형도 서툴었습니다.
사촌형은 저희 꼬마들이 심심할테니 보고싶은 비디오를 여러개 빌려오라고 2만원을 지워주고 저희를 비디오가게로 보냈던 그날 저녁,
하필 저는 누님과 사촌동생 손잡고 나가려하다가 배가 아파서 저 혼자만 화장실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고요했던 고모네 집 안방에서
사촌형의 전화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거 같습니다.
사촌형
"큰 이모부가 오늘 새벽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동생들을 나 혼자 돌보고 있어. 동생들만 보면 나도 눈물부터 나는데 너무 힘들다. 내일 저녁에 장례식장으로 데려가야하는데 차라리 내일이 안왔으면 좋겠다"
대략 이런 통화 목소리였습니다.
화장실에 앉아 그 얘기를 들은 저는
그냥 멍하니 화장실 천장만 바라봤던 기억입니다.
'아. 아빠가 죽었구나.'
그제서야 어머니가 갑자기 이모들과 대구에 온것도,
새해 첫날 우방랜드에 데려가주시겠다던 아빠에게 아무 연락이 없는것도 모두 이해가 갔습니다.
다만 저는 슬프다란 감정보다는
사촌형이 우리들을 위해 아버지의 임종을 비밀로 해둔터라, 그 비밀을 저 역시 먼저 아는채 하지 않는게 제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사촌형은 저녁무렵 장례식으로 택시를 태워 저희 아이들을 데려갔습니다.
저보다 두살 많은 누님은 당시에도 죽음이란게 뭔지 잘알고있었는지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펑펑 울더군요.제 사촌동생은 그냥 누님이 우니깐 같이 옆에서 울었구요. 저는 이미 알던 아버지의 죽음을 새삼 놀라워 할수도 없었고, 다만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반가웠고 친가 외가 모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너무도 사랑했던 제 할머니가 저를 부둥켜 안고 "이 어린것을 두고.." 라고 통곡하실때는 할머니가 너무 슬퍼하셔서 걱정했던 기억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슬프지 않았던것은 아니였습니다.
하늘도 아니고 고작 화장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아빠의 죽음'을 알게되고 이해하려했던 그 시간은 제게 꽤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허나, 이후에도 제 삶이 가식덩어리가 된 계기이도 했지만 제 개인적인 슬픔보다는, 비밀을 지켜줘야 사촌형이 그나마 편할것이라는 제 가식적인 배려가 우선순위였기에 저는 슬퍼할 시기를 놓쳐버렸습니다.
항상 그때가 아쉽습니다. 마음껏 슬퍼할 기회를 제발로 걷어차버리니깐 정작 울수가 없더군요. 발인을 하러 가는 그 새벽에도 저는 끝까지 울지 않았고 납골터로 가는 버스 안에서
산울림의 "안녕"를 혼자 흥얼거린 저를 옆에서 지켜본 어머니는 제가 충격을 받아 정신이상이 된건 아닌지 걱정마저 하셨다고 하네요.
아버지 성묘를 하러 지금 혼자 내려 갈때도 여전히 한번 울지 않는 저를 보면 저는 아빠에게 미안할때마저 있습니다. 아직 제 마음속에 우방랜드를 데려가지 않는 아빠의 대한 미움이 남아있는게 아닌가 생각마저 해봅니다.
그냥 술마시고 넋두리입니다.
https://cohabe.com/sisa/80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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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떤 이유로 운명하셨는지요??
토닥토닥 ㅠㅠ
가슴 한 켠이 아리네요.
전 10살 때 사촌동생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하늘나라로 간 일이 20여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더라구요.
먹먹하네요.. 사촌형님은 아직도 모르고 계시겠군요
저는 14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셧어요. 가끔 생각이 아직도 나네요
추억이 공유하지 않는 한 ...
님 어릴 적이고도요
뭐 당연하죠
우리 아버지도 돌아가신지 17년째..
그나마 추억이 조금은 있기에
글이 슬프네요...
ㅜㅜ 토닥토닥
울고 싶을 땐 슬픈 영화라도 보시면서 우시면 좀 시원하실거에요
7살 어린아이가 본인 감정보다 다른사람(사촌형)의 감정을 먼저 배려하고 행동했다는게 놀랍네요. 보통은 그전화내용 파악하고 바로 울어버릴텐데요.
사연이 슬프네요
슬픔을 제때 풀지 못하면 그게 오래도록 엉어리가 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
[리플수정]여담이지만 그때 우방랜드라면 대구에서 그나마
가장 가볼만한 데였지요
아마 30년전이면 개장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네요
너무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죽음에 대한 슬픈 감정은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