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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평가
47세의 모습
당시 흥선대원군
쇄국정책을 안하고 어느 정도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나라는 일제, 625도 없고 지금이랑 전혀 다른 역사을 가지고 있을 것 이라고 이야기하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가장 큰 실수
국사 최대 고평가인물 민씨 받아들인 실수
민씨 재평가 받아야한다고
맞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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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는 진짜 .. ㅋㅋ
민비는 뒷이야기가 많네요 ㄷㄷ
인섕은 모름..역사도 모름..
그렇죠 아무도 모르죠
결국 시대의 흐름을 잘 보지 못하고
역사 공부 대외 흐름 공부도 안하고 무식하게 떵고집만 피디가
나라 말아잡순 경우
천주교도 관련이 있어서 ;;;
그때는 서양의 열강들이 어떻게 하면 조선을 먹을까 혈안이 되어 있던 시절이라 일본이 아니었으면 다른 어떤 나라의 지배를 받았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하네요.
어쩌면 홍콩 같은 경우도 될수도 있고
유럽의 식민지도 ㄷㄷㄷ
저는 다르게 생각.. 그당시 쇄국정치안한다고 해서 달라질게 없다 이미 조선은 쇄락 강대국은 무력으로 침공 ..우리가 할수 있는건 외교밖에 더 있나요 통하지 않으면 당하는거죠
나라의 힘도 없어지고 ㅜㅜ
체제를 일본 처럼 통으로 안 바꾸면
일부분만 개혁하는 시늉했던 청나라 꼴 나는 거죠
대세를 바꾸지 못했을거 같음.
왕도 멍청하고 세도가문 때문에 어려웠을겁니다.
게다가 그놈의 성리학
주변의 신하의 반대와 전통
성리학
여러가지 고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의 가장 큰 실책은 경복궁 중건을 너무 무리하게 한 것이고, 쇄국정책이야 청이나 일본이나 다 하는 그런 수준. 경복궁의 무리한 중건.. 권력을 얻고 싶은데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적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벌인 무리수들.. 명성황후 문제도 사실은 뒤에는 고종과 복잡미묘한 관계. 차라리 이 사람이 왕이 되었으면 여러 무리수 안 두었을 거고 조선이 크게 바뀌었을듯... 왕이 될 수 도 있었으나 이미 결혼도 했고 나이도 많았고..아들이 왕이 된.. 조금만더 늦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 같네여. 효명세자나 영조급 능력은 갖춘 인물이었다고 봅니다.
특히나 그런 역사관을 말하는 사람들이 자게에 몇 있었는데요
유명한 일베충이었습니다.
그 주장이 역사적인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시해사건은 일본의 학살을 희석시키는 효과가 있죠.
왕후가 잘못을 많이 했다고 쳐도 한 나라의 왕후를 도륙하는 것은
천인공로 할 짓이니까요.
시해사건 외에 독립적으로 민비의 모자란행동은 한국사 가르치는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네. 불행하게도 국내가 어지러울 때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해사건의 본질은 왜곡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민비가 잘못했으니 그 죽음은 신경 쓰지 않게 되니까요.
시해는 일본의 큰 만행이지요
하지만 배경과 잘못한 것은
잘 알아야겠지요
일본 역시 쇄국정책하다가 미국한테 개항 당했었지요.
흥선대원군때는 이미 늦엇죠. 개방하려면 소현세자 시절즈음에 햇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정도 국가체질이 일본, 청나라 수준까지
갈 시간여유가 잇엇죠. 뒤늦게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개명하고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신문물을 받아들엿지만 개뿔..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시점.
일단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싸움의 상징적 사건이죠.
청일전쟁에서 상징되는 청과 일본의 경쟁에서 청을지지하는 흥선대원군과 일본을 지지하는 고종, 명성황후의 싸움
결국 흥선대원군은 밀려나고
러일전쟁에서 상징되는 러시아와 일본의 경쟁.... 명성황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러시아 쪽 편을 드니까 일본이 까불지 말라고 살해한 거죠.
동학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손을 빌리지 말고 어떻게든 조선의 힘으로 했어야 했습니다.
그냥 동학의 난을 역모로 생각하니... 외세의 힘을 빌어 처단하게 된 게 실책이 된거죠.
차마시며 정치하려다 일본에 뒷통수 맞은거죠...
러시아가 전쟁에 안졌으면 우린 소비에트 연방에 소속됬을수도...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 광해군의 명/금 사이의 균형 외교가
인조반정으로 끝장이 났고, 이후의 역사는 사화의 역사가 시작.
결국 호란으로 국운이 쇠함.
호란 직전이나 직후에 왕조가 바뀌었어야 함.
지옥이 있다면 그곳에서 계속 고통받았으면
잡설이지만...내가 조선의 국모다!! 는 아직도 고평가의 대표주자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