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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사랑없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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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컨 소리에는 잠자기 좋은 주파가 섞여있는 게 분명하다. 잠이 모자를 정도로 공부를 하는 건 절대로 아니었는데, 항상 졸음과 싸워야 했다. 내가 하루에 자는 시간을 계산해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대강 하루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자거나 졸고 있었다. 


 학원수업이라도 듣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지는 느낌이라, 일단 학원에는 나가긴 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엎어져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강사의 수업소리와 에어컨소리는 잘 어우러진 자장가 오케스트라연주 같았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수업도 시작하기 전에 엎드려 졸기 시작하는데, 근처에서 몇몇 놈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재수까지 하면서 친구들을 만들고 몰려다니는 놈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 좀 자자고 한마디 하려다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야. 너 그 얘기 들었어? 조기~ 저어기~ 저 여자애 장난 아니라며?”


 “누구? 아~ 단발머리? 쉿 들리겠다. 쟤....... 달라고 하면 주는 애라며?”


 “너도 알아? 아니. 그럼 너도 했어?”


 “내가? 별명이 성녀라며~ 나도 요즘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쥐랄. 보기만 해도 주냐? 달라고 해야지? 그럼 내가 먼저 달라고 한다?”


 “야~ 우리 인간적으로 동서가 되지는 말자.”



 평생 여자랑 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녀석들이다. 저런 놈들도 면도할 때 거울을 보긴 할까? 여자에게 말 거는 것 자체에 알레르기가 있는 놈들 주제에 뒷담화로 욕구를 채우는 중이었다. 몇몇 여자애들에게 생기는 불편한 소문들은 이런 놈들이 만든다.


 잠이 깼으니까 일어나서 세수도 할 겸 화장실에 다녀오며 놈들이 말한 여자애를 찾았다.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단발머리에 놈들이 불쾌한 소문을 만들 정도로 예쁜 여자애는 한명밖에 없었다.


 어차피 머뭇거리고 고민하다 평생을 낭비할 녀석들이었으니까, 내가 먼저 나선다고 곤란할 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그 여자애에게 말을 거는 모습만 가지고도, 다양한 상상을 동원해 ja위나 할 녀석들이다.


 큰 키에 말랐지만, 그래서 큰 골반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여자애였다. 미용을 했다기보다 이발을 한 것처럼 짧은 단발머리의 여자애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이미 시간이 있냐고 물어봤으니까 어떻다는 대답을 들어야 할 텐데, 그 여자애는 어쩐지 슬퍼 보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작게 말했다.



 “열한시 반에 괜찮으면 이 학원 앞에서”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기는커녕 이름도 모르는데, 대뜸 열한시 반에 만나자고 한다. 그 시간까지 뭘 하고 있으려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미 그 여자애는 돌아서 걷고 있었다. 


 설마 내일아침 열한시 반은 아닐 테니까, 저녁도 먹고 공부도 좀하며 시간을 때우다가 나왔다. 솔직히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나왔는데, 정확히 열한시 반에 그 여자애가 나와서 놀랐다. 큰 가방을 메고 나타난 그 여자애는 나를 만나자마자.



 “밥 사줄래요.”


 “아. 여태 저녁 안 먹었어요?”



 이름은 뭐예요. 나이는 어떻게 돼요? 재수하는 건가요? 뭐 먹을래요? 등등의 질문을 막 꺼내려는데, 그 여자애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괜찮은 음식점에 갈 줄 알았는데,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24시간 해장국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식당이라 부담스럽지 않게 따라 들어갔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술이나 마시려고 해장국을 시켰다. 그 여자애에게 술을 권했는데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어쩐지 질문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가까스로 이름이 김은진이고 재수생이며 조금 전까지 공부를 하다가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동갑이니까 우리 말 편하게 하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여줬다.



 “은진아. 아~ 그러니까 남자도 공부할 건 다 하고 남는 시간에 만나는 스타일인거야?”


 “그 학원 열람실이 11시에 문을 닫아.”



 그 학원 열람실이 그렇게 좋아 보이는 건 아니었는데, 은진이 취향에 맞았던 모양이다. 웃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냉랭한 표정이라, 왜 날 만나줬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분위기를 개선시킬 궁리를 하고 있는데, 해장국이 나왔다. 


 처음에는 은진이가 천천히 식사했다. 틈틈이 질문해서 은진이가 인천에서 살았었고, 지금은 남자친구가 없다는 정도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은진이의 식사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질문하기 어려웠다. 혼자마시는 술이라 천천히 마시긴 했어도, 내가 소주 반병을 비우기 전에 해장국을 거의 다 먹었다. 은진이는 해장국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빨리 먹은 것 같다.



 “.......더 먹을래?”



 은진이가 고개를 가로젓고 내가 먹던 해장국을 가리켰다. 내가 안주하던 해장국을 건넸더니, 은진이가 또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저렇게 말랐다는 게 믿기지 않는 식사속도였다. 난 밑반찬으로 나온 오이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내가 소주를 마시는 걸 기다리는 김은진에게 물었다.



 “뭐냐?”



 대답 없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 김은진에게 다시 물었다.



 “뭐하는 거냐고”



 김은진이 주변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큰 가방을 짊어 메고 가게를 나갔다. 내가 계산을 마치고 나왔더니, 은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목구멍에서 나오질 않았다. 


 갑자기 짜증이 솟구치는 것 같았는데, 그냥 이대로 가버리고 싶었는데, 점심은 먹었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은진은 대답 없이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그런 김은진을 데리고 모텔에 갔다. 나도 모르게 은진의 냄새를 맡았지만, 땀 냄새도 별로 나는 건 아니었다. 뭔가 냄새가 날 줄 알았던 내가 더 더러웠다. 은진은 그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가만히 서서 은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은진이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아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은 먹었고, 점심은 빵이랑 우유로 때웠어. 잘 곳이 없는 건 아니고, 창문도 없고 공용 화장실을 쓰는데다 빨래하기도 불편한 고시원에 살고 있어. 원래 가난한 부모가 이혼하며 둘 다 나를 버려서 난 더 가난해졌어. 뭐가 더 궁금하니.”


 “그럼........너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남자를?”



 내 말에 김은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웃다말고 나를 노려봤다. 내가 은진의 눈을 피하지 않으니까, 은진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래서 왜. 불쌍하니. 용돈이라도 줄래.”


 “아니,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잖아”


 “내가 몸이라도 파는 것 같아? 너 바보야? 그러려면 내가 널 왜 만나겠니. 같이 있어주기만 해도 용돈을 주겠다는 늙은이들이 있는데. 난 그냥 가난할 뿐이야. 그리고 그냥 너랑 자고 싶은 거야.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우리 부모가 이혼하며 왜 둘 다 나를 버렸을까. 가난하면 남자랑 자고 싶지 않을 거 같아? 아니, 가난하면서 남자랑 자면 죄다 몸을 파는 거야?”


 “차라리 남자친구를 사귀지”


 “누구랑? 너 나랑 사귀고 싶어? 나처럼 가난한데다 까칠한 여자랑? 너도 그냥 나랑 하고 싶은 거 아니야?”


 “........아니 무슨 그런.”


 “한명이야. 재수하면서 딱 한명이랑 잤어. 그날은 꼭 그게 필요했으니까. 좀 편하게 씻고 편하게 잘 잠자리가 필요했고, 덤으로 남자도 있으면 괜찮겠다 싶었어. 그런데 그 한 놈이 내가 고등학교 때 사귀던 놈이랑 아는 사이더라. 그러면 여자는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걸레가 되는 거야. 난 아무하고나 자는 여자가 됐어. 알아?”


 “그럼 나처럼 말 거는 애들이 없었어?”


 “있겠니? 그런 소문이 돌면 오히려 보통의 남자들은 내게 접근하지 않아. 재수생들 중에 너 같은 쓰레기가 흔할 거라고 생각하니? 아~ 물론 몇몇 멍청이들이 말을 걸긴 했지만, 그런 멍청이들은 내 말투에 겁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야.”


 “.........지금도 편히 씻고 편히 자고 싶어서?”


 “따뜻한 저녁도 먹고 싶었지. 걱정 마 곧 주말알바급여가 들어오면 밥값도 충분해질 거니까. 학원에서도 알바자리를 구했어. 게다가 주기도 적당했고 너 같은 남자애랑 뒹굴고 싶어졌으니까. 그래도 피임은 해야 해.”



 그러니까. 그런 게 있다. 말솜씨가 무지하게 좋은 강사의 강의를 듣고 있으면,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서도 이해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정치인의 단호한 연설을 듣고 있으면, 개/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가 있다. 제 멋대로 날고 있는 나비의 날갯짓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확실한 목적지가 있을 것 같다.


 이럴 때, 머릴 긁적이면 완벽히 설득 당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겠는데, 난 머릴 긁적이며 머릴 갸웃거리기까지 했다. 엄청나게 많은 대화가 필요하겠다는 걸 알면서도 적당한 질문을 꺼내기 곤란해졌다.


 김은진이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씻어야 하니.”


 “응?”


 “난 괜찮으니까 먼저 했으면 좋겠는데, 가방에 빨래할 거리가 조금 있거든. 그러니까 먼저 하고나서 네가 씻으면 내가 목욕탕을 좀 오래 사용할 거란 얘기야.”



 차라리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당장 나랑 하지 않으면 네가 빨래 대신에 저 가방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하는 게 어울리는 말투였다. 


 나를 적당히 조각내면 은진이의 저 큰 가방에 담길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는 동안, 은진이가 먼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마치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탈의하는 모습과 같았다. 간단히 훌훌 벗어버린 은진의 몸은 조금 마르긴 했어도 꽃다운 그 나이 여자애의 몸이었다. 예상대로 가슴이 별로 크진 않았지만, 모양이 예쁘고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으니까, 순간적으로 자기 몸을 가릴 것 같은 손짓을 하다말고 은진이가 내게 다가왔다. 은진이가 내 바지를 벗기고 팬티를 벗기는 게, 마치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쉬를 하라는 것 같았다.


 모처럼 벗은 여자 앞에서 긴장하고 있었던 내 것이, 은진의 입안으로 사라지며 단단해졌다. 




 “깼어.”



 은진이는 모텔 방에 있는 작은 탁자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열린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은진이를 반짝이게 했다. 지금 여기가 노량진의 모텔이라기보다 어느 가정집의 침실처럼 느껴졌다. 은진이는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며 입에 볼펜을 물었다. 입술로 볼펜을 까딱거리며 흔들던 은진이가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일어났다.


 그제야 모텔 방 안의 다른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뭔가 걸치거나 걸 수 있는 모든 사물에는 은진이의 세탁물들이 걸려있었다. 은진이가 옷걸이에 걸어 말리던 셔츠를 만져보고는 내게 말했다.



 “조금 더 있으면 잘 마르겠다. 내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빨래가 잘 안 말라. 네 속옷도 빨아뒀어. 그럼 할래.”



 은진이가 창문을 열어둔 채로 셔츠와 팬티를 벗고 침대로 올라왔다. 


 지난밤 한번 하고 내가 씻고 나오자마자, 은진이가 빨래거리를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은진이가 빨래하는 소리를 듣다말고 잠이 들었는데, 은진이가 내 품에 안겨서 잠깐 잠이 깼었다. 다시 하자는 건 줄 알고 은진이를 안으려니까, 은진이가 피곤하다며 아침에 하자고 했다.


 솔직히 아침에 일어나면 은진이가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다 생각했는데, 은진이는 빨래를 했고 빨래가 마를 시간이 필요했다. 



 “아. 잠깐 아프다고~”


 “미안. 남자는 그냥 해도 괜찮은 거 아니었어?”


 “아니야!”



 어쩐지 내가 투정부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은진이가 빼서 다시 내 걸 주물러주고 말했다.



 “이제 해도 괜찮아?”


 “어!”



 해도 괜찮으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 거 같다.






 계속.




댓글
  • 스르륵~ 2018/10/29 13:21

    선추천 후감상

    (xDMiqd)

  • EulersN 2018/10/29 18:10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은진이가 이번에 첫 등장인가요??

    (xDMiqd)

  • 태양아빠 2018/10/29 19:54

    은진이 매력 터지네요 ㅎ

    (xDMiqd)

  • 란제리 2018/10/29 20:14

    주인공들 이름은 어디서 따오나요? ㅎ

    (xDMiqd)

  • Shy  2018/10/29 20:38

    은진이 그 와중에도 공부 ㄷㄷㄷ

    (xDMiqd)

  • 이면수 2018/10/29 22:36

    은진이가 이전에 등장한적 있나요 ?

    (xDMiqd)

  • NorthWind 2018/10/30 00:07

    은진이는 첫 등장인 것 같고요. 주인공들 이름은....... 실제 떠올린 사람의 가운데 글자에 성과 마지막 글자를 대강 어울리게 이어 붙여서 사용합니다.

    (xDMiqd)

  • 4Justice 2018/10/30 08:04

    오 뉴페 등장 ㅋㅋㅋ

    (xDMiqd)

  • 팡글로스 2018/10/30 08:17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

    (xDMi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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