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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다시 황교익의 불고기와 야끼니꾸

황교익 씨가 또 불고기를 들고 나왔네요. 
저도 그럼 한 얘기를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황교익 씨는 주구장창 이효석 선생의 기사 한 건만을 근거로 계속 다른 사람의 주장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자료를 근거로 황씨가 자기 주장을 펼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효석 선생(이하 존칭 생략)의 주장을 무색케 하는 다른 자료나 근거가 계속 나오는데도, 황씨는 자기 주장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황씨가 제시한 이효석의 글은 이효석의 주장이고 경험일 뿐입니다. 이효석 씨가 당시 평양에 머물렀다고 해서 그가 평양의 모든 풍습과 문화 풍물을 섭렵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이효석 씨가 당시 일본인들이 주도하는 식사 자리에서 불고기를 처음 접했고, 그 음식명을 일본인들로부터 '야끼니꾸'라고 소개받았지 않았을까 정도로 추측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황씨는 이효석이 잡지에서 언급한 문헌자료라는 근거로 당시 평양에서 살았던 다른 사람의 증언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기문 선생(이하 존칭 생략)의 증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기문 교수가 내놓은 주장의 근거는 그의 기억 딱 하나이다. 평양(넓게도 평안도)에서 불고기라고 하는 방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평북 정주 출신의 원로 국어학자가 그렇게 말하니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한국의 학문 풍토에서 불가능하다. 후학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의 주장이 정설이 될 수 있도록 학문적 해석을 더하는 일만 주어질 뿐이다. 감히 선생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였다가는 학위고 교수 자리고 보장받기가 어렵다.""
이기문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그는 이기문이 평양 출신이 아니고 '평북 정주' 출신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 출신이죠. 정주 출신이지만, 평안도 출신인 이기문 교수와 '강원도 출신'이지만, 평양에서 3-4년 정도 살았던 이효석 중 누가 평안도의 사정에 정확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기문 교수의 증언에는 고 이숭녕 선생(이하 존칭 생략)이 등장합니다. 고 이숭녕은 서울 출생이지만, 1933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무려 12년간 평양에 거주했습니다. 이기문의 증언은 이숭녕의 평소 증언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숭녕은 굉장히 구체적으로 자신이 1933년 평양사범학교에 부임했고, 자신의 취임축하연에서 처음 '불고기'를 맛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황씨가 왜 이효석의 주장은 성경 받들듯이 하면서 이숭녕의 주장은 언급 자체를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기문은 이숭녕의 증언을 채록해서 소개하는 것 뿐인데, 이기문을 비판하면서 한국의 학문 풍토가 어떻다느니, 이기문의 주장을 거스르면 한국학계에서 매장이라는 등 엉뚱한 소리로 물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기문은 자신도 이북 출신이며, 해방 즈음까지 서울에서 불고기는 그리 대중적인 요리가 아니었다고 증언했죠. 그런데 1938년에 발표된 '오빠는 풍각쟁이'라는 노래에도 '불고기'라는 가사가 등장하는 걸로 볼 때, 해방 전까지 서울에서 불고기가 유행하지 않았다는 이기문의 주장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해당 노래 가사 중에는 '명치좌'(일제 강점기 조선의 영화관, 오늘날의 서울 명동 소재)라는 단어도 있어, 1938년 당시 불고기가 서울에도 진출했다고 판단하는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의 작사가가 연극인으로서 당시 악극단을 이끌고 전국팔도를 돌아다녔던 사람이므로, 평양에서 '불고기'를 처음 접하고 이 노래를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제 개인적인 망.상일 뿐이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처럼 당시 사람들의 증언은 개인의 한정된 경험에 근거할 뿐이므로, 다양한 이견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교차검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황씨는 이효석의 주장 하나만을 근거로 당시 평양에서 '불고기'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고, '야끼니꾸'라고 불렸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의 구체적인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평양에서는 적어도 1930년대에 불고기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 문헌이 있다. 야끼니꾸라는 말이 일상의 말이었음을 확인해주는 문헌이기도 하다."""
이 주장에 대해 저는 "평양 모란대 명물 불고기"라는 1930년대 동아일보 기사를 근거로 반박했습니다.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https://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810120024126596&select=&query=&user=&site=&reply=evanmeek&source=&sig=h6jjGY2Ai3HRKfX@hljXHl-gLmlq ) 이에 대해 황씨는 전혀 반론이나 자기 주장의 실수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효석의 글을 근거로 같은 얘기만반복하는 건 황씨의 주특기이므로, 저도 그간 제가 했던 얘기들을 근거로 황씨의 주장을 반박해 봤습니다.
아래에서는 오늘 동아일보 기사 검색을 통해서 찾은 기록을 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저는 동아일보 옛날 기사 검색을 통해 '야끼니꾸'라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에 반해, '불고기'나 '소육'이라는 기사는 여러 차례 나오고, 따라서 소육=불고기이며, 불고기가 야끼니꾸의 번역어라는 황씨의 주장에 반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야끼'라는 단어를 갖고 검색해 보았습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는 '야끼이모'(やきいも[焼(き)芋])였습니다. 먼저 아래 기사들을 보시겠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의 글이 1921년 12월 15일자 동아일보입니다. 김준연이라는 사람이 독일로 가는 이모씨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형식의 기사입니다. 과거 김준연(1895년 ~ 1971)이라는 언론인 겸 정치인이 있었는데, 이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대충 보면 구체적인 내용은 독일로 유학가는 친구의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적은 돈으로 독일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염려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야끼이모(燒芋)나 먹고 공부하려면 20원만 가지고도 지낼 수 있겠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야끼이모는 군고구마를 뜻합니다. 왜 우리는 지금 '야끼이모'를 '불고구마'로 번역하지 않고, '군고구마'로 번역해서 쓰고 있을까요?

아래 기사는 1928년 4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대구의 시장 풍경을 소개하면서, 겨울철에 한참 외치던 야끼이모 장사들의 소리가 봄철이 되면서 엷어져 간다고 소개하고 있네요. 

아래 기사는 1935년 1월 18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아예 제목으로 "고구마과자 야끼이모 사서 맛있게"라고 쓰고 있네요. 이처럼 당시 신문에서는 일본식 음식이었을 경우 일본식 이름으로 표기하는 것에 아무런 부담이 없습니다. 기사 제목에서 버젓이 '야끼이모'라고 쓰지 않습니까? 왜 그럼 '불고기'는 '야끼니꾸'라고 한 번도 안 쓴 것일까요?

아래 기사는 1936년 3월 5일자 신문광고입니다. [최신과학의 지식]이라는 책 선전광고인데요. 굉장히 재미있는 광고입니다. 조금 괴롭겠지만, 다 읽어보시면 재밌으실 겁니다. "여보세요 하더니 이것도 탈인걸요. 그녀와 그의 경우"라는 제목인데요. 대충 요약해 보겠습니다. 
그는 그녀와 긴자 거리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걷고 있습니다. 그가 텔레비전 얘기를 시작하였을 때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화장품점의 진열장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윽고 그는 서서히 화제를 돌려 라듐 얘기를 했는데, 그녀는 아파트 근처에 있는 야끼이모야(焼き芋屋)얘기를 했습니다. 야끼이모와 라듐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그는 그녀를 열애하는 나머지 영하 180도의 액체공기 얘기, 무선전기조종선, 인조인간이 연애하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여보세요'라고 하더니, "인견은 서양고치에서 뽑는 것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그녀는 일상과학과 신지식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대동사 서점 발행의 [최신과학의 지식]이라는 1책을 빌려 읽으면서 실연을 면했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우리가 상식적으로꼭 알 필요가 있는 최신과학 ...(이하 생략)"
내용과 상관 없는 기사인데 너무 길게 인용했네요. 아무튼 여기서도 긴자 거리에 있는 '야끼이모야' 즉, 군고구마 장수 얘기가 나옵니다. 일본 도쿄 긴자 거리에 있는 '군고구마' 얘기를 별다른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우리 민족에게도 '야끼이모야'(군고구마 장수)가 이미 굉장히 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내용입니다. 

이 외에도 스끼야끼도 한두차례 보이고, 강경애의 소설에 야끼구리(やきぐり, 군밤)가 언급되기도 하네요. 전부 '야끼00'은 현재 우리말로 '군00'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불고기가 야끼니꾸의 번역어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죠.
 
아래 1955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시죠.
치안국에서 왜식명칭을 우리말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입니다.뎀뿌라, 스끼야끼 등의 왜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언급된 단어들을 보시죠.
왜정식(화식), 튀김(뎀뿌라), 왜전골(스끼야끼), 고기덮밥(니꾸돔부리), 계란덮밥(오야꼬돔부리), 꼬치안주(오뎅안주), 초밥(스시), 생선회(사시미), 나무도시락(오리벤또), 냄비국(나베우동), 냄비밥(요세나베), 볶음밥(야끼메시), 생선묵(가마보꼬), 단무지(다꽝), 장어덮밥(우나기돔부리), 유부초밥(이나리스시), 간이국수(가께우동), 찹쌀떡(모찌) ,통조림(간쓰메) 등이 있습니다. 그림을 5장까지만 올리게 되어 있어, 간이국수 이하는 그림이 짤렸습니다. 
1942년생이신 제 부친은 일제 시대를 딱 3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통조림을 간쓰메라고 부르십니다. 튀김은 뎀뿌라라고 부르시고요. 물론,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하십니다. 엊그제 야끼니꾸에 대해서 여쭤봤습니다. 야끼만두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면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하시더군요. 야끼니꾸가 익히 쓰이던 단어라면, 어째서 당시 신문에 전혀 언급이 없을까요? 보신 것처럼 당시 신문기사에는 일본어 단어가 넘쳐 납니다. 그리고 왜 한반도에서 야끼니꾸라는 말이 그렇게 급속하게 사라진 것일까요? 오뎅이나 뎀뿌라 같은 단어는 순화운동을 그렇게 했는데도 살아남아 있는데 말이죠. 

댓글
  • 데뽀롱 2018/10/18 15:07

    황교익씨가 님 글 주시하고 있데요..

    (hOBCMw)

  • nomads 2018/10/18 15:08

    이효석의 사례에 대한 반례가 넘처나는데 그런 반례에 대해선
    할 말이 없으니까 계속 모르는척 하고 있는 것이죠.
    그 수많은 반례들에 대해선 왜 페북에서 언급 못하는걸까요?

    (hOBCMw)

  • 부엔까미노 2018/10/18 15:09

    황교익 부들부들

    (hOBCMw)

  • KIA_허영택 2018/10/18 15:12

    데뽀롱//뭔 얘기가 나왔나요? 주시해주시면 영광스러울 뿐이죠. 헌데 전 전문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고 일개 '중졸'일 뿐이라서...

    (hOBCMw)

  • deadend1031 2018/10/18 15:26

    그간 공방을 통해서 황교익은 논증을 위해 증거를 해석하거나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을 들켰고, 나아가 학문적 대화를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했죠.. 진지하게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서 본인의 평판을 스스로 무너뜨린 이상,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을 이야기를 신나서 떠드는 3류 글쟁이로서 정체성만 남을듯.. 그게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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