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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툰] 딸기코 때문에 폐인이 된 홍진 이야기.jpg

 







홍진은 선조 임금을 의주로 잘 모신 공로로 호성 공신 2등에 오른 인물이다. 
선조 임금이 한양으로 복귀했을 당시에는 한성부 판윤으로서 수도의 치안과 안정을 꾀하여 많은 치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때 서울의 많은 백성들이 굶주렸는데, 홍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구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임란 당시 명망있는 신하들이 선조를 버리고 도망갔지만 홍진만은 끝까지 왕을 지킨 일화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세히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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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6월 1일 기축 20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난이 일어나자 명망있는 진신들이 모두 도망하다
애초에 상이 경성을 떠날 때 요사스런 말이 갖가지로 퍼져 국가가 틀림없이 망할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명망있는 진신(縉紳)들이 모두 자신을 온전하게 할 계책을 품었다. 수찬 임몽정(任蒙正)은 하루 먼저 도망하여 떠났으며, 【몽정은 임국로(任國老)의 맏아들이다.】 
정언 정사신(鄭士信)은 도성 서남 쪽에 이르러 도망하였고, 지평 남근(南瑾)은 연서(延曙)에 이르러 도망하였으며, 그 나머지 낭서(朗署)와 여러 관사는 제멋대로 흩어져 떠났고, 산반(散班)과 외신(外臣)은 한 사람도 따르는 자가 없었다. 
평양에 이르러 대사성 임국로는 어미의 병을 핑계대고, 이조 좌랑 허성(許筬)은 군사를 모집하겠다고 핑계대고, 판서 한준(韓準), 승지 민준(閔濬), 참판 윤우신(尹又新)은 서로 잇따라 흩어져 떠났고, 노직(盧稷)은 영변에서 뒤에 떨어졌다가 도망하였다.
상의 행차를 따르던 제신(諸臣)들도 서로 이르기를 ‘강문(江門: 압록강 국경)에 이르면 늙고 병든 사람은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 하면서 모두 견고한 뜻이 없었는데, 홍진(洪進)만은 울면서 이항복에게 말하기를 ‘시종하는 신하는 어려운 때에 마땅히 임금을 따라야 한다. 나는 한낱 오활한 선비이니 세자를 따른다 해도 무슨 공을 세울 수 있겠는가. 죽든 살든 상의 행차를 따르겠다.’ 하였다. 
세자를 따르거나 왕자를 따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경성에서 의주(義州)에 이르기까지 문관·무관이 겨우 17인이었으며, 환관(宦官) 수십 인과 어의(御醫) 허준(許浚), 액정원(掖庭員) 4∼5인, 사복원(司僕員) 3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상(선조임금)이 내관(內官)에 이르기를, "사대부가 도리어 너희들만도 못하구나." 하였다.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6월 1일 기축 20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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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예문관의 사관들이었던 조존세와 김선여, 승정원 주서였던 임취정, 박정현 등은 선조를 좌우에서 시종하면서 임금의 잠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심복들이었다. 임금의 복심들이라 선조는 이들을 자제처럼 대우 하였다. 


임금이 요동으로 건너갈 계책을 세우고 마침내 결정하자, 네명의 사관들은 분개하여 사초를 구덩이에 넣어 불태우고, 어둠을 타고선 도망하였다. 


선조는 사관들이 보이지 않자,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이들을 걱정하였는데 새벽녘이 되어서야 이들이 도망간 걸을 알자, 모두들 사색이 되어 분위기가 참담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망간 사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난리가 끝난 후 조존세, 임취정, 박정현은 가벼운 견책만 받고서는 다시 조정에 나가 승승장구 하였다고 하니, 제대로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거 같다. 


이들과 달리 끝까지 왕을 지킨 홍진은 임란이 끝난 후에 공신이 되었다. 끝없는 부귀영화를 누릴 것만 같았던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 온다. 다름이 아니라, 콧병이 나서 폐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류 증상으로 인해  홍진이 삭직을 청하는 상소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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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03권, 선조 39년 9월 1일 丁卯 5번째기사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당흥부원군 홍진이 콧병이 심하여 삭직을 청하다
당흥 부원군(唐興府院君) 홍진(洪進)이 차자를 올리기를,
"당흥 부원군 신(臣) 홍진은 아룁니다. 천신(賤臣)은 나이가 이제 66세이고 병이 몸에서 떠나지 않는 데다가 코에 혹이 생겨 모양이 보기 흉한데 세월이 갈수록 더하니 고치지 못할 것을 스스로도 압니다. 
접때 발이 아픈 것 때문에 말미를 받아 침을 맞았는데, 어떤 의원이 보고 ‘얼굴의 중병(重病)은 감히 꼭 완치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여 치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기에, 신이 그 말을 따라 경락(經絡)에 침을 맞고 혹도 치료하였으나, 깊은 고질병이 되었으므로 의술이 효험이 없었습니다. 
코 끝에 구멍이 나서 곪지도 않고 아물지도 않으며 한열(寒熱)이 왕래하여 머리가 아프고 먹는 것이 역하며 여러 가지 나쁜 증세가 한꺼번에 발생하여 원기(元氣)도 나른합니다. 병세가 이러하니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늙어도 죽지 않고 외람되게 후한 녹을 받고 있고 평생 동안 벼슬했어도 조금도 도운 것이 없는데, 위에서 침을 맞으실 때를 당해서도 문안하는 반열에 끼지 못하게 되었으니 대궐을 바라봄에 몸둘 곳이 없습니다. 신하가 이러하면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바라건대 성자(聖慈)께서는 특별히 가엾게 여겨 신의 직명(職名)을 삭제하여 자리만 차지하고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변변치 못한 신하의 경계로 삼게 하시고 또 신으로 하여금 거적에서 병을 앓으며 어리석은 분수를 지키게 하소서. 신은 매우 황공스러운 나머지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처분을 바랍니다."하니,
【홍진은 사람됨이 키는 다섯 자도 못되나 코는 주먹만큼 커서 당시 보는 사람마다 손뼉을 치면서 웃었는데 마침내 콧병이 나서 출입하지 못하고 폐인이 되었다. 】 
상이 답하기를, "차자의 내용은 살펴보았다. 경(卿)은 편한 마음으로 조리하고 사직하지 말라"
-선조실록 203권, 선조 39년 9월 1일 丁卯 5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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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콧병은 홍진의 호성공신 초상화가 남아 있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럼 한번 그의 공신 도상을 살펴보자! 






그의 코끝이 뭉개져서 흉해진 걸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에 남아있는 병변을 연구하시는 이성낙 교수(의학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코가 유난히 크고 비대하여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임상적으로 비류로 판단할 수 있는데,비류는 주로 양볼에 홍반이 생기는 주사로 인해  코가 커지는 증상으로써 흔히 딸기코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라고 했다.
 
이런 조선시대 초상화에 남아 있는 병변은 홍진 대감의 초상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초상화에도 흔히 보인다.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 이성낙 지음 / 눌와


1. 딸기코 증상의 홍진 초상화 
2. 죽기직전 흑색황달 증상의 오명항 초상화
3. 흑색황달 전 증상인 황달기가 있던 오명항 초상화
4. 다모증으로 인해 유난히 얼굴에 잔털이 많던 유복명 초상화
5. 백반증에 걸린 송창명 초상화
6. 입술 아래에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서매수 초상화
이가운데 영조 때 공조판서를 지낸 송창명의 초상화는 한쪽 볼 전체와 귀까지 하얗게 칠해져 있다. 그림이 훼손된 것으로 보일 정도다. 
관모를 눌러쓴 이마 쪽도 허옇다. 피부과 의사이자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성낙 교수님은 이를 ‘백반증’으로 진단했다. 
특히 그림에서는 하얗게 변한 피부의 가장자리가 약간 거뭇한 ‘경계과색소침윤’까지 묘사됐고 이 교수는 이를 독일의 피부과학 학술지에 발표했다. ‘송창명 초상’은 백반증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그림 기록으로 공인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이, 조선 시대 초상화는 라고 불리우는 정확한 묘사와 기록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이러한 질병들까지 표현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사실 그대로의 묘사에 충실했고, 그 증거로 온갖 피부병이 집요할 정도로 정확히 표현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이성낙 지음)

댓글
  • 육성팬 2018/09/17 15:22

    선추천 후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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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연소혼 2018/09/17 15:23

    어릴때 보던 학습만화 그림체에 드립은 요즘 드립인게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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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료 2018/09/17 15:25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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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차니스트 2018/09/17 15:26

    잘 봤습니다. 고양이가 첫컷에 나와서 고양이 언제 나오나 궁금했는데... 상관없는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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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돌이악사 2018/09/17 15:26

    초상화 이야기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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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현욱 2018/09/17 15:26

    도망간 놈들은 어찌되었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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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명은 2018/09/17 15:27

    역사가 재밌다는걸 장수찬님 덕분에 다시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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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에고 2018/09/17 15:27

    코 묘사가 굉장히 현실적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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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아지 2018/09/17 15:27

    초상화 같은거 좀 잘생기게 그리라고 할것도 같은데
    그런게 아닌가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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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CaONib 2018/09/17 15:27

    이항복은 이런 야사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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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요바돌 2018/09/17 16:00

    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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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11

    육성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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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13

    암연소혼//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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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13

    장료//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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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13

    귀차니스트// 타이틀을 바꿨습니다. 이젠 바꿀때가 된 거 같아서요 ㅎㅎ..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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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14

    떠돌이악사// 저도 홍진 초상화를 보고...이거 잘못 그린 거 아닌가? 싶었는데 실제로 홍진에겐 콧병이 있었고 화원이 그걸 보고 정확히 그린 초상화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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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19

    정현욱// 웃픈 이야기이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아무런 일이 없었듯이 다시 벼슬길에 올라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우리나라는 지금도 그렇지만 처벌에 있어선 관대한 편인거 같아요! 근데 여기엔 선조 임금에게도 일정부분 과실이 있어서 도망간 신하들만 탓하기엔 그렇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선조 임금이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호종한 내시,의관, 마부 등에게 공신칭호를 준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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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19

    박명은//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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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20

    푸에고// 정말 그렇죠? 저도 첨에 봤을때 그림이 잘못된 줄 알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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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21

    송아지// 화원들이 못생기면 못생긴대로 집요할 정도로 현실감 있게 그린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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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21

    CaCaONib// 넵. 워낙 개구진 분이라서 그런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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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7 17:21

    모요바돌//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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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Rhythm 2018/09/18 09:40

    정말 잘 읽었습니다.
    변변찮은 임금을 끝까지 보필한 충신이 질병 때문에 부귀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게 안타깝습니다. 정작 도망친 신하들은 부귀를 누린 것까진 아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서 더더욱 아쉽네요.
    그리고 선조들의 기록 정신은 늘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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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셰356A 2018/09/18 09:50

    기록만 놓고보면 의리도 있고 능력도 출중했던 분 같은데 딸기코 때문에 고생을 했다니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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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今春花如雪 2018/09/18 09:56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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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멘탈킹 2018/09/18 10:50

    지난글들 읽어볼만한 글들이 너무 많네요
    좋아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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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8/09/18 10:53

    작품들 너무 잘보고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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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대승 2018/09/18 11:10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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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숙희 2018/09/18 11:23

    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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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울지마 2018/09/18 12:05

    그림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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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DFLOVE 2018/09/18 12:43

    진짜 정감가는 그림체입니다. 언제봐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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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수수 2018/09/18 13:16

    감사합니다.재밋게 잘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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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무부장관 2018/09/18 13:32

    불탄 사초 아깝네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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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3:57

    [리플수정]IRhythm// 사관 4인방 가운데 김선여만이 시종신으로서 왕을 버리고 도망간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난리가 끝난 후에 벼슬길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조존세,박정현,임정로 등은 출세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끈질기게 버티다가 결국,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등극하자 출세 가도를 달렸다고 하더군요. 선조는 자신을 버리고간 사관들이 꼴보기 싫어 얼굴을 맞대야 하는 청요직은 허락하지 않고 외방 수령직만 제수 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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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3:58

    포르셰356A// 넵, 홍진 대감은 그나마 제대로된 신하였던거 같아요. 병만 안결렀어도 좋았을텐데....사람 일이란 알 수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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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3:59

    今春花如雪//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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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3:59

    faraday// 아닙니다! 전 아마추어식으로 그리고 있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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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3:59

    멘탈킹//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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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4:00

    flythew//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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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4:00

    대대승//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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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4:00

    사도숙희// 항상 고맙습니다. 사도숙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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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4:01

    고래울지마//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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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4:01

    연수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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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시큰루니 2018/09/18 14:01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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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ymrsoul 2018/09/18 14:02

    선추천 스크랩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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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8/09/18 14:13

    애무부장관// 저두 안타까워요! 저때 사관들이 짊어지고 갔던 사초들이 붙타서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선조실록이 가장 부실하고 형편없다고 합니다...기록이 너무 없어 민간에 있던 일기들을 죄다 수거해 가서 날짜를 맞추고, 기억을 더듬어낸 것이 그나마 지금 남아있는 선조실록이라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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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잭홀스맨 2018/09/18 14:40

    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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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NEVALLEY 2018/09/18 15:26

    그림체가 너무 재밌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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