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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최고의 엔딩을 가진 21C 영화들 (2) 외국영화 15위~11위 (스포 포함)



영화의 엔딩(ending)은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평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좋았던 작품이
엔딩의 아쉬움으로 훼손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오로지 엔딩 하나만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작품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러닝타임 내내 축적한 서사와 감정의 결을
폭발시키거나 은은하게 다독이며 마무리하는,
그런 엔딩을 가진 영화를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OST가 깔린다면 금상첨화겠죠.
가을, 영화의 계절을 앞두고
21세기 국내외 영화들 중
가장 인상적인 엔딩을 가진 영화들 30편
(외국영화 20편, 국내영화 10편)을 선정해서
총 여섯 번으로 나누어 연재하고자 합니다.
개인적 취향과 판단에 의한 선정이니
그 선정에 못마땅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외국영화 15위부터 11위까지입니다.
자... 시작합니다.
(글의 성격상 당연히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글 전개의 편의를 위해 경어를 생략합니다.)
(15위)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2013, by 아쉬가르  파라디)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도 도덕적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모두가 나름대로의 이유와 변명을 가졌기에
그 누구를 섣불리 욕할 수도 없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인물들에 대한 놀라운 균형감각을 견지하며,
과거의 업보로 인해 균열된 현재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간군상을 냉철하고도 사려깊게 묘사한다.
파라디 감독이 촘촘하게 짜놓은 그물 속에서
인물들은 퍼덕이며 저마다 고통받고,
마리와 아메드, 마리와 사미르는 각각
어긋나고 미끄러지는 소통으로
서로의 감정적 진실을 곡해하거나 외면한다.
관객들 모두
사미르 아내의 자살 시도가 누구 때문인가로
촉각을 곤두세운 시점에 제시되는,
이 영화의 엔딩은 가히 압도적이다.
침대에 식물인간의 상태로 누워있는 아내에게
그녀가 좋아하던 향기를 맡게 해주는 사미르.
아내의 눈에서 또르르 흘러내리는 한 방울 눈물.
이토록 역설적인 엔딩이라니...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음악이 마침내 쓰이면서
보는 사람의 심장을 덜컹 내려앉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음악은 고작 건반음 몇 개일 뿐...
(14위) [아이 엠 러브] (2009, by 루카 구아다니노)
밀라노 귀족가문의 러시아인 안주인 엠마가
아들의 친구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이 멜로 드라마의 플롯은 지극히 진부하다.
그 진부함을 완벽하게 깨부수는 건
오감을 하나하나 깨우는 우아한 연출.
진정한 우아함이 무엇인지를 증명하는
한 씬 한 씬이 너무도 정교해 숨이 막힌다.
사랑의 순간보다
욕망이 한 사람의 내면에 일으킨
감정적 파문을 집요하게 쫓는다.
자신을 얽매던 관습과 규범을 벗고
어두컴컴한 대저택을 벗어나는 모습을 담은,
이 영화의 엔딩은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그 시간 대저택의 등장인물들의 시선과 동선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탈출을 감행하는 엠마의 심리적 격랑을
수백 개의 숏으로 잘라 편집한 엔딩...
그 마지막은 활짝 열려있는 현관문이다.
그리고
존 아담스의 격정적 음악이 엠마를 부추긴다.
I am Tilda Swinton...
(13위) [더 헌트] (2012, by 토마스 빈터베르)
한 소녀의 사소한 거짓말이 공동체에 전염되면서
결백했던 루카스에게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때로는 항거하고 때로는 분노하지만
루카스의 인격은 서서히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의 낙인은 심지어 자식에게 세습된다.
일년 간의 투쟁 끝에 결백은 증명되고
오명(汚名)의 상처는 치유되는 것처럼,
관계는 회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 마커스의 성인식,
통과의례의 징표로 선물받는 사냥용 엽총.
웃음과 포옹은 낙인의 상처를 봉합할 수 있을까.
사슴사냥을 떠나는 루카스와 마커스.
숲 속의 어둠을 헤매던 루카스를 향해 발사되는
한 발의 총탄.
쏜 사람은 어둠 속의 루카스를 보고 있지만
맞을 뻔했던 루카스는 그를 볼 수 없다.
밝은 햇살에 눈이 부셔서...
진실에 관심없는 마녀사냥이 초래한 낙인이
영원히 씻겨질 수 없음을 깨닫는,
그의 절망의 눈빛이 사슴의 그것처럼 슬프다.
(12위) [우리도 사랑일까] (2011, by 사라 폴리)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며 가정적인 남편,
행복하고 안정적인 가정도 권태를 가져온다.
일상에 대한 권태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고의 심연을 흔든다.
손에 잡히는 일탈 앞에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견디기 힘들고
일탈의 순간에도 건너편 마주하는 일상 때문에
온전히 일탈에 젖지도 못한다.
마침내 일탈이 일상을 집어 삼키지만,
새 것이 헌 것이 되듯
새 사랑도 다시 권태가 된다.
새로운 사랑이 헌 사랑으로 낡아가는 모습을
영화는 짧은 하나의 호흡으로 그려낸다. 비웃듯.
그리곤 찾아오는 공허의 시간...
엔딩씬,
전남편 루와도 함께 탔을,
일탈의 대상인 대니얼과도 함께 탄 스크램블러에
이제 마고 혼자 올라탄다.
음악은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울듯 웃듯 스크램블러에 몸을 맡긴 마고는
이제 그렇게 사랑 없이 성장하는 법을 배울까,
아니면 사랑, 권태, 이별의 무한반복에 빠질까...
(11위) [다크 나이트] (2008, by 크리스토퍼 놀란)
블록버스터도, 히어로장르도
이 정도의 깊이를 가질 수 있다.
아니 틀렸다.
웬만한 철학서적보다 더 심오하고 진중하다.
모든 질서를 조롱하고 거부하는 조커와
조커에 의해 자신의 신념을 시험받는 배트맨.
입이 찢어진 조커는 반드시 악(惡)인가?
입만 보이는 배트맨은 반드시 선(善)인가?
슬픔과 분노에 미쳐 타락한 하비 덴트는
신념과 정의 대신에 동전을 집어들고,
배트맨은 하비 덴트의 슬픔에 공감하며
자신의 슬픔을 승화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똑같은 출발점에 놓였던 두 히어로는
그렇게 빛과 어둠으로 갈라진다.
악을 폭력으로 응징할 수 있는가,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의 고민 끝에
배트맨은 스스로 자처해 수색견들에게 쫓기며
어둠 속으로 질주한다.
한스 짐머의 장중한 음악이 외로운 그를 따라간다.
고든이 아들에게...
"Because he's not a hero.
He's a silent guardian, a watchful protector.
A Dark Knight."
(그는 침묵 속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자...어둠의 기사란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 혁명전야 2018/09/01 05:30

    http://m.blog.naver.com/hixxhim/221350198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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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8/09/01 05:39

    르 빠세는 정말 좋더군요.
    저도 불펜에 한번 추천할까 했습니다.
    수마가 엄습해서 선추천 후정독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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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05:41

    flythew// 아이고... 글이야 나중에 읽어주시먼 되고 비 피해 없게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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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ededag 2018/09/01 05:53

    정성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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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nSolo 2018/09/01 05:56

    윗 영화중에 닥나이트 하나 봤네요. 혁명전야님 올려주신 영화로 올 가을을 보내야 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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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06:03

    goededag//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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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06:04

    HanSolo// HanSolo님 눈을 사고 싶을 정도입니다.^^; 2018년 가을을 좋은 영화들과 함께 풍요롭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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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등심 2018/09/01 08:48

    더헌트 보면서 참 답답하고 숨막히단 느낌 받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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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8/09/01 09:27

    아 수마가 졸음(睡魔)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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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0:20

    꽃등심//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괴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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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0:21

    flythew// 아 그 수마가 水魔가 아니었군요.^^;; 다행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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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KIRA 2018/09/01 10:46

    좋은글입니다 이맛에 불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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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rtiz 2018/09/01 11:13

    오 영화 추천은 언제나 옳죠.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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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8/09/01 11:40

    flythew// 오~~르빠세란 영화가 님의 맘속 추천 목록에도 있었던 영화였군요..아직 못보고 있네요..ㅎㅎ
    주말 즐겁게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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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8/09/01 11:48

    오~~또 올라왔네요!!!
    서두의 문장도 계속 반복해주셔서 넘나 좋습니다!!
    사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와 르 빠세 요거 계속 못보다 파도는 한달 지난 후에서야 보게됐는데..요 며칠전에요..르빠세 정말 관심 급 가는 영화입니다!!
    나머지 영화들의 엔딩씬은 진짜...
    글을 읽고 영상이 머릿속에 쫘악 펼쳐치는데 정말 소름이 돋네요..
    헌트란 영화는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는데요..정말 넘나 먹먹함을 넘어서서 답답함을 넘나 느꼈던거 같아요...
    아마 님의 글처럼 낙인이 영원히 씻겨질 수 없다라는 말씀에..ㅜㅜ더더욱 답답함을 느꼈던거 같아요
    미쉘의 완전 빠지게 해준 님의 추천 영화들..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지막 장면...ㅠㅠ
    이제 그렇게 사랑없이 성장을 배울까..사랑 이별 권태의 무한반복일까..글로 또 읽어도..정말..
    엔딩 장면이 넘 생각나네요...
    다크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 역시...아직까지도 흥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장면같아요
    최근에도 생각날때 엔딩장면은 아직까지도 보고 있고요
    하~~
    어제 사정이 생겨서...영화를 전혀 못봤네요..ㅎㅎ
    금욜 밤 영화 보는게 가장 좋은데 말이죠
    뭐...오늘은 언더더 스킨이 과연 어떤 영화일지 기대감으로 볼 수 있을거 같아요!!
    혁명전야 님의 글이 큰 어떠한 힘으로 작용하는 이유가
    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고있으니 다시 또한번 봐야될 거 같고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인거 같아요!!
    날씨가 그래도 많이 덥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주말 정말 즐거운 일들만 생기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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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2:08

    AKIRA// 칭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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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2:09

    D.Ortiz//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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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2:13

    안녕요정// 오늘은 빠르게 만났습니다.^^ 르 빠세가 영어로는 the Past인데 이걸 국내에서 개봉할 때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쌩뚱맞은 제목을 갖다 붙였죠.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도 머물지가 않았다가 아니라 '모두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다'로 제목을 정하는게 맞습니다. 파라디 감독이 이 사실 알았으면 배급사를 고소해도 할 말이 없었을 것 같네요.ㅠㅠ 그러나 제목 빼고는 완벽한 영화이니 나중에 꼭 보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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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2:16

    안녕요정// 아이 엠 러브, 더 헌트, 우리도 사랑일까, 다크나이트는 다 보셨고 제 글 맘에 들어하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축구, 야구 결승전에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되시겠네요. 행복하고 건강하게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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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win 2018/09/01 12:54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가 있으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도 곧 나오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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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상태 2018/09/01 14:45

    다행히 한두편씩은 본 영화들이 있군요. 우리도 사랑일까 내용은 이해했으면서도 권태란 단어를 써보니 완전 새로운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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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5:50

    lewin// 작품성에 있어서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도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와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엔딩'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후자가 더 낫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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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5:51

    기아상태// 마고의 변심에 가장 크게 작용한 감정은 권태로 밖에는 표현이 힘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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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win 2018/09/01 16:01

    혁명전야// 아... 개인적으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엔딩도 정말 좋아하는데 아쉽네요 ㅎㅎ
    부부 둘이 나란히 앉아서 하염없이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그 모순 된 감정에 대한 여운이 정말 오래가더라고요
    뭐, 대신에 더 좋은 작품들이 상위권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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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6:06

    lewin// 말씀하신 그 장면, 모순된 감정에 대한 여운... 생생하네요. 네 윗순위 엔딩들도 기다려주세요. 편안한 주말 보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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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TCM 2018/09/01 16:08

    늘 좋은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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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1 16:12

    LTCM// 항상 응원해주시고 추천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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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강연필 2018/09/02 01:27

    며칠 전 더숲아트시네마에서 아이 엠 러브를 봤는데, 마지막 장면 정말 멋지더라고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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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09/02 07:20

    최강연필// 넘넘 좋으셨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스크린으로 만나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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