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많이 힘들어서 쓴 뻘글에 많은 분들께서 응원해주신 덕분에 조금씩 힘을 얻고 있었어요.
  쉽게 회복되지도 않고, 거대한 암초에 걸린 듯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고, 껍데기만 열심히 하는 척하며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에 자기가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더랬죠.
  어제, 태풍이 분다는데 부서 회식이 있었습니다.
  부서원들 모두 내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것도 알고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고 인정도 해주지만 나보다 아이가 다 힘들 테니 아이 많이 사랑해주라고 조언도 해주시곤 하시는 분들입니다.
  지난 주에는 한 분께서 크게 한 턱 쏘시면서 소고기 회식을 했는데 아이를 꼭 데려와서 많이 먹여주라고, 아이가 건강하고 튼튼해야 엄마도 일에 몰입할 수 있다고 하면서 모두가 배려해주셨더랬죠.
  한 시간 동안 아이는 3인 분에 가까운 소고기를 흡입하고 아주 흡족한 얼굴이 됐고, 상무 이사님께서 따로 챙겨주신 곰돌이 케잌까지 들고 돌아 왔었어요.
  어제는 돼지갈비 회식이었는데 또 아이를 데리고 오라 해서 걱정이었습니다. 워낙 잘 먹는 아이라 얼마나 다른 분들의 지갑을 털게 할까 하고요.
  일이 끝난 뒤 아이를 데리러 가다 빤히 차가 오는 줄 알면서도 그 좁다란 길목으로 불쑥 들어오는 행인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사이드미러는 나갔고 자기 썬글래시스가 망가졌으니 그 값을 내놓으라는 사람에게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주고 급하게 아이를 데리러 갔죠.
  일이라는 게 참 웃겨요. 아이 데리러 가다보니 바지가 찢어져 있는 거예요.  울고 싶더라고요. 
  아끼고 아껴서 아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식, 예쁘고 몸에도 좋은 옷 해주고 싶어 옷도 아껴가며 사다 몇천 원이지만 더 주고 산 옷이 찢어져 못 입게 되고, 애먼 돈이 나가면서 그 돈이면 우리 아이 적어도 두세 달 먹을 치즈와 우유를 먹일 수 있었는데 화가 나다 못해 울고 싶었어요.
  아이를 데리고 회시로 복귀하니 아이를 반겨주며 예뻐해주고 “대표이사님 오셨습니다. 다들 예의를 갖추세요”하면서 회식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가 고기가 적지는 않은지, 잘 먹고 있는지 수시로 와서 확인해주시고 아이가 제대로 먹지 못할까봐 연신 고기를 굽던 막내님까지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를 배불리 먹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다들 대표이사님께 뇌물이라며 용돈을 주시고, 아이 돈은 아이 돈이기에 아이 가방에 따로 넣어주고 집에 와서 씻기고 잤습니다.
  일도 힘들고 뜻한 바와는 너무나 다르게 일이 진행돼 힘들던 와중이라 ‘오늘만 조금 늦게 일어나자. 하루 늦게 일어난다고 해서 내가 게으르거나 나태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 괜찮아, 괜찮아, 열심히 노력했는데 성과가 안 나온다고 그게 네 잘못은 아니니까 조금 더 쉬어도 돼’ 라며 30분 정도를 더 누워 있었더니 아이가 일어나더라고요.
  그 모습도 참 짠했던 게 아이도 엄마 생활에 맞춰 자기가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난 것이니까요.
  아이를 먼저 씻기고 먹을 것들을 챙겨 준 뒤 씻고 나오니 아이가 엄마 지갑을 만지고 있더라고요.
  종종 엄마 지갑에서 지폐들을 꺼내 찢고 날리고 물고 씹고 맛본 뒤 뱉어버리기 일쑤였던지라 ‘뭐 해!’라는 말부터 나갔는데 아이가 웃으며 엄마를 보며 지갑을 내밀더라고요.
  “엄마, 엄마 지갑에 내가 돈을 이만큼 넣었어요. 이걸로 엄마 까까 사먹어요. 그런데 혼자 가면 안 돼요. 저 울어요. 엄마 까까 사러 갈 때 같이 가요. 그리고 저 분홍색 호루라기 하나만 사주세요. 꼭이요.” 라며 웃더라고요.
  어제 받은 용돈들을 넣어둔 가방의 지퍼는 열려 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아이는 자기가 받은 것들을 전부 엄마에게 줬어요. 금전개념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 마음이 정말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워서 울컥한 마음에 혼자 옥상에 올라가 잠시 울다 내려와 단체톡으로 자랑했어요.
  어린이집에 가서도 아이를 세워놓고 선생님께 자랑하고 그래도 모자라 또 이렇게 자랑하고 있어요.
  어제 안 좋은 일들의 연속을 겪으며 ‘9월에는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러나’라고 울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생각했는데 그 모든 걸 아이가 다 회복시켜주고 힐을 줬어요.
  오늘 오후에 일을 할 때 다른 부서에서 장급 임원분들이 찾아와 이제 전처럼 다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인다며 소름이 끼쳤다고 응원해주러 오시기도 하고 여러 모로 좋은 소식들을 들은 날이에요.
  우리 이쁜 아이가 더 사랑스럽고 매력 넘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부족한 게 많은 엄마가 더 열심히 살라고 자랑 겸 응원 겸 떠 뻘글을 썼네요.
    인간은 대체로 스스로 운명을 만든다 - 세네카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이 의지하던 세계를 잃어버렸을 때이다 - 헤겔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최우선에 있으며 가장 근본이 되고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의지'이다. 그 이후에 방법론이 존재하게 되며, 방법론은 가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 호미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죽을 수도 있고, 이토록 아름다운 애증이 있으니 삶을 내가 무엇을 더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빛과 의미가 달라지리라. 내게 큰 힘이 되는 아이와 나를 위해주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으로 삶을 더 치열하며 현명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내가 아는 분이든 아니든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