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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청래가 쓴...다시 읽는 김대중 대통령님 추모사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을 떠나 보내며

김...대...중!

당신은 저보다 정확하게 40년 먼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신께서 태어난 그 해는 5천년 역사속에 최초로 나라의 주권을 잃고 전 국민이 ㅅㅇ하던 일제치하였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는 박정희 군사독재가 둥지를 틀었던 1965년이고 당신께서 독재와 치열하게 맞서 싸우던 해였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에 당신께서는 팔팔한 40대였고 당신께서 세상을 떠나신 올해는 제가 팔팔한 40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언제부터 당신의 존재와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제 고향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입니다. 당신의 정치적 선배였던 유진산 선생의 고향 마을이 제 고향마을이기도 합니다. 유진산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여섯 살의 나이였던 꼬마인 제가 부모님 손에 이끌려 문상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 때 당신께서도 저희 마을에 문상을 오셨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억나시나요? 그해 진산초등학교 작은 야산 꼭대기에 유진산 선생 무덤에서 많은 어른들이 계셨는데 그 때 거기에 계셨나요? 당신께서 계셨다면 그 때 때꼬장물 흐르며 울던 아이가 접니다. 그랬다면 아마 그 때 당신을 처음 만났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때 그 아이가 성장해 지금은 당신의 서거를 애도하며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조문객을 맞이하는 당신의 상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과의 두 번째 만남부터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을 존경해 왔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과정에서 숨진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연세대 교정에서 만장을 앞세우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청으로 향하는 신촌로터리에서 저는 분명히 제가 존경하는 김대중 당신의 뒤를 따르며 걸었습니다. 어렸을 적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의 모습이 아니라 민주화를 열망하는 열혈 청년학도로 당신의 뒤를 따랐습니다.


당신과의 두 번째 만남 직전에 저는 전두환 군사독재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다가 경찰에 잡혀 최초로 5일간 유치장 신세를 진 운동권 대학생이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저는 그 후로 세 번 더 경찰과 안기부에 잡혀 2년간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공교롭게 마지막 감옥살이는 당신의 고향인 목포교도소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당신의 감옥살이 후배이기도 하고 경찰과 안기부에 끌려가 두들겨 맞고 고문도 당한 피해자의 동지이기도 합니다.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제가 선거권을 획득한 후 치러진 세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당신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 번째 찍은 제 한 표가 당신의 대통령 당선의 마지막 일자리 득표 숫자입니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이던가요? 제 감옥살이 충격으로 중풍이 와 몸져누우신 어머니를 업고 투표장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제 등에 업힌 어머니께 “어머니 3번입니다. 3번 김대중!”이라며 기표소 안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10번째 막내아들 등에 업혀 떨리는 손으로 3번을 찍던 저희 어머니도 당신의 지지자였습니다.


당신은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이십니다. 그냥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유사 이래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정부 최초의 대통령이셨습니다. 5천년 역사 이래 왕권 세습이 아니라 민중의 손으로 권력을 세운 최초의 국민의 정부 대통령이셨습니다. 도올 김용옥선생을 비롯한 석학들은 일본 자민당 정부보다 국민의 손에 의해 세워진 김대중 정부를 보며 한때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보다 더 큰 발전 가능성을 엿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5년 동안 대한민국의 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신의 1997년 대통령 선거 공보에 새겼던 든든한 대통령, 준비된 대통령은 헛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당신께서 영국에서 돌아오신 1995년 저와의 세 번째 만남인 아-태평화재단 아카데미 특강에서 당신은 영화를 예로 들며 지식정보산업과 함께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당신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고 당신의 열정에 놀랐습니다. 언론을 통해 전해들은 그 이상으로 당신은 위대했고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남북통일을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고 평생을 싸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이익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마치 고난 받는 예수처럼 형극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군사독재에 의해 들씌워진 빨갱이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남북분단의 언덕을 넘어 온 몸에 못이 박히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동해 앞 바다에 수장될 뻔하기도 했습니다. 80년 광주항쟁의 한 복판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공포에 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육체만 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꼿꼿하게 당신의 정신도 살아남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은 당신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 오히려 당신의 신념과 집념으로 더욱 거세게 살아났습니다. 저는 압니다. 당신은 탄압의 고통 속에서 더욱 빛났고 감옥살이를 하면서 더 많은 지식과 식견을 넓혔습니다. 당신의 해박한 지식과 탁견은 당신의 성실함의 소산일 뿐만 아니라 고난 속에 핀 꽃 인동초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압니다.


당신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그리고 대통령을 퇴임한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당신이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탁월한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이 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당신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지식정보화 산업의 근간이 된 초고속 인터넷 망을 구축할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이 아니었다면 사전검열 철폐로 대한민국 영화산업을 필두로 한 문화산업의 한류가 이처럼 불처럼 융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행운아입니다. 당신과 40년을 넘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운동권 동지로 정치 후배로 살았습니다. 저는 운명적이게도 당신이 사셨던 동교동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어 동교동 사저를 방문했을 때 당신은 2004년 총선 때 저를 찍었다고 말씀해 신문에 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 당신을 찍었고 당신은 저의 국회의원 선거 때 저를 찍었습니다. 저의 총선 득표수 끝자리 숫자는 당신께서 찍은 표입니다. 이처럼 당신과 저의 만남도 끝내 한길에 같이 동행했던 40년이 저로서는 영광이고 행복입니다.


당신은 저 개인적으로도 참 고마운 분입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어 동교동 사저에서 당신과 마주앉아 당신의 특별강의와 특별과외를 받던 기억을 하면 참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당신은 명석한 기억력으로 한국 현대사를 세세히 복원해 말씀해 주셨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6.15 정상회담과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의 외교 활동과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의미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과 북-일 정상회담을 통한 북한의 핵무기 해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금강산과 개성공단이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사실도 역설하셨습니다.


당신은 이제 세상과의 작별을 고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해맑은 웃음과 좌중을 웃기는 유머도 들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대중을 압도하는 사자후와 당신의 신념에 찬 당당한 모습도 이제 영상물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내일 당신과 이별을 하러 국회로 갑니다. 그 자리에는 2000년 평양에 가서 북(김정일)-미(클린턴) 정상회담의 사전 정지 작업을 했던 울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조문단 대표로 옵니다. 당신은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엘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한반도 평화정착이 실현되었을 것이라며 박복한 일이고 천추의 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이십니까? 당신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역설하셨던 남북 공존공영의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의 빗장이 당신의 서거로 일단 풀렸습니다. 당신께서 손잡았던 김정일 위원장의 손으로 만든 조화가 당신의 영결식장에 도착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조화를 미국의 울브라이트도 두 눈으로 볼 것입니다.

당신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며 독재와 맞서 싸울 것을 유언하셨습니다.


당신은 당신께서 죽음의 순간까지 민주주의와 남북통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셨습니다. 당신의 민족과 역사 그리고 국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에 고개를 숙입니다. 당신은 이제 국회에서 이승과의 이별을 합니다. 당신께서 사셨던 동교동을 지나 국립 현충원에서 영면을 하십니다. 저는 오늘까지 합정동에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국민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국화꽃 장식을 한 당신의 자동차를 따라 한강을 건너겠습니다.


1987년 당신을 따라 시청으로 향하던 그 마음을 간직하고 당신이 누워있는 영구차를 따라 가겠습니다. 6월 항쟁 때는 당신의 걸음을 따라 걸었지만 이제 당신께서 누워있는 영구차의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당신의 육신은 저승으로 가지만 당신의 정신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저희 후배들이 당신이 그토록 열망하며 지켜왔던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통일과 지식정보화 산업, 문화산업의 꽃을 피우겠습니다. 이제 고난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김대중 대통령님! 자랑스런 이 땅 대한민국에서 당신과 40년을 함께 살아 온 것이 영광이고 행복이었습니다. 당신과의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당신은 나의 스승이고 동지였습니다. 아니 저만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한 대한민국 국민전체의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유지를 따르는 국민들이 당신을 애도하며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그 곳에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이제 당신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간직한 채 당신을 정말 떠나보내야 합니다. 당신의 정신을 계승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의 절룩거리는 아픈 다리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이 똑바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고 앞으로도 감사할 것입니다.

2009년 8월 22일 정청래 올림.




육신은 가시지만 정신은 길이 남아
반통일 독재정권을 심판할 것입니다.
......많이 보고 싶을 겁니다.ㅠㅠㅠ

댓글
  • 夢醒時分 2018/08/18 16:22

    잘 읽었습니다. 청래형 87년에 김대중 후보가 3번이었고, 92년에 2번. 그 때 브이 엄청하고 다녀서 기억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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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hm 2018/08/18 16:26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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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나라상인 2018/08/18 16:30

    정청래 아저씨 저랑 광화문서 악수했는데 기억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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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피김한수 2018/08/18 16:33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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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therlove 2018/08/18 16:49

    일기장에쓰세요 정청래당신의 진정성을 믿고 청래당가입하고한 내가바보지 다급해도 그러히 왜 못된버릇 다시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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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트콤보 2018/08/18 17:00

    etherlove// 당신이나 좀 사라지세요 당신같은 사람보다 정청래 같은 사람이 훨 낫습니다. 문통에게도 도움이 되구요. 문통 가장 힘들 때 옆에서 같이 맞았던 사람입니다. 진정성을 믿기 싫으면 믿지 마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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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랄라12 2018/08/18 17:30

    또 띡 글 던지고 가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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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피엔스21 2018/08/19 00:58

    추천
    청래형 좋아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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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골목야구 2018/08/19 09:26

    좋은글이네요.추천!...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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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s400 2018/08/19 10:49

    본인이 쓴글 다시 확인도 해보고 그러세요 청래형
    이미지 많이 안좋아지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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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xus 2018/08/19 17:03

    ㅍㅎㅎ
    우리 정통래 똥줄타시겠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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