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귤 지옥과 함께하는 소대
그러다 이등병 두 명이 면회 와서 탈출
상병 병장 말년?
오라고 하면 오히려 욕먹음
그러는 와중에 백봉기 일병은 입대 이후 한번도 면회 온 적 없음.
괜찮다고 하는데 몹시 서운함
전화도 안 받는 어머니
설날에 서운함은 더 심해짐
ㅈㄹ 같은 선임들도 이럴 때는 후임 걱정함
그러는 와중에 안 와도 되는데 사단장 등장.
그래도 빈손으론 오지 않고 게임해서 휴가증 준다고함
뿌듯.
선임들 미친듯이 뛰어서 휴가증 겟.
그리고 백봉기 일병 줌.
진짜 좋은 선임들임.
ㅅㅂ 와...
근데 가기 싫음.
서운해서 가기 싫다고함
결국 휴가증 거절...
근데 그날 밤...
의외로 군대가서 이런 장면 보는 사람들 많지 않나?
백일병에게 찾아온 어머니의 부고 소식...
소대원들이 돈 모아서 부조금도 내고...
이후 휴가 복귀
그리고 행보관이 찾아와서 편지 건내줌
돌아가시기 전에 쓴 편지
이때 이승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나오는데
백봉기 우는 소리랑 노래가 가슴을 후벼팜
힝 ㅜ 아무도 댓글을 못달고있어 ㅜㅜ
뒤에 귤박스가...
저도 상병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계속 울고만 있으니 인사 선임이 알아서 편법으로 늘려서 붙여주고 대장님이 1호차 태워서 보내주시더군요
혼나기만 하다가 이렇게 챙겨주시니 너무 감사했었습니다
https://youtu.be/3GMlR8Sii4E
이편은 진짜 갓레전드화죠
경험의 대부분은 ㅈㄹ 같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마음 따듯해지는 일들도 있었던 군대...
제 후임도 갓 일병 달던 진급식이 있던날...어머님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황망한 표정으로 급히 고향으로 내려갔고, 행보관님은 대대장님을 잘 설득해서 복귀없이 포상휴가를 더 붙여서 처리해 주시기도 하고, 저도 말년 병장휴가 복귀 하루전날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자 부고로 인한 휴가 이외의 별도 휴가를 더 붙여서 잘 보내드리고 오라는 말씀도 해주셨지요. 그때 행보관님이 정말 친할머니 같은 느낌으로 포근하게 잘해주셨는데...지금은 만기전역 하셨겠네요....보고싶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ㅈㄹ같은게 100개라면 좋은게 1개쯤은 있죠
군생활에서 손에 꼽을만큼 어쩌다 하나라
더 감동먹고 더 짠하고 더 소중할겁니다
그거라도 없었다면 군생활 버틸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
그래도 100이면 100 그것 때문에
군대 다시 가겠다는 사람은 없겠죠
짤이 감동을 못 살려주네요 친구랑 푸른거탑 자주보면서 웃었는데 이 편 보고 나서는 둘 다 말을 잃음..
눈물납니다.
나쁜선임. 지랄혼내기만 하고 후임 책임안짐
좋은 선임 지랄혼내고. 후임잘못 하면 간부앞에서
카바쳐줌
전 병장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군간부들끼리 부조금 모아서 행보관 전달했는데 행보관이 꿀꺽 함 그때만 생각하면 행보관 개XX
군대 있을때 부고를 당하면 진짜 최악인게
아무리 힘들고 죽을거 같이 슬퍼도 복귀는 해야 한다는거..
귤지옥에서 화장실 다녀오면 쌕쌕나옴~
해군에서 배 탈 때 같은 배 타던 후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육상에서 참수리(작은 배)가 데리러 왔어요.
급작스럽게 정복으로 갈아입고 참수리도 옮겨타던 후임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전 공익이라..
근데 군복무중에 부고 소식이 정말 많아요?
입대하고 얼마 안되서 어머니 암판정 받았을때가 기억나는군요..
저 입대 하고 1주일 뒤에 암판정 받으시고 제가 자대 가고 입대 한지 2달 지날때까지 저한테 숨기셧습니다
군대 간 제가 오히려 걱정이 되셧겠죠. 항상 전화하면 아버지는 집인데 어머니는 서울에 있다고 합니다.
원래 서울에 큰외삼촌집이 있고 그곳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셧었으니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 한적 없었죠.
그렇게 2달 넘게 저한테 핑계를 대시다가 결국 어머니가 사실을 말씀 하십니다.
큰 충격을 받으면 머리를 누가 망치로 때린듯한 느낌을 받는다고는 들었는데 그때 그런 기분 처음 느꼇습니다.
돌아와서 내무실서 걸터 앉아 있는데, 보통 이등병이 10초만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도 바로 뒤통수에 주먹이 날라와야 할 시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아무말도 안했는데 하루종일 저를 누구 하나 건들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세상 다 잃은 제 표정이 저도 모르게 드러났겠죠. 그렇게 점호를 마치고 행정관에서 소대장이 부릅니다. 분대장이 아무래도 제가 이상하다고 보고를 했나봐요.
종일 참았던 눈물이 소대장이랑 얘기하면서 터졌습니다. 소대장께 말 하니 그 자리서 아버지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셧죠.
XX가 어머니가 아프셔서 많이 힘들어해서 전화 했다구요. 그리고는 아버지를 바꿔주시곤 아버지가 저를 많이 달래 주셧는데
생전 그렇게 시골남자 스럽고 상남자 스럽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꺼 같은 강인하신 분이셧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오래 전화 통화 해본거 같네요.
소대장이 다시 전화 바꿔서 행보관께 말씀 드려서 아직 100일 휴가를 갈려면 한달정도가 남았는데 미리 휴가를 보내겠다고 말씀하더군요.
그런데 저희 아부지 ㅎㅎ 누가 성격 모른다고 할까봐, 정당하게 100일 휴가 받아서 나오게 해달라고...ㅋ ㅠㅠ
그렇게 100일 휴가 때 휴가 나가서 집 문을 열었는데 얼굴색이 까맣게 되있고 머리가 다 빠지셔서 털모자를 쓰시고서 문 열어주던 어머니가 아직도 선합니다.
행여나 어머니 잘못되실까봐 무뚝뚝 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셧는데, 지금은 어머님은 건강 많이 회복하셧는데
오히려 아버지가 더 먼저 저 세상 가셧습니다. 그것도 어머니 정기 검진 받으러 서울 올라 가있는 사이 혼자 집에 계시다가 심장마비로 급사 하셧습니다..
참.. 평생 본인 감정 잘 안보이시고 무뚝뚝하게 사시던 분이셧는데, 가실때까지 자식들한테 가는 모습도 안보여주고 무뚝뚝하게 혼자 가셧다고는 말 합니다.
이 글 보니 오늘따라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네요
일병때 사흘전에 건강하게 전화받으셨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공황상태였는데 당직사관이셨던 수송관님이 홍천에서 김포까지 자차로 태워다 주셨죠. 군생활 감사한일 즐거웠던 기억이 나네요. 모형민상사님 감사합니다.
롯데 손아섭..아버지 위독하셔서 뵈러 간다닌까 못가게 해서 임종 못 봤죠
할머니 돌아 가셔서 정신없게 챙겨 내려와서 보고하는데,
“여어 할머니 덕에 휴가 나가고 좋겠네~”
하던 백 중사 새끼 아직도 그 좋아하는 사창가 다니며 잘 사냐?
저 26개월 군생활 동안 면회 한번 안 왔는데... 집하고 부대가
멀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친구들도..
가끔씩 부모님 앞에서 그 말 하면 굉장히 미안해 하심.. ㅎ
2010년도에 입대해서 군생활중
일병때였나 상병때였나 저 태어날때부터 키워주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생각해보니 군 입대하고 100일 휴가 나가고 1년넘을동안 휴가를 못나게 했던 부대임. 군번 꼬인게 먼지..훈련뛰면 나오는 휴가증도 못받고 선임들만 휴가증 돌려서 받았고..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쓰립니다.)
암튼 다음날인가 훈련출발이라 주말에 훈련준비 다 해두고 일찍 자야했습니다.
이유는 새벽에 출발해야지 그나마 좀 덜 더울때 행군을 시작할수있어요.
암튼 저녁에 급하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고, 곧이어 분대장이 소대장에게 이야기해주고 이어서 중대장이 방으로 불러서 면담을 했습니다.
중대장 : 휴가 꼭 나가야하나?
나 : ???
중대장 : 부모님이 돌아가신것도 아니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건데 휴가 꼭 나가야하나?
나 : (머..??)
중대장 : 왜 대답이 없어? 말귀를 못알아먹나?
나 : 휴가 꼭 가야합니다.
중대장 : 너가 빠지면 전투력 측정 어쩌구 저쩌구 그래도 휴가 가야하나?
나 : 휴가 꼭 가야합니다.
중대장 : 나가봐. 소대장 오라고 그래
------ 중대장,소대장 면담 및 분대장 소환 ----
(제가 휴가를 못나가니 생전에 외할머니께서 부대로 면회 몇번 오셨는데 그때 인솔자 역할로 같이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대충 어느정도 저와 외할머니를 알고 있습니다)
대대장 면담 시작
대대장 : 그래, 훈련걱정하지말고 집에 다녀와라
그렇게 다행스럽게? 청원휴가를 가게 되었고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수있었습니다.
예비군 6년차지만 군대에 복무하면서 느꼈던 안좋은기억 중 하나로 아직도 남아있네요.
분대장의 강력한 어필이 없었으면 가지 못했을 청원휴가 였습니다.
저는 전역 전날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3일장 중에 하루를 못지켜드린게 아직도 생각이 나네요...
당시 연평도 포격사건도 있었던 시기라 되게 어수선 했었는데
말년휴가 전에 전역하면 찾아가겠다 전화 드리고나서 부대 복귀했는데
전역 전날 아침에 연락이 와서 할아버지 돌아가셨단 소리 듣고는 참 하늘이 그렇게도 무심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부대는 파주에 있었고, 빈소는 경남 진주에 있어서... 가고는 싶었지만 다음날 전역때문에 다시 올라와야 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첫날은 못지켜드리고 다음날 새벽 6시에 혼자 신고하고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전역하고 바로 장례식 복장으로 갈아입을줄은 상상도 못했죠....
그때 저를 혼자서 안보내 주겠다고, 도와주었던 일병이 생각이 나네요...
그 일병은 추석 오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았고, 제가 아직 지금 내려갈수 있다고 해서
시간이랑 이런것들 다 가르켜주고 도와줘서 다행히도 그날 막차를 타고 할머니가 계신 전남 구례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도와줬던것을 기억해줘서 저 전역하는날 근무까지 바꿔가며 마지막 가는길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정말로 슬프게 마무리 될뻔할 군생활을 그 일병 덕분에 감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전역 전날만 되면 마음이 씁슬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일병을 다시한번 보고 감사하다고 인사 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