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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택배 기사님께 아이스크림을 받았다.txt (펌글)

며칠 전 햇반이나 좀 살까 해서 쿠팡 들어갔다가
아이스크림도 배송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처음 알고
와... 아이스크림이 배송 되나?? 안녹나 이거???
하고 신기해가며 주문을 넣었다. 하루 이틀 지나도 안오길래,
배송 출발을 늦게 한건가 싶어서 걍 기다리고 있었다. (알다시피 수도권은 대부분 하루면 배송 온다.)
별 거 없는 잉여로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됐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오후 쯤 지나서 누가 문을 두드리더라. 택배입니다. 현관 열고 보니,
40초반 쯤의 피부 거뭇한 아저씨가
하얀색 스티로폼 택배 박스를 안고 서 계시더라.
참고로 쿠팡에서 시켰다고 무조건 쿠팡맨이 오는게 아니다.
로켓 배송 계약 안된 상품들은,
롯데, cj 등 일반 택배 기사님들이 물품을 배송해주신다. 이번에 문을 두드린 기사님 역시 롯데 택배 기사님이더라.
아무튼,
아이스크림 왔나보네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기사님이 박스는 안건네고, "저기, 죄송한데요." 하고 말을 꺼내더라.
"이게 원래 토요일 날 배송 왔어야 하는 건데...
토요일날 이 근처까지 배송왔었다가,
다른 물건들만 배송을 하고, 빨리 차 빼달라는 요청 때문에 급히 차를 빼다가,
이 물건을 실수로 배송을 못해드렸거든요..." 즉, 한마디로 배송 누락인 거다.
"아, 네."
"이거 혹시 가격 얼마인지 기억 나세요?"
가격을 갑자기 왜 묻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아마 1만 5천원에서 2만원 사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가격은 모르세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쯤일 거예요."
"그럼 한 번 주문한 곳에서 확인을 좀..."
"가격을요?"
"네, 이걸 폐기 처분하고, 배송 누락으로 회사측에 환불 처리하셔야 하는데요."
"네."
"그렇게 하시면 아무래도 번거로우니까, 비용 얼마인지 알려주시면 제가 현금으로 그 금액을 배상해드릴게요."
엥??? 왜??? 와이???
왜 기사님이 손해 배상을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럼 제가 회사측에 반품 요구를 할게요."
"네, 그렇게 하셔야 하는데, 그럼 번거로우시니까..."
"회사에다가 반품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배송 받았더니 이미 녹아 있었다고 하면 될 거 같은데."
"네, 근데 원인이 배송 누락이니까 그게..."
"그럼 기사님이 손해보시게 되잖아요."
"네. 제 잘못이니까 어쩔 수 없죠." 하고 말하면서 웃으시던데,
그 표정에서 난데없이 무게감 같은 걸 느꼈다.
저렇게 정직하게 자기 잘못 인정하고 사과하는 분께
모든 피해를 떠안기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택배 기사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인터넷에서 많이 접했기에 그런 생각이 더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오는 궂은 날씨에
우산 한 장 못걸치고 일하고 계신 모습이 안쓰러워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이면 좀 녹았어도 다시 얼리면 그만 아닌가?
혹은 안녹았을지도 모르고. 설령 좀 녹았다해도 음식물처럼 썩는 것도 아니고...
"아~ 근데 이거 안에 확인 한 번 해보셨어요? 아직 안녹았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네. 확인해봤어요."
"좀 녹았어요?"
"다 녹았더라구요. 이미."
"아니 그래도 다시 얼리면 될 거 같은..."
거기서 기사님이 스티로폼 뚜껑을 뙇 열어주시는데,
...... 완전 다 녹았더라.
아이스크림 녹은 거 만져 본적 있는 사람은 알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아 이건 다시 얼린다고 될 게 아니구나..' 싶은 상태.
"아, 다 녹았네요."
그때 기사님 얼굴을 딱 봤는데,
일부러 미소를 짓고 계신데, 죄송함이 엄청 섞인??
뭐랄까 그런 복합적인 표정이었다.
잔 주름 있는, 거뭇거뭇한 피부에,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시니 마음이 꽤 불편했다.
아무튼 기사님이하고 한 5분 정도 씨름하다가,
"그럼 기사님이 손해보시는 거잖아요."
라는 말만 한 3번 되풀이하다가,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완고한 주장에,
알겠다고 하고 쿠팡 접속했다.
15,500원인데
배송비 2천원 빼면 13,500원이더라.
그래서 기사님한텐 걍 13,500원이라 말씀드렸다.
"확인해보니 13,500원이네요."
"아 그럼 계좌번호 알려주시면 제가 이체 해드릴게요."
"계좌요? 그냥 현금으로 주셔도 돼요."
"아, 그래요? 그럼..."
"만 원만 주세요."
"네?"
"담배 한 갑 사폈다고 생각할게요."
"아니에요. 다 받으세요."
"그럼 이거 택배 제가 받으면 또 쓰레기 처분하고 버리고 해야 하니까, 기사님이 좀 처리를 해주시겠어요??"
"네, 이건 제가 처리를 해드릴게요." 하면서 나머지 3천원을 손에 쥐어주려 하더라.
연거푸 괜찮다고 겨우 거절했다.
고작 3천원이 뭐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고작 3천원인데...
엄청 작은 돈인데.
왠지 엄청 받고 싶지 않았다.
택배비가 2천원이다.
저 무거운 짐 날라 배송하면 고작 2천원인거다. 심지어 그것조차 온전한 택배 기사의 몫이 아니다.
회사 떼고 유류비 떼고 세금 떼고... 기사님이 만원 손해보는 것만 해도,
몇 번의 택배를 더 날라야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필 비까지 오는 날씨에... 결국 3천원은 거절하고,
기사님 가시기 전에,
냉장고에 있던 음료 한 캔 들고와서 쥐어드렸다. "더운데 이거라도 드시면서 가세요."
"아 감사합니다!"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서,
난 5천원 손해, 기사님은 만원 손해,
다들 손해만 봤네. 하는 시덥잖은 생각 하고 있는데,
10분도 안돼서 누가 또 문을 두드리더라. 누구세요?
택배요. 배송 올 택배는 더는 없었다.
내가 뭘 시킨 게 있었나? 하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더니,
방금전 왔었던 그 롯데 택배 기사님이 서 계셨다.
난데없이 까만 봉다리를 건네시면서,
"이거..."
"뭔데요?"
"밑에 편의점에서 사왔어요."
하시더라.
열어보니 아이스크림 몇 개가 들어있었다.
"괜찮아요. 저 안 그래도 인터넷에서 다시 시키려고 그랬어요."
"그럼 배송 올때까지 일단 이거 드세요."
하고,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시더라.
그리곤 다시 빗 속으로 걸어가셨다.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내가 인터넷에서 시켰던 아이스크림이 종류별로 하나씩 다 있더라..
그 스티로폼 박스 열어서... 뭐뭐 주문했는지 확인하고,
그거에 맞춰서 편의점에서 하나 씩 사오신 거였다
편의점 아이스크림은 비싸서
저렇게만 사도 만원인데...
3천원 돌려드리고, 2만원 받은 꼴이 됐다.
아이스크림 껍질을 벗기는데,
뜻하지 않게 돌아온 더 큰 호의에,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다.

댓글
  • 4885 2018/08/07 16:13

    피천득 선생님이 수필 쓰신 줄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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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바보 2018/08/07 16:13

    ㅜㅠㅠㅠㅠㅠ 아 찡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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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유친구 2018/08/07 16:14

    애초에 아이스크림을 왜 시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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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티커피 2018/08/07 16:16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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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옹이 2018/08/07 16:17

    아 안구에 습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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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족구왕봉이 2018/08/07 16:17

    이런건 좋은생각에 실려도 진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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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sfire 2018/08/07 16:19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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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깅코 2018/08/07 16:24

    인터넷엔 ㄸㄹㅇ들만 바글거리지만 현실엔 좋은분들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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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개 2018/08/07 19:44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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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쳐야싼다 2018/08/07 19:53

    족구왕봉이// ㅋㅋㅋ 좋은생각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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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쳐야싼다 2018/08/07 19:54

    근데 글 따뜻하게 정말 잘 쓰시네요. 어떤 상황인지 마치 드라마 보는줄 알았습니다. 작가해보세요~ ㅋ 단막극 해보셔도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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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쳐야싼다 2018/08/07 19:59

    이런 분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기사님들도 보람느끼면서 하시는걸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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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즈앙 2018/08/07 20:21

    아직 살만하다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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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리스타 2018/08/07 21:04

    퇴근길에 눈물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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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산김원봉 2018/08/07 21:06

    뭉쳐야싼다// 펌글이라자나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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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나대로 2018/08/07 21:18

    제가 좋아하는 불펜 문인이신 베레타님이 쓰신 글인 줄 알고 다시 올라가서 닉을 확인했습니다.
    펌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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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mu70 2018/08/07 21:29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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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윤하 2018/08/07 21:44

    수필 한편 제대로 쓰셔서 몰입해서 봤네요. 아직 세상은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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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스 2018/08/07 21:58

    나같음 그냥 아이스크림 내가 다시얼려 먹는다고하고 돈안받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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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twins. 2018/08/07 22:47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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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중독자 2018/08/08 00:01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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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de떡볶이 2018/08/08 09:13

    이 더운 여름에, 택배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는 것 자체가 인지능력 부족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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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왕조원년 2018/08/08 10:21

    Jade떡볶이// 공감능력이 많이 부족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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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피허니맛 2018/08/08 11:07

    Jade떡볶이// 보냉박스에 오기땜에 인지능력부족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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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페로치노 2018/08/08 11:28

    엄청 잘 읽히는 글...즉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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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직천원 2018/08/08 11:31

    아직까지는 살만한 세상입니다ㅜ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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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베인커트 2018/08/08 11:57

    [리플수정]만원이 아니라 오만원이라도 사람사이간에 저런 호의와 정이 생긴다면 아깝지않죠.. 동네 택배기사면 또 자주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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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둠둠훔훔 2018/08/08 12:04

    Jade떡볶이// 이 더운 여름에 아이스크림 먹으라고 많은 오픈마켓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고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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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린퍼스 2018/08/08 12:19

    Jade떡볶이// 요즘은 본사에서 드라이아이스 빵빵하게 넣어 이틀이 지나도 멀쩡하게 오는 시대예요. 그리고 냉동식품,해산물도 여름에 잘 팔리는데 다 인지능력부족일까요? 그만큼 자신있으니 홈쇼핑이고 오픈마켓이고 다 파는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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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카치 2018/08/08 12:42

    아이스크림 같은거 녹든 말든 기사가 물어내니 파는 입장에선 무조건 파는거죠 솔직히 몇천원 아끼자고 이삼일 기다려서 슈퍼에서도 뻔히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니.. 무슨 오지에 살아서 아이스크림 구경도 못하는곳도 아니고말이죠 판매하는게 웃겨요 제 생각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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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만버텨 2018/08/08 12:59

    이런건 걍 동네마트가서 좀사라 에휴 판매자야 녹든말든 어차피 배상받으니 팔면 장땡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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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해잠수정 2018/08/08 13:30

    안구에 습기가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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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잘알 2018/08/08 13:54

    저분들 일이기때문에 동정같은건 하고 싶네요. 그건 예의가 아니죠. 뭉클하거나 감동받으면 오히려 실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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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하곰 2018/08/08 14:06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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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모마일 2018/08/08 14:13

    나이가 들었는지 이런 글 보면 눈물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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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Rhythm 2018/08/08 14:14

    좋은 분들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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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점베어스 2018/08/08 14:19

    글 쓰신분 필력이 엄청 좋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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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배자양동삼팬 2018/08/08 14:28

    와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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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jra 2018/08/08 14:33

    수필 한편 본듯한 ㅠㅜ 아 세상은 아직 살만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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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지밀A 2018/08/08 14:38

    눈물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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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우트 2018/08/08 14:40

    눈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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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지안익훈 2018/08/08 14:51

    아~~ 눈물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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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숙 2018/08/08 15:32

    훈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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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de떡볶이 2018/08/08 18:38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판매자 구매자 둘 다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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