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기
길이가 길고 품도 넉넉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프리사이즈형이 대세였다.
좋은 옷감을 많이 사용해 크게 만들어 입는 것이 신분 과시나 미적 기준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2.전기
신체 치수를 고려한 ‘맞춤복’이 등장한다. 저고리 종류도 축소되고 적은 양의 옷감으로 만드는 등 실용적인 변화를 보인다. 품도 작고 길이도 짧아진다.
잇따른 임진왜란과 호란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3.중기
중·후반기 들어 치마허리(치마의 맨 위 허리에 둘러서 댄 부분)가 보이고 저고리가 신체에 착 달라붙으며 ‘보디 라인’이 드러나는 옷이 유행했다.
실학자 이덕무 등이 “창기들이 남성에게 아양 부릴 때 입는 옷이 귀천(貴賤) 가릴 것 없이 유행하니 한심스럽다”며 개탄할 정도였다.
꼴잘알 대원군!
크흑 대원군님의 빅픽쳐...아니, 대화를 제가 못알아뵙고 크흑
꼴잘알 대원군!
크흑..
펑퍼짐하면 펑퍼짐한대로 좀 슬림하면 슬림한대로 이쁨
설득 력이 있어!
대원군 대감 그런 빅피쳐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ㅠㅠ
아아 흑요석님...아아...
흑요석의 한복은 옳다
흥크나이트 였던거야?
중기가 젤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