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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송시열을 위한 변명

 저 밑에 송시열의 업적이 뭐냐는 글이 올라왔는데 지금 보니 지워진것 같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음...... 많이 답답하군요. 


지금은 학문을 그만 뒀지만 한때 조선시대 사상사를 공부했던 사람으로 조선시대에 대한 폄하, 주자학에 대한 폄하들은  많이 불편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어떤 특수한 관점인데 그런 관점들이 지나치게 영향을 발휘하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정치적 문제와 학문적 편협성과 별개로 송시열은 당대의 대학자 맞습니다. 송시열 같은 사람을 당시에는 산림(山林)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으로 치면 특정 정당의 이데올로그 내지는 정신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산림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직접 고위직을 맡기보다는 지방에 은거하면서 학문적 능력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미국을 세운 사람들이 계몽주의자이듯 조선은 성리학으로 무장한 이념가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서인-노론이라고 하는 강력한 당파의 정신적 지도자는 입 좀 잘 턴다고 해서 거저 얻는 자리는 절대 아니죠.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주리-주기 논쟁 이후 이 문제는 단순한 학문 논쟁을 넘어 당파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문제인데 이 논쟁에서 송시열은 주기론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논의를 진행시킨 학자입니다. 조선 주자학자들이 남긴 학술적 성취 중에 다른 동양권 주자학자들에게 자랑할만한 있다면 주희의 저작인 '주자대전'과 그 어록집인 '주자어류'에 대해 상세한 연구를 했다는 것이죠. 그 작업을 주도한 사람이 송시열입니다. '주자대전차의'라고 주자대전에 대한 연구서가 있는데 이게 송시열의 저작입니다. 이 작업은 제자들이 이어 받아서 '주자대전차의보', '주자대전차의집보' 같은 저작으로 이어집니다. 주자어류에 있어서도 '주자어류소분' 같은 저작이 있었고 후대 학자들이 이런 업적을 이어받아 '주자어류고문해의' 같은 저작이 나왔습니다. 이런 저작은 현대 학자들이 주자대전이나 주자어류를 번역하고 연구할때 참고하는 훌륭한 저작입니다. 미우라 쿠니오 비롯해서 일본, 중국 학자들도 그 성취를 인정합니다. 


주자학은 조선을 망친 공리공담이라 의미가 없다고요? 그럼 송시열의 정책을 이야기 해볼까요? 송시열이 신분제에 있어서 남인보다 더 개혁적이고 유연했다는 사실은 알고들 있습니까? 송시열은 양반도 군역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양역변통론'이란 것이죠. 서북지방 인재들의 등용, 서얼 허통, 과부들의 재가 허용도 주장을 했습니다. 대동법에도 찬성했고요. 


송시열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제적 인간이긴 합니다. 한창 당쟁이 심할때 서인-노론의 대표 논객으로 정치적-학문적 주제를 가지고 배틀에 앞장선 대표 논객이었으니 말이죠. 편견도 강하고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지독하게 강하고 그러니 호승심도 넘쳤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시비가 많을 수밖에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마냥 송시열을 옹호만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파의 승리를 위해 논쟁을 하다보니 다른 당파에 대해 사문난적이니 뭐니 꼬투리를 잡아서 비난했던 잘못이 있습니다. 박세당의 경우도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나중에 당쟁이 격화되니까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연결되면서 시끄러워진 것이죠. 윤휴와도 처음에는 굉장히 사이가 좋았는데 당쟁 때문에 원수지간이 되었죠. 친구였던 윤선거, 제자였던 윤증 부자와 사이가 나빠진 것도 본인의 과도한 자존심과 당쟁으로 인한 정치적 시비가 불러 일으킨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트러블은 송시열이 많이 일으키긴 했습니다만 송시열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당장 광해군 시대에 북인의 산림이었던 정인홍도 독선과 트러블은 송시열 못지않은 사람이었죠. 송시열과 대립한 윤휴나 허목도 자존심이나 독선, 트러블에서 썩 자유로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허목의 이름이 나온 김에, 송시열과 허목에게는 아주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미수 허목이 의학에 밝았는데 송시열이 병에 걸리자 남인이었던 허목에게 처방전을 요청합니다. 주변에서는 좀 꺼림직하게 생각했는데도 말이죠. 허목이 처방전을 내줬는데 거기에 독약으로 쓰이는 '부자'가 잔뜩 들어갔습니다. 당장 난리가 났는데도 송시열은 그 처방전을 믿고 그대로 약을 써서 나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건 사실 정치판에 있으면서 논쟁의 일선에 선 사람들에겐 자유로울 수가 없는 문제이죠. 조선시대 당쟁사에서 벌어졌던 문제들은 공부를 해보면 실상 옛날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문제이죠. 윤휴의 호가 백호(白湖)인데 흑수(黑水)라고 지칭한다든지 유치한 행동들을 하는데 이런거는 요즘도 볼 수 있는 풍경 아닌가요?


종합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존심도 세고 그러다 보니 싸움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 보내버리기도 하고 그땜에 자신도 사약먹고 가고 그런 양반입니다. 하지만 학문적 성취도 크고 정책에 있어서도 그렇게 꽉 막혔다거나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유연하고 개혁적인 면도 꽤 있습니다. 


그럼 송시열의 평가는 왜 그동안 이렇게 나빴느냐? 조선이 망했기 때문이죠. 조선이 망하니 문치주의는 문약으로 까이고 성리학은 공리공담으로 까이고 당쟁은 망국적인 정치놀음으로 까였던 것이죠. 물론 이런 관점도 나름의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의 멸망-근대화라는 특수한 시대의 특수한 관점이 지나치게 조선왕조의 성취와 성리학의 성취를 폄하한 측면이 있습니다. 성리학이 까이다 보니 대안으로 '실학' 같은 것을 띄워줬는데 실상 실학은 명확한 실체가 있는게 아닙니다. 실학자라는 사람들도 거진 성리학자들이고 그냥 기존 성리학에서 좀 벗어났거나 사회정책적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막연하게 실학자라고 묶어 놓은 수준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조선왕조가 그렇게 나쁘고, 성리학이 그렇게 나쁘고, 문치주의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절대 아닙니다. 조선이 경제적으로 약하고 상업을 억압했다고만 생각하는데, 오히려 고려에 비해 조선시대가 상업도 발달하고 농업기술, 농지면적이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사대정책을 욕하지만 그 덕에 조선이 임진-병자 양난을 제외하면 인류사에 유래없이 긴 기간동안 평화롭게 살았다는 사실은 잊고 있죠. 문약을 욕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도 문민통치의 시대입니다. 문관이 무관을 통제하는 세상이죠. 문치주의를 했기 때문에 난세를 방지하고 안정된 통치를 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습니다. 성리학이 공리공담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철학은 다 공리공담으로 쓸모없는 소리겠군요. 


비슷한 관점이 서양에도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학사상이 근대화를 방해했다. 중세는 암흑기였다. 그런 관점이죠. 하지만 서양사에서는 이미 아주 오래전에 퇴보한 관점입니다. 중세는 절대로 암흑기가 아니면 많은 진보가 이뤄진 시대이며 기독교는 나름 서구 역사에서 여러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사의 이런 도식들이 한국사에 적용되서 마치 성리학을 중세 신학처럼 근대화를 방해한 장애물처럼 규정했습니다만,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측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이 기존에 알고 있던 조선시대에 대한 관념이나 주자학에 대한 관념, 조선시대 유학자들에 대한 생각들은 망국과 근대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지나친 비판론의 소산이라는 겁니다. 저는 조선시대가, 성리학이, 조선시대 학자나 관료들이 공도 있고 과도 있다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관념에 따라 형성된 편견만으로 그 시대를 그 시대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단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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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irh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