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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탱해준 기억 -2

새벽에 글 쓰다가 일이 생겨서
 
급하게 확인 누르고 나갔는데 베오베까지 갈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냥 뭍혀버릴 글이라고 생각해서 올린것도 까먹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됐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일부러 끊고 그런건 아니였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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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놀란 마음에 나를 타박하기 시작하셨다.
 
"여기가 어딘줄 알고 찾아 오냐. 어린애가 겁도 없이 혼자서 여길 어떻게 왔냐"
 
라며 타박아닌 타박을 하셨다.
 
내가 찾아와서 반가워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낯선 반응에 섭섭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가 먼길 오면서 다치거나 큰 일이 생겼으면 어떻게 할려고 애가 이러나라는 걱정이 더
 
크셨던거 같다.
 
오히려 어머니 보다는 형이 날 더 반가워해줬다.
 
어른들밖에 없는 병실에서 심심했을테니까
 
 
병원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어머니께 설명드리자
 
어머니께서는 5000원을 쥐어주신 아주머니께 큰 감사를 하셨고
 
형과 같은 병실을 쓰시던 어른들께서는
 
"애가 똘똘하네, 엄마를 많이 보고싶어했네"라고 하면서 어머니의 놀람을 진정시켰다.
 
어머니는 진정이 되시자 나를 이끌고 식당으로 가셨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드는건 어머니랑 단 둘이 외식을 해본적이 없었어서
 
그 메뉴가 기억이 날법도 한데 전혀 생각이 안난다는 것이다.
 
밥을 먹고 올라와서는
 
어머니께서는 형의 저녁 밥을 챙기기 시작하셨다.
 
어머니와 먹었던 메뉴보단
 
새하얀 그릇에 옹기종기 담겨있던 병원 밥이 오히려 기억에 더 남아있다.
 
입이 짧던 형은 병원 밥을 싫어했고
 
어머니의 채근에 조금 먹다가 말았다.
 
나는 정갈한 밥을 대접받으면서도 투정을 부리는 형에게 작은 질투를 느꼈던거 같다.
 
한술 한술 떠먹여 주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형은 몸이 약하니까 어머니가 더 사랑하시는구나
 
나도 아팠으면 좋겠다와 같은 철 없는 생각도 했었다.
 
그 나이때는 누구나 다 관심 = 사랑이 아닐까 한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가는 나는 사랑도 덜 받는다고 생각했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짝사랑이라고 느꼈던거 같다.
 
 
 
늘 같이 다녔고 항상 붙어다니던 형은
 
내가 와서 즐거웠나보다. 밥보다는 나를 데리고 나가고 싶어했으니까
 
밥상을 물리고 나서 
 
형과 나는 병원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병원은 나에게 신세계였고
 
형은 자랑스럽게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병원을 구경시켜주었다.
 
 
열시쯤 됐을까?
 
어머니께서는 짐을 챙기기 시작하셨고
 
나에게 집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오랜만에 형과 어머니를 봤는데 헤어져야 하는게 너무 싫고
 
병원에서 하루 자보고 싶기도 하고 해서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단호하셨다.
 
학교를 하루라도 빠지면 천지개벽이 일어 난다고 생각하시는 옛날분이셨으니까
 
 
아픈 형을 두고 나를 데려다줘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옆자리 분에게 형을 부탁하시고는
 
나와 함께 지하철 역으로 갔다.
 
 
정확하게 계절은 기억이 안나는데
 
초여름이었던거 같다.
 
가기싫어서 투정을 부리던 것과 달리
 
선선한 했던 저녁 바람과 이 시간에 단둘이 어머니와 걷고 있다는게
 
나를 상기시켰으니까.
 
그리고 그 어머니를 독차지 한다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었다.
 
 
지하철에서는 타자마자 잠이 들었던거 같다.
 
옆에 어머니도 계셔서 마음이 놓이고
 
어린 나이였던 나에겐 너무 고단한 여정이였으니까
 
 
목적지가 얼마 안남은 시점에
 
나는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깼다.
 
어머니께 목이 마르다고는 말을 했지만
 
이러한 요구를 어머니께 해본적이 없던 나는
 
어머니의 특별한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집이니까 참아라"라든지, 무시하실거라고 생각했다.
 
남의 애한테도 이런 반응을 안하겠지만
 
형만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나는 어머니께서 이런 반응을 보이실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바로 다음 정거장에 나를 데리고 내리셨고
 
지금은 구경도 하기 힘든
 
얼음이 담아져서 나오는 음료수를 자판기에서 뽑아주셨다.
 
 
바로 이 기억이 나를 아직도 지탱시켜주고 있다.
 
 
 
어머니에게 나를 위해 무엇인가 요구를 해본적이 처음이었고
 
그 요구가 흔쾌히 받아졌다라는게 나에게는 충격이였다.
 
내가 요구하는게 받아질 만큼 관심 받는 아들이 아니였으니까
 
 
물론 이건 내 착각이고 어린 마음에 하던 치기어린 생각이었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아... 어머니도 날 사랑하시는구나
 
나만 어머니를 사랑하는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형만 예뻐하시는게 아니구나
 
 
 
이렇게 하게된 생각은
 
잦은 병치레 때문에 늘 형의 수발을 하시던 어머니의 관심이 나에게 없는거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러지 않다라는 생각을 갖고 살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기억이 스트레스나 환경에 쩔어있는 나를 아직도 지탱해 주고 있다.
 
 
 
 
삼년전쯤이었을까
 
명절에 어머니 무릎을 베고 과일을 먹던 나는
 
어머니께 "형 서울대 병원 입원했을때 내가 찾아간거 기억나?"라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기억을 하고 계셨고
 
어찌나 놀라고 미안해하셨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나는 목이말라 칭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나를 지탱해 준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맨 처음 당황하시면서 "그래서 내가 그때 마실거 안사줬었니?" 라고 물어보시며 기억은 못하셨다.
 
나는 "사줬으니까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라고 웃으며 대답을 했다.
 
 
 
 
댓글
  • 스물여덟의꿈 2018/06/10 20:24

    먹먹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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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씨가오리 2018/06/10 20:31

    어머니 기억은 아직 힘든 시절의 마음을 기억하고 계시네요.. 혹시라도 막내 마음 다쳤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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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이꼬북이 2018/06/10 20:36

    감동이네요 어린애가 그 거릴 와서 얼마나 놀라고 또 미안해 하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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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nsmile 2018/06/10 20:38

    아.... 한 번에 잃은 것보다 (물론 의도하지는 않으셨지만) 나누어 읽으니까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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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콩이 2018/06/10 20:38

    감정에 호소하는 글이 아닌데 눈물이 핑 도네요.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볼만한 감정을 덤덤하게 적어주셔서 그런건가 싶기도하구요.
    저는 되려 반대 상황인적이 많았어요, 당연히 그당시 글쓴이와 비슷한 심정일 형이 이해가 되지 않았죠.
    나이가 하나둘 먹고 어른이 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되다보니 아.. 형의 마음은 이랬었겠구나 어느덧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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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차장 2018/06/10 20:40

    따뜻한 기억에 글이네요
    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어머님이 조금더 몸이 아픈 형을 챙기는 과정에서 나온 오해를 작성자님이 잘 헤아린것 같아 너무 기분 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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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실화냐 2018/06/10 20:48

    저....수필집 하나 내실 생각 없으신가요....
    먹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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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봄달 2018/06/10 20:55

    따뜻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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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pholic 2018/06/10 21:27

    예전에는 쌍동이 중에 한명이 몸이 더 약한 경우가 꽤 흔했나봐요.
    제 고등친구, 대학친구도 각각 쌍동이인데
    형제가 몸이 약해서 학교를 1년 늦출 정도였어요.
    학년이 다르니 처음엔 연년생인줄 알다가
    나중에 친해지면 쌍동이라고 알게 된 경우죠.
    고등친구는 아들딸 이란성이었는데
    아들이 몸이 약했는데
    당시 남아선호 때문에
    아들은 엄마가, 딸은 시골에서 할머니가 키웠어요.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이 약하게 태어나면
    부모 잘못인것 같은 죄책감이 참 많이 듭니다.
    그런데 건강한 자식도 있으면 그게 큰 위안이 돼요.
    어머님은 글쓴님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서
    큰 힘이 되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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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면요리사 2018/06/10 21:44

    선추천 후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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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면요리사 2018/06/10 21:48

    고마워요 좋은글
    내일 이사가는데 힘이 되네요 응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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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드레몬 2018/06/10 22:12

    저도 막내라서 심히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어지간히도 군것질 안 사주시던 어머니
    바나나맛 우유 한개를 먹고싶다며 있는대로 떼를 써서 한개 사먹게 된 적이 있었는데, 물 드신 그 경위랑 비슷했어요.
    떼 썼던 것도 처음이었고, 군것질 시켜주신 것도 처음.
    저는 좀 속상했던 기억 ㅎㅎㅎ
    하지만 어머니는 완고하셨죠! 군것질은 싫다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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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경예정 2018/06/10 22:39

    나는 어떤 기억으로 지탱되고 있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감사할 사람은 누가 있을까도요.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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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훗날다시는 2018/06/10 23:31

    그냥 덤덤한 글인데, 부모님 생각도 나고 그래서 인지 감동적인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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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는행인A 2018/06/10 23:39

    "그래서 내가 그때 마실거 안사줬었니?" 가 먹먹하게 와닿네요....
    부모님이란 해준것보다 못해준걸 더 기억에 담아두고 계시는분들이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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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RELY 2018/06/11 00:07

    너무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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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파삼 2018/06/11 00:16

    추천막 드리고 싶은데 추천조작의심된다고 ㅜㅜ
    휴먼드라마 한편본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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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니아o 2018/06/11 01:53

    저는 형의 입장이었겠네요. 여섯살에 백혈병에 걸린 저를 병수발 드시느라 엄니가 동생을 돌보지 못해 동생은 친척집들을
    떠돌아 다녀야했고 그 때 아펐겠지만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아서 질투를 했었다고 먼 훗날 얘기하더이다.
    그 때문인지 동생만 시집가서 애낳고 잘 사나봄. 아....이게 꼭 잘사는거라고는 할수 없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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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마음백구 2018/06/11 02:47

    추천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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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킨쓰 2018/06/11 04:56

    고마워요 좋은글보고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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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잭형 2018/06/11 05:44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글도 써주시리라 믿을께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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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로소이다 2018/06/11 09:24

    글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천 100만개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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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팡 2018/06/11 09:24

    진짜 월요일 아침부터 눈물이 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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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llucin 2018/06/11 09:39

    우리 아기들에게 잘해야겠어요^^
    어린시절의 좋은 기억이 행복한 어른을 만들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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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호박고구마 2018/06/11 13:59

    저도 동생이 어렸을 때 많이 아팠었던터라 항상 엄마가 병원에 계시던 기억만 있네요  이 글을 보고 한번 더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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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趙雲 2018/06/11 14:25

    아픈손가락에 신경이 더 쓰이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손가락이 덜 소중한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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