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웹에는 공양미에 뿅뿅을 타서 드신다는 스님이 거주하고 있다.
여러 커뮤에 이따금씩 재업되는 스님의 패러디 만화는, 절에서 자랐고 지금도 절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친근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주었다. 덕력이 높은 스님은 큰 스님이라 불리는데, 그 덕력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루리웹 스님의 덕력도 나 같은 머글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깊어 보였다.
하여, 만나보았다. 도대체 Drakeduck란 닉네임을 쓰시는 드덕스님의 절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스님의 사정으로 인해 사진 촬영은 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 스님의 전체 작품은 여기 ( 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064/list?search_type=member_srl&search_key=1196722 ) 에서 보실 수 있다.
(이하 빵꾼 빵 / 드덕(Drakeduck)스님 드)
스님의 게이밍 노트북. 태어나서 물건을 사는데 가장 많은 돈을 써 봤던 것이라고.
사진은 못 찍었지만 스님의 전체적인 모습도 이 노트북과 비슷하다.
스님의 사생활
빵 : 언제부터 덕후가 된 건가요.
드 : 중학생 때 친구가 가져온 만화를 빌려보다가 대여점을 찾길 시작했죠. 처음 본 만화는 유희왕이었어요. 만 원어치씩 양손 가득 만화책을 빌려와서 밤새도록 보던 때도 있었죠.
빵 : 출가 전이었잖아요? 그 생활이 출가 후까지 이어진 거죠?
드 : 학교 다닐 땐 친구들이 다 덕후여서, 그 생활이 쭉 이어졌죠. 출가 후 승가 대학에 가고 기숙사에서 제 시간을 갖게 되면서 만화를 그렸어요. 그게 4년 반 정도 됐네요.
빵 : 모든 덕후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최애캐를 꼽아보신다면.
드 : 글쎄요. 애매하네요. 주로 전 특정 캐릭터보다 작품 전체에 애정을 가져서요. 특히 만화의 서사에 집중해서. 사실 좋아하는 캐릭터가 워낙 많다 보니, 딱 꼽을 수가 없네요.
‘너무 많이 알아서’ 최애캐를 고르기 힘들다는 스님, 이런 것이 무애(無碍) 덕력인가...!
빵 : 게임으로 넘어가 보면, 누군가 댓글로 '젠야타를 그리셨지만 트레이서를 할 것 같다'고 달았는데 스님께서 대댓글로 '윈스턴 하는데...'라고 단 걸 봤어요. 또 '도슬람' 인증도 하셨고. 도타는 어떤 케릭 하세요?
드 : 말씀드리기 민망한데, 기술단이라고 있어요. 제가 그 캐릭터만 이삼백 판 정도 했거든요.
빵 : 300판요??
드 : 네. 걔가 모든 기술이 지뢰를 까는 거예요. 그게 적군도 짜증 나고 아군도 짜증 나는 그런 캐릭터거든요. 제가 손이 느려서 피지컬 게임을 못 하다 보니까, 그런 심리전 캐릭을 좋아하게 됐죠. 이건 조금 자랑 같은데, 캐릭터별 통계에서 제가 기술단 캐릭 랭킹 10위권에 든 적도 있어요.
빵 : 오버워치도 하시고, 도타도 하시고, 다른 게임은 또 뭐 하세요?
드 : 사실 제가 온라인 게임보단 싱글 게임을 많이 해요. 남들과 경쟁하거나 그런 걸 싫어해서.
빵 : 롤 같은 건 패드립도 하고 그러니까..
드 : 도타는 한국인이 많이 빠지고 중국인들만 남아서, 욕을 해도 못 알아들어요 그건 괜찮죠.
빵 : 스님의 실제 삶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절에 살면서 만화를 어떻게 그릴 수 있습니까.
드 : 저는 얼떨결에 출가하다 보니 아무것도 몰랐는데, 의외로 취미 생활을 즐기기에 좋은 환경이더라고요.
스님은 여기서 잠깐 고민했다. 일반적인 스님의 이미지와 대립하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게 당연하다.
드 : 출가 홍보하는 셈 치고 얘기하자면, 절에서 먹여 주지, 입혀 주지, 재워 주지. 그러다 보니 돈이 나갈 데가 없어요. 할 일만 해 놓으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든 잘 터치하지도 않고요.
빵 : 보통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드 : 새벽 4시쯤 일어나서 새벽, 점심, 저녁 때 예불(불교의식)하고 공양(식사)하고. 그 사이에 중간중간 청소를 한다거나, 절의 일을 돕는다거나 뭐 그렇게 보내죠. 중요한 건, 저녁 예불 이후엔 무조건 일정을 안 잡죠. 새벽예불까지가 취미 시간이니까. 수면 시간을 쪼개서 하는 거긴 한데.
빵 : 역시 게임은 새벽에 해야 제맛이죠.
드 : 맞아요. 사람도 없고. 낮에 하면 하나도 재미없어요.
빵 : 혹시 게임하다가 새벽에 늦게 일어나신 적은 없나요?
드 : 그럴까 봐 아예 일찍 자서 새벽 한 두시쯤? 일어나서 하는 게 더 편해요.
빵 : 되게 타이트한 절도 있잖아요? 스님은 취미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나신 것 같습니다.
드 : 제가 알고 출가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출가 전까진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는데.
빵 : 통도사 같은 데로 가셨으면 되게 힘드셨을 것 같아요.
드 : 네. (웃음) 제가 아마 해인사 송광사 이런 데 갔으면 한 달 만에 뛰쳐나왔을 것 같아요.
빵 : 주변에 또 덕후 스님이 계세요?
드 : 제가 출가해서 또 충격을 받은 게, 아 역시 어디에나 덕후는 있구나.
빵 : 아, 그럼 만화나 애니 얘기도 종종 하세요?
드 :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있긴 했죠. 그때 대화한 분 중에 한 분은 불교대학 다니시면서 복수전공으로 게임개발학과도 하시더라고요. 젊은 스님 중엔 그렇게 개방적인 스님도 꽤 있습니다.
나무아비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