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금전 감각이 엉망이기도 하고, 무릎을 꿇은 채 학생의 발을 핥는 등 어딘가 허당 같은 어른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일상의 소동일 뿐, 결코 학생과 선을 넘을 사람은 아니다. 학생에 관한 한 그는 언제나 올곧은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그렇기에 제자들을 제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결혼하게 된다면, 상대는 학생이 아니라 같은 어른의 삶을 사는 평범한 키보토스인일 것이다. 그런 그녀는 모처럼의 휴일에 홀로 산책하던 선생이 우연히 들른 카페의 점원일 수도 있다. 학생들처럼 개성이 넘치지는 않지만, 오히려 일상의 무게를 아는 평범한 어른. 그리고 그를 ‘선생님’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해주는 어른.
매주 영수증에 찍히는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은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조용히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블루아카,소설] 선생님 결혼식에 초대받은 학생들의 반응_1.png](https://imagecdn.cohabe.com/sisa/5207615/1481114204857.png)
총학생회는 앞으로 등장할 그 어떤 집단보다도 순수한 마음으로 선생의 결혼을 축하해 준다. 총학생회 임원들에게 선생은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자 파트너. 연모의 정을 품은 이는 없었다. 물론 그중 누군가는 다른 감정을 숨겨두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릴 만큼은 아니다.
린은 여유롭게 단상 위로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시작을 알리기에 앞서 그녀가 던진 첫 마디는 짓궂은 농담에 가까웠다.
“드디어 선생님께서 철이 들겠군요.”
아오이는 어째서인지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평소의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다. 식장의 예약과 예산 관리 등 재정 관련 업무는 재무실장답게 그녀가 전부 도맡았다.
아유무는 선생과 함께 청첩장을 디자인하고 사람들에게 직접 하나하나 나누어 주었다.
모모카는 입구에서 축의금을 받고 명단을 대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늘 그랬듯, 그녀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왜 이런 잡무를 해야 하냐고 투덜거렸지만, 그런데도 화사한 주변 분위기가 내심 싫지 않은 눈치였다.
![[블루아카,소설] 선생님 결혼식에 초대받은 학생들의 반응_2.png](https://imagecdn.cohabe.com/sisa/5207615/1481114204858.png)
세미나에서는 유우카와 노아가 찾아왔다.
유우카는 입술을 꼭 다문 채, 떨리는 턱을 간신히 지탱하며 신랑 대기실로 들어섰다. 선생을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며 그의 앞날을 축하해 주겠다고 수없이 다짐해 왔다. 그러나 턱시도를 입은 선생을 본 순간, 유우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그와 처음 대면했던 샬레 탈환 작전 때부터 가계부로 그를 나무랐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되살아났다. 키보토스에서 사고가 터질 때마다 늘 마음을 졸이며 선생님을 기다린다고, 선생님께 조금만 더 부드럽게 말할걸. 돈을 헤프게 쓰는 그가 부인에게 너무 혼나지는 않을까, 유우카는 그게 걱정이었다.
유우카가 울음을 터뜨리자 선생은 당황한 기색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노아였다. 온기 어린 미소는 묘한 위화감을 풍기며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 또한 유우카 못지않게 선생을 좋아했다. 다만 그 행동 양식이 다를 뿐. 선생을 좋아하는 만큼 친구를 아끼는 노아였기에 두 가지 마음은 언제나 함께였다. 자신이 다음이어도 괜찮으니, 유우카라면 그 자리를 내어줄 수 있었다. 이것이 노아가 지켜내고자 했던 균형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왜 저에게 희망을 주셨나요.
왜 저에게 함부로 사랑을 심으셨나요.
선생님은 영원히 모르시겠지만, 저는 선생님과 있었던 일들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그날의 젖은 습기와 창문에 아로새겼던 글귀까지 전부.
그대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불가사의한 자여, 말해주지 않겠는가.
한편 리오는 선생의 결혼 소식을 듣고 아지트에 틀어박혀 세상과의 접촉을 끊었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짓눌렀다. 리오는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애썼다. 선생이 결혼한다고 해서 만남이 완전히 끊기는 것도 아니고, 가정을 꾸림으로써 생활 리듬이 안정된다면 그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몇 번이고 자신을 설득했으나, 막막한 서글픔의 근원은 끝내 설명할 수 없었다.
결혼식 당일, 리오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은밀히 AMAS를 띄워 그가 웃는 모습을 구석진 자리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그녀는 최근, 잠입에 특화된 초소형 AMAS를 개발하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역시 그러는 편이 합리적일 테니.
![[블루아카,소설] 선생님 결혼식에 초대받은 학생들의 반응_3.png](https://imagecdn.cohabe.com/sisa/5207615/1481114204859.png)
흥신소 68은 오페라 하우스 의뢰 당시와 같은 드레스 차림으로 식장에 나타났다. 예상과 달리 그들은 의외로 침착해 보였다. 가장 소란을 피울 것 같던 아이들이 진심을 담아 선생의 결혼을 축하하고 앞날을 빌어주었다. 이제 결혼하면 이전처럼 많이 못 놀려서 아쉽다는 무츠키의 푸념은 덤. 아루는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 다시금 선생에게 내밀었다.
“후후, 의뢰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줘. 선생님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해주겠어.”
특유의 허세를 담아 그렇게 말하고는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듯 돌아섰다. 식이 끝난 뒤, 홀 구석의 테이블에 앉은 아루는 남몰래 눈시울을 붉혔다. 무츠키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하드보일드는 이런 일로 울지 않는다며 어설프게 등을 토닥여 주었다.
새삼스러웠지만, 하루카는 자신에게는 가능성의 씨앗조차 없었음을 재차 깨달았다. 오히려 그를 향한 감정은 죄악이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두근거렸다는 사실에, 천 번의 사죄를 드려도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야 선생은 음침한 잡초에게도 빛을 나누어 주는 반짝이는 존재니까. 잡초는 잡초끼리, 그늘 아래가 제일 어울리는 법이다.
카요코는 무덤덤했다. 아니, 무덤덤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것인지도 몰랐다. 선생이 빠진다고 해서 흥신소는 무너지지 않는다. 원래도 선생 없이 네 명이서 어떻게든 굴러갔다. 다만, 앞으로는 임무가 조금 더 귀찮아질 뿐이다.
비 오는 날, 고양이에게 우산을 씌워줄 사람도 나 하나면 충분해.
헤비메탈도 혼자 들으면 돼.
취향이 이상하다고 구박받을 일도 없으니까.
선생에겐 나 같은 사나운 외모보다 저런 다정한 인상이 어울려.
...그래도 혼자는 쓸쓸한걸.
그들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감돌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최고급 와규 스테이크는 목이 멜 만큼 짰다.
![[블루아카,소설] 선생님 결혼식에 초대받은 학생들의 반응_4.png](https://imagecdn.cohabe.com/sisa/5207615/1481114204860.png)
티파티에서는 나기사와 미카, 세이아 세 사람 전원이 자리했다. 그들의 눈초리는 트리니티의 가식 따윈 집어던진 채, 노골적으로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나기사는 이미 동원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그의 배우자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훑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가족 배경, 인터넷 검색 기록, 기르는 애완동물의 이름까지 전부. 미세한 먼지 한 톨이라도 찾기 위해 그녀는 밤낮으로 서류 더미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파면 팔수록 결론은 하나로 수렴했다. 그 여자는 지독할 만큼이나 그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지했기에
학생과 결혼하지 않다니 이 무슨 말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