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하 - 센쥬마냥 미칠듯이 싸워온 관계이기도 한데...
우리 중시조님 제사 못지낸지도 100년...
겨우 윤관의 묘를 찾게되는데...
조상님.... 늦게 온 후손들을 용서하십쇼흑흑
애들아 나 머리가 너무 무겁다...

파평 윤씨
오냐
이제 알았으니깐 우리 조상님 묘역에서
느그 조상님들 빨리 꺼내가는게 어떨까?

청송 심씨
여기만큼 풍수학적으로 좋은데 찾아서
제시해도 고민할 걸 그냥 나가라?

1614년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은 부친의 묘를 찾던 중
풍수학적으로 굉장히 좋은 지역을 찾았고
그곳에 아버지를 이장하며
이후 아예 일대 땅을 청송 심씨 문중의 묘역으로 조성했는데
문제는 당시 윤관 장군묘가 방치되어있었기에
여기가 윤관의 묘인 줄 모르고 묘역을 조성한 것
그리고 고려의 왕이 골라 준 곳이니 풍수가 안좋을 수가...
대충 최초 논쟁으로부터 몇십년이 지난 1763년

파평 윤씨
진짜 근본이라곤 1도 없는 심가놈들
이래도 안꺼지나 보자

파평 윤씨
안되겠소 팝시다

상황이 격해지고
100년간 싸워도 해결이 나지 않자
파평 윤씨 일족은 이 사건의 원흉(?)인
심지원의 묘를 파헤치며 무력시위에 나선다

이 ㅆㅂ놈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유학자냐!!!!!!!
당연히 처참하게 파헤처진
조상님의 묘를 본 청송 심씨 문중은 눈이 제대로 돌아가
당시 국왕인 영조에게
정식으로 산송, 즉 민사 소송을 요청한다
대가리는 존나 잘돌아가던 영조도
이 때만큼은 정병 걸린 사도세자 급 스트레스를 받는데
일단 두 문중 자체가 왕비를 배출한 외척 가문인데다
당시 정계에도 두 문중의 인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쉽사리 한쪽 편을 들면 겨우 안정화 시킨
붕당마저 붕괴될 위험이 있었던 것

아이고 두야... 그냥 적당히 화해하면 안되냐?
윤관 묘 쓴 니네나, 그렇다고 묘 파헤친 니네나
다 문제 아님??

파평 윤씨
아따 전하!
나 저새끼 담그고 나도 갈라요!!

청송 심씨
유학 공부했다는 새끼라는게
조상묘를 파헤쳐?
우린 이제 니네 인간으로도 안본다

야야 그냥 양쪽 무덤 그대로 두면 안됨?
나도 윤관 장군님 후손이지만
그래도 대국적으로 둘 다 타협점을 찾아보자고
※ 영조의 직계 선조인 중종의 어머니가
파평 윤씨인 정현왕후

청송 심씨
아 전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 대놓고 윤씨 편 드시는 겁니까??

파평 윤씨
저런 새끼들이랑 위대한 선조의 묘를 공유해라?
지랄하지 마십쇼
우린 불복합니다

하... 이 새끼들이 내 성격 잊었나
야 니네 뒤 . 주 당하고 싶냐?

영조는 어떻게든 양 가문을 중재하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양 가문이 무려 국왕의 말을 씹고(!!!)
자기들과 가까운 가문들까지 포섭해서
아예 집단 난투극까지 펼쳐질 수 있던 상황!

한번이 어렵지 두번이 어렵냐?ㅋㅋㅋㅋㅋ
근데 이 와중에 또 프로 파묘러
파평 윤씨 중 강경파 일부가
또 심씨 가문의 묘를 파헤치기 위해
묘역에서 삽질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미 한번 파묘(?)를 당했던
심씨 일가가 묘역을 철두철미하게 감시하고 있었고
파평 윤씨 일족의 파묘 행각을 목격한 즉시
빠따를 들고 뛰어와서
땅을 파던 파평 윤씨 가문 사람들
모조리 줘패서 내쫒아버린 사건이 발생...

어휴... 그냥 니네 둘 다 뒤져라
이에 진절머리가 난 영조는
양측의 대표인 윤희복과 심정최에게 죄를 물어
형을 가해버린 뒤 귀양을 보내버려
게장 대왕의 권위로 이 산송을 덮어버린다
그런데 이젠 진짜 자존심의 영역까지 갔는지
일부 파평 윤씨 사람들이 따지러(...) 영조에게 갔다가
이에 진짜 개빡친 영조가 숙종 대마왕의 피를 개방!
왕의 권위를 무시한 죄로 무자비한 곤장 세례를 가했고
이에 곤장 맞다가 엉덩이가 곤죽이 되서
죽은 사건까지 벌어진다...

야 니네도 징하다 징해~ 무슨 리조 시대 일을 여기까지 갖고오냐
그런데 사람이 뒤지고, 집안 대표가 귀양을 갔는데도
이 두 가문의 자강두천은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조선이 망하고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일본 법원에 묘역 관련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이 두 가문의 싸움은 단순히 땅 문제를 넘어
피에 각인된 갈등이 된 수준에 이른다.....

오죽하면 양 가문이 제사를 지내러
해당 가문에 갈 때
서로의 묘를 파버리겠다며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제사에 참석하는게 몇백년 째 이어졌고
청송 심씨도 2차례 파묘 위기를 당한
심지원 묘를 지키기 위해 담까지 쌓았을 정도

그러나 첫번째 산송으로부터 392년이 지난
2006년!
파평 윤씨 문중이 원래 묘역으로부터
120m 떨어진 곳에 땅을 제공하고
심씨 문중이 윤관 장군묘 위에 위치한 묘역을
그곳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하며
무려 400년간 이어진
양측의 혈전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경기도 문화재 위원회
아 그런데 심씨 묘역도 나름 400년 되어서
문화재로 분류해야하는 거 아님?
문화재는 그 자리에 있어야지 암
양 측이 신청한 묘역 이전을 거부한다!

그렇게 원만한 해결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체어 들고 난입한 경기도 문화재 위원회!
그러나 양 가문은 400년 만의 임시동맹을 결성해 압박하여
결국 경기도가 방침을 철회하며
2008년 묘역을 성공적으로 이장하며
400년의 원한 관계를 끝낼 수 있었다
+

이렇게 심지원의 묘를 이장하기로 결정하며
동시에 묘에 대한 발굴 조사도 같이 진행하며
여기서 조선시대 묘 중 가장 큰 회곽을 확인 하는 등
고고학적 성과도 올리게 되고

윤관 장군묘 역시
크게 개축하여 파주시의 관광코스화 되었으니
나름 400년의 갈등의 마무리로선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