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검은 예로부터 수많은 로망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사용법이 쉽지가 않았다.
양손으로 쥔 검과 맞붙을 만한 강력한 악력. 방패를 들 수 없기에 발생하는 수많은 위험.
잘못 사용할 시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어려움 때문에 화려함에 비해서는 다루기가 어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기록화를 살펴보자. 흔한 전쟁 장면같으면서도 무언가 초월적인 풍채를 가진 사람이 있다.
조금 상세하게 살펴보자.
바로 이 장면..조금 더 확대해보면
놀랍게도 쌍검을 다루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다가 다루기 어려운 쌍검을 다루면서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음으로 다른 범부들과 궤를 달리 함을 알 수 있다.
옆의 장창을 든 남자도 만만치 않은 표정이지만 쌍검을 든 채 전투를 즐기는 듯한 저 초연한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저 눈빛만으로도 왜군을 도륙낼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대는 누구인가.
가족을 왜군에게 잃어 광기에 흽싸인 분노의 예속자인가.
사슬처럼 끊임없는 전투에 의해 삶이 묶여버린 슬픈 무인인가.
남들이 추구하지 않는 무(武)를 터득해 기쁨에 젖은 쌍검의 구도자인가.
아니면 그냥 트롤러인가.
뭐 우리나라는 쌍검이 정규병과였다니까......
바리안 당신이 옳았어...
임진왜란 기록보면 아군사상자수가 적었잖아 그러니까 저사람은 최소한 트롤은 아님. 그냥 킬수가 적을수도 있을뿐
야레야레..
막줄핵심
막줄핵심
그냥 잘못그린사람
필력 좋다, 직접 쓴 거야?
넵.
우왕, 취미로 글쓰는 사람으로서 존경존경.
가끔씩 글 적으면 재밌어요 ㅎㅎ
그쵸? 쓸 땐 머리 아픈데 완성시키고 나면 후련하다니까요.ㅋㅋ
바리안이 환생했나?
이름 알리지 않은거 보면 트롤..이겠지
전쟁 고인물 ...
임진왜란 기록보면 아군사상자수가 적었잖아 그러니까 저사람은 최소한 트롤은 아님. 그냥 킬수가 적을수도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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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리나라는 쌍검이 정규병과였다니까......
왜놈들이 초래한 빠요엔...
쌍칼
근데 전쟁이고 병사한테 무기를 지급하는건데..
'전 칼두개쓸께요~~ 히히~' 하면 두개주나?
그게 아니라면 아예 쌍검병(?)이라는 병과가 따로 있다는건데...흠터레스링..
그러게 일개 병사에게 쌍검 두개주는건 낭비 같은데, 위에 글 처럼 쌍검 쓰는 병과가 있었다면 꽤나 강한 병사에게나 줄듯
창에 들어갈 철 보다 검에 들어갈 철이 훨싼 많이드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낭비..
검이란건 보통 지휘권의 상징같은 거였다고 하니 쌍검술을 따로 교육한건 유사시에 전쟁판에거 주워서 쓸 수도 있는걸 상정한에ㅜ아닐까 싶기도 하고
근대 이전 모든 군사 장비는 자가구매임.
저 그림은 임진왜란 한참 후에 그려진 그림이다.
저그림은 1900년대 초반에 일본인이 그린 그림이다.
야레야레..
이번엔 당.해.주.도.록 하지.
마이깟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존나 웃기네
뚝배기 야무지게 쪼개졌네
바리안 당신이 옳았어...
그와즁에 등에 활이랑 화살도 있네
쌍검빠따죠시파
칼이 공짜도 아니고 한 병사에게 두개나 지급될 정도면 저 병사 전투력이 2인분 이상이란 뜻이겠지..
근현대 이전에는 병사가 자비를 들여 무장을 갖추는 경우가 많았으니 방패 살 돈으로 칼 바꿔먹은 듯.
막짤 세놈들 다 표정이 범상찮은데?
ps. 임진왜란 초기 육지전투의 전사자들이 많은 건 다른 이유들도 무시못하지만 검병위주의 근접전 교리가 중심이었던게 단점으로 작용했다.
저 조선전역해전도는 근대에 일본인이 상상으로 그린거임
물위의 배에서 싸우는데 저렇게 무거운 두정갑 입고 있을리도 없고
장수들이나 입던 두정갑을 저렇게 개나소나 입고다닌 다는건 말이 안됨
걍 일본인이 덕질하면서 그린그림이네...
일반인 기준에서나 무거운거지...저게 일인 사람들입장에선 목숨이 더 중요한데 안입겠냐. 조선시대때 쓰던 활만해도 장력이 현대 활이랑 비교도안되게 짱장함. 왠만하면 몸 상한다고 못쏘게 할정도다 멧돼지 잡는게 45파운드정도인데 전쟁용활이 150파운드정도니까 말라깽이같은것들은 화살이 뚫고나갈정도는 됄걸. 50파운드짜리 활로 사슴 관통상 시키는 영상도있음
암만 힘좋아도 저런 중갑을 입고 바다에서 빠지면 익사하기 딱좋은데 입었겠음??
갑옷을 입었더라면 당연히 다른 갑옷을 입었겠지
현실적으로 병사가 수상에서 갑옷을 입는다면 두정갑이 아니라 쇄자갑이나 경번갑을 입었을거고
거기다 저 그림자체가 임진왜란 이후 300년이 지나서 일본인이 뇌피셜로 그린 그림인데 고증 깔려면 끝도 없어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에서 그린 수군조련도임
봐보셈 누가 저 글에 그림처럼 입고있나
면제갑 입은거 아님?
유비미만잡
막짤 세놈표정이 무슨 삼총사같다 ㅋㅋㅋㅋㅋ
조선삼연성 같아보임
빠요엔~
참고로 조선의 정식 무장 중에는 쌍검이 있었으며
정식 편제 중에는 쌍검기마병도 있었다.
진짜루.
이미지는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쌍검 검법
http://tabletop.egloos.com/4580931
무예도보통지에 마상쌍검술이 있다는게 알려지고 난후 영국의 유명한 미니어처 제작자인 페리 형제가 모델로 구현하기도 했다.
근데 저걸 다룰수있는 사람 엄청 적었을것같은데 우리나라에 쌍검술이 있다는게 대단하네
그림만 보고는 어찌 움직이는건지 감도 안온다
무예도 보통지는 명나라의 명장 척계광이 왜구를 상대하면서 진법을 만들고, 왜구의 검술 사법을 대려와서 왜검술을 만들었는데 그 교본이 무예도 보통지임, 이걸 명나라에서 조선에 보급해줌
그런것도 받아서 넣은거지 그게 무예도보통지가 아님. 그리고 왜구 검술 사범을 데리고 와서 만든게 아니라 직접 일본으로 넘어가사 배워온것.
삼국에서 쓰이는 무술중 실용적인것들을 모아서 집대성한거지. 왜검 제독검 양가창법 이런것들도 집어넣은거지, 그것들이 주가 아님.
물론, 조선도 왜구랑 교역 했기 때문에 임진왜란 후에 왜나라에 가서 검술을 배워옴... 또 왜장수는 검술에 자부심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가르쳐줌 ㅋㅋ
아닙니다....
무예도보통지는 1790년 정조 14년에 만들어진 조선의 군용 무술 교본입니다.
임란 때 선조의 명으로 척계광의 <기효신서>, 대왜구 전법인 <절강병법>을 통해 군제개혁을 하고, 이후 명의 군사훈련을 참관해서 선조 31년에 한교가 곤봉,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쌍수도)의 무예육기를 서술하는 <무예제보>를 편찬했습니다. 1604년 광해군 때는 무예제보에서 빠진 내용과 일본 서적의 내용을 번역하여 덧붙인 <무예제보번역속집>을 편찬했습니다.
영조 때에는 청나라를 통해 모원의의 <무비지>를 수입해서 영향을 받아 사도세자가 무예제보에 12종을 더 늘려 곤봉,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 죽장창, 기창, 예도, 왜검, 교전, 월도, 협도, 쌍검, 제독검, 본국검, 권법, 편곤의 18가지 보병무예로 <무예신보>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정해진 18가지 무예를 「십팔기」라고 하고요. 그리고 정조 14년에 이 기효신서와 무비지, 무예제보, 무예신보를 기초로 십팔기에 마상창, 마상월도, 마상쌍검,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를 추가해 총 24기를 갖추어 저술한게 무예도보통지입니다. 절대 명나라에서 그냥 내려준게 아니에요.
사람 말도 좀 들어봐...
해동검도에 쌍검뭐시기잇엇음 이름개멋잇엇는대 기억이안나네
우리나라는 심지어 기병도 쌍검이 정규병과였어..
쌍검술이 중국에서 온 무술가 시범 보고난 뒤 왕이 오 쩌는데? 그러면서 조선에도 저거갈켜서 훈련시켜봐 존나 멋있네 그러지 않았음?
대국인 중국과 사나운 북방민족 틈바구니 사이에서 살아난 국가니만큼 역시 무예랑 무기도 어디에 내놔도 뒤쳐지지 않게 수준급.
18반 무예중에 쌍검술이 있음
그 어렵다는 마상쌈검의 달인이자 도원3형제의 맏형 유비님과 고려의 소드마스터 유금필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쌍검은 트롤이아니라 패왕입니읍읍
저 그림 자체가 임란 지나서 그린그림이라
임진왜란 기록화라기엔 한참 후대의 그림이긴한데.. 뭐 복식고증은 정말 좋음
복식고증 솔찍히 말하면 엉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