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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제나) 2차 창작 조금 더 써봄 (추탭갈)

앞부분은 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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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 위원회 이후 나는 잠시의 요양기간을 거쳤다. 그리고 요양기간 동안 내가 내린 배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의외로 새 함장은 부임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시선 클래스를 운영할 수 있는 참모진도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기에 엄중 주의와 일부 인원의 분산 배치를 제외하면 핵심 인원은 그대로 나이트메어함에 남았고, 그런 이력을 가진 함선의 함장 자리에 욕심을 내는 인원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강제로 함장으로 임명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함장은 대부분 일선 함대에서 함부로 빼낼 수 없는 보직을 맡고 있다. 그런 인원을 강제로 빼냈다가는 함대사령부에 대한 대대적 불신을 일으킬 우려마저 있겠지.
 그 결과로 나이트메어함은 새 함장이 부임할 때까지 후방 대기 및 관성 항해 정도를 제외한 어떤 임무에도 투입되지 않는 사실살 좌천에 가까운 배치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새 함장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고.
 어쨌거나 나는 그 후 경순양함 뉴호프의 함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비교적 순탄하게 복무를 지속했다.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지만 나를 그냥 버리기보다는 어떻게든 써먹어야겠다는 사령부의 판단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기 순찰 도중 들렀던 스테이션이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잠식당해 있었기에 녀석들이 배에 오르는 것을 간신히 막아내고 탈출한 후 경보를 전파, 주변 공역의 순찰함대가 모두 집결해서 스테이션을 성간물질 덩어리로 만들었다거나, 우연히 마주친 민간 화물선에서 근거없는 찜찜함을 느껴 임검을 시도했더니 느닷없이 포격이 날아들고 주변 운석군의 그늘에서 해적함대가 우르르 몰려나오는 것을 간신히 뚫고 탈출, 성계 시스템 전체에 대한 대규모 수색 섬멸 작전의 시발점이 되었다던지...
 정정하겠다. 별로 순탄하지는 않았다. 몇번이나 굉침당할 위기를 넘겼는지 모르겠다. 허나 장담컨데, 그 모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다. 유능한 부하들 덕분이다.
"함장님, 곧 예정된 주역에 도착합니다."
"알았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부장이 보고한 항행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총원에게 전파한다. 곧 예정된 주역에..."
 초로의 부함장이 절도있게 대답하며 함내 통신으로 지시를 전파한다. 역시 믿음직스럽다. 문득 뉴호프함에서의 첫 항해를 떠올린다.
"항로 고정 완료, 예정대로 E-7-E 포인트로 진입합니다. 본 주역에서는 이따금 해적의 습격을 받았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반현 전투 배치를 진언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부함장. 부함장의 의견대로 조치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지시에 부함장이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혹시 내가 뭔가 지시를 잘못한 것인지 기억을 반추해본다. 하지만 딱히 부장의 심기를 긁을만한 말은 한 게 없는데...?
"함장님, 실례를 무릅쓰고 진언드릴 말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 네, 말씀해보세요."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인가.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등줄기를 잡아당긴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불쾌함. 식은땀일까.
"함교에서는, 만약 힘드시다면 적어도 전투배치 상황에서만은 저희에게 짧은 하대로 명령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부함장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단어를 헤집었다. 무슨 의미지? 대체 어째서야?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함장은 함선의 왕입니다.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데, 왕이 부하의 눈치를 봐가면서 싸워서는 적도 비웃습니다."
"그건 원론적인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부함장이 나보다 경력도 길고, 이 함에서의 경험도 더 많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승조원이 그렇지요. 그런 이들을 계급만 가지고 하대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을 거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그거야말로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함장님. 잊으셨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향해 경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급을 향해 경례를 하는 것입니다. 경력이 길고, 경험이 많다고 해서 전투 상황에서 함장을 무시하는 자가 있다면 제게 데려와 주십쇼. 제가 친히 그 놈의 머리통을 날려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왕립해군의 전통에 따라 살가죽이 다 벗겨질 때까지 채찍질을 해드리겠습니다."
"...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코끝이 찡해진다. 이것저것 깊게 생각할 상황도 아니고 여유도 없다. 어쩌면 이 부함장도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함장이라는 권위를 세워주려 진언해주는 한마디가 너무나 고맙다.
"알겠습니다. 모쪼록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원론적인 의미로만 진언드린 것은 아닙니다.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같은 예의바른 지시를 하는 거야 말로 비효율적입니다. 예절바르게 지휘를 한다고 적이 기다려주진 않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아, 맞다. 그렇지. 보병이나 항공기 같이 템포가 빠른 전투에서는 단답형의 통신을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도 다르지 않다. 함포는, 실체탄이든 광탄이든 빠르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응 가능 시간은 별로 여유롭지 않다.
"평균적으로 적의 공격이 있을 때, 저희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10여초 남짓입니다. 명령 과정에서 1초라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이라고 판단됩니다. 예의바르게 죽느니, 무례하게 싸워서 살아남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럴 땐 저희도 무례하게 짧은 말로 보고를 드리게 되겠습니다만, 그 부분은 모쪼록 관대하게 용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 알았다, 부함장."
 내 짧은 말에 부함장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업무로 돌아간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잊지않기 위해 눈에 새기며 앞으로 해야할 일을 정리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뭔가를 중얼거렸다.
'고맙다.'
"센서에 반응! 거리 400-7-21"
"메인 스크린에 띄워라!"
 전탐관이 보고하고 부함장이 받는다. 그 즉시 메인 스크린에 흐릿한 전자 광학 영상이 출력된다. 어째서인지 낯익은 실루엣이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끼며 팔걸이를 강하게 움켜쥔다.
"해상도가 낮다, 높일 수 없나?"
"진행중입니다. 노이즈가 심해서 효율이 낮습니다."
 부함장이 다그치자 전탐관이 당황한 듯 대답한다. 그 문답이 함교의 분위기를 한층 팽팽하게 몰아간다. 이것은 좋지 않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음을 나는 안다. 그렇기에 나는 그 긴장의 끈을 끊기 위해 입을 열었다.
"무리하게 서두르지 마라. 지금의 정보로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알 수 있다."
 내 말에 부함장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예전이었다면 내 의견을 깎아내리는 뭔가가 날아왔겠지. 하지만 이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는 신뢰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대답하듯 말했다.
"나는 저 배를 안다."
 아는 정도가 아니다. 이제야 부분적으로 돌아오고 있는 기억들. 그 가운데에는 저것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들에 덮어씌워진, 추악한 기억들 탓에 거기에 추억은 없다. 오히려 잊고 싶은 기억들 뿐이지.
 그런 내 표정으로부터 부함장과 몇몇 장교들은 짚히는 것을 떠올린 모양이다.
"나이트메어..."
 전탐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보다 정확한 상황이 노출되기 시작한다.
"나이트메어함, 공격 받고 있습니다!"
"공격? 상대는?"
"모르겠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는 타입의 소형 기동병기입니다. 호위전단의 초계함 몇 척이 응전하고 있지만 나이트메어함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전투중이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위기에 처한 아군에 힘을 보태서 적을 격퇴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내 진심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저 배를 위해서, 내 소중한 부하들을 전투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
"함장님."
"말해봐라, 부함장."
"철퇴를 진언합니다."
"위기에 처한 아군을 버리고 퇴각하란 말인가?"
"도시선 클래스의 전함과 호위 전단을 유린하고 있는 적입니다. 거기에 경순양함 한척을 더한다고 해서 전황을 뒤집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저승길 길동무가 늘어날 뿐이겠죠. 지금 상황에선 저기에 뛰어들어서 함께 죽는 것보다는 적에게 들키기 전에 퇴각, 상황을 전파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맞다. 내 이성은 부장의 진언이 옳다는 것을 긍정했다. 그리고 내 감성은 저 망할 배를 위해 소중한 부하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그럼에도 나는 빠르고 효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뭔가가 나를 잡아 이끌고 있다. 뭐지? 뭐가 날 망설이게 하고 있는 건가.
"비상회선, 나이트메어함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통신을 발신하고 있습니다."
"출력하라, 통신관."
"... 죄송합니다, 시그널이 암호화되어 있습니다. 나이트메어함 단독의 복호화를 거친 것 같습니다!"
 젠장.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 통신에 뭔가 중요한 것이 담겨져 있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 복호화, 나이트메어함 단독. 그렇다면...
나는 내 개인 단말, 그래 나이트메어함에서부터 사용한 그것이다. 그것을 통신관에게 건네며 빠르게 지시했다.
"그 배에서 사용했던 단말이다. 내가 제거하진 않았으니 복호화 툴도 남아있을 거다."
"네, 알겠습니다! 서두르겠습니다!"
 나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함장석에 앉았다. 그러자 상황에 대한 판단을 끝낸 것인지 부함장이 입을 열었다.
"통신의 해석에 따라서 전투에 참가할 생각입니까?"
"경우에 따라서."
"다시 한번 진언하겠습니다. 철퇴와 상황 전파를 제안드리겠습니다."
 부함장의 진언은 옳다. 그리고 나는 그 진언을 거부할 합당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부장의 말이 옳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린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정확한 판단보다 신속한 판단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또 다시 정론이다. 이 걸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려는 찰나 통신관이 기쁘게 외친다.
"복호화 해석 완료했습니다. 메인 스크린에 띄우겠습니다."
-.............. 제발... 제발 이 통신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함교의 손상으로 나이트메어함은 현재 제대로 응전할 수 없습니다. 지휘부 전원이 지휘를 포기하고 의무실에 모여 있습니다. 중상을 입은 수습요원 하나때문에... 이대로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겠죠...-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다. 누구였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떠오른다. 그 암울했던 시간 동안에 그나마 일말의 호의가 담겨 있던 목소리.
레테.
-쿨럭.... 함의 포대는 아직 거의 살아있어요. 누가 지휘만 할 수 있어도... 이런 상황에서 바보같이... 이렇게 바보같이 죽긴 싫어...-
 다른 목소리다. 로지. 하지만, 그 목소리에 섞인 끓어오르는 듯한 숨소리. 다쳤나.
 머리속이 생각으로 터질 것 같다. 도와주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저 배는 나를 거부했다. 그렇기에 나도 저 배를 거부했다.
 보기 싫다. 보고 싶다. 그 암울한 기억 속에서 단 두줄기의 빛에게 빚을 갖고 싶다.
 누구의 빛인가? 누구의 빚인가? 어째서 그 빚 갚기에 부하들을 끌고 들어가야 하지?
"... 함장님."
 부함장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만난 이래 처음 보는 가라앉은 눈빛의 부함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아.
 여기에서도인가. 뉴호프도 나를 버린다면, 나는 뭘 해야하지?
 격납고에 연락정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ja위무장 정도는 달려 있으니 뭐라도 할 수 있겠지.
"뭔가, 부함장?"
 내 질문에 부함장이 대답한다.
"결정하셨습니까?"
"... 그래. 본함은 나이트메어함에 전속 접근, 나이트메어함과의 함내 통신망에 접속하여 함교 대신 각부 포대의 지휘를 행한다. 초계함급인 호위전대가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은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는 않다. 남은 호위함들과 나이트메어함의 대공 포대를 활용한다면 이길 수 있다."
 내 선언에 부함장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리고 나는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을 느끼며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부함장을 마주본다. 잠시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눈빛으로 난자하는 중, 갑자기 부함장의 표정이 풀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함교의 전원을 향해 외친다.
"General Quarters, Battle Stations!"
 함교의 전원이 응답한다.
"General Quarters, General Quarters, All hands, Man your Battle Stations!"
 그 이후에 이어지는 것은 실제로 싸우는 자들의 열기로 가득찬 대화. 거기까진 내게 전달할 의무가 없기에 올라오는 보고는 없다. 그 긴장감과 열기가 아득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전신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문득 나를 올려보고 있는 부함장의 시선을 느낀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부함장?"
"아뇨 딱히 없습니다."
"... 나는..."
 나는 뭔가 말하려다 목에서 걸림을 느끼며 끊었다. 이 말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걸 꺼내는 것으로 부함장의 경의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이 나를 휘감는다.
 하지만 동시에 부함장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함장. 함장은 배의 왕이다. 왕은 결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아니, 나는 부함장이 계속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네."
"... 의견을 묻는 거라면 물론 반대입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결국 내 고집에 따라줬잖나?"
"당연합니다."
"어째서지?"
 내 말에 부함장이 피식 웃는다. 마치 너무 당연해서 왜 이런 걸 묻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느낌으로.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함장 결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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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겜안분이라 진짜로 더는 무리. 

댓글
  • 귤박하 2025/10/24 21:25

    머야 재밌는데
    더 줘!!

    (yF0rdw)

  • 영민하도다 2025/10/24 21:27

    빨리 더 '써와'.... 주세요....

    (yF0rdw)

  • wizwiz 2025/10/24 21:38

    탭 바꿔 잡담으로는 묻히잖아

    (yF0rdw)

  • 익명-DA4MjMx 2025/10/24 21:45

    오케이, 땡큐땡큐

    (yF0rdw)

  • 쿠츠네초프 2025/10/24 21:40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yF0rdw)

(yF0r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