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건의 당사자는 프랑스에 유학중이던
22세의 중국인 대학생 '장야디'다.

가디언지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불교 신자로 알려진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티베트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다.
또한 이때부터 티베트, 위구르, 몽골로 대표되는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에 대해 눈을 떠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2022년 장야디는 파리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는 한편,
그해 말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19 아래 당국의 봉쇄, 검열, 인권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
'백서운동'의 파리 연대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진은 상하이에서의 집회다.

그 후 그녀는 해외 한족 청년들이 티베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
'Chinese Youth Stand For Tibet(이하 CYS4T)'에
참여해 활동을 지속했다.
그녀는 'Tara Freesoul'이라는 필명으로
CYS4T의 편집진을 맡아 기고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글에서 "티베트를 지지하는것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한족) 자신이 진실과 자유의 길을 찾기위한 투쟁"이라며
티베트인과 한족간의 이해를 강조했다.

2024년, 방학을 이용해 중국 쓰촨성 등지의 티베트인 거주 구역을 여행한 그녀는 현지의 문화를 즐기면서도
거리의 간판이 거의 한자로만 쓰인 현실을 보고는
큰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한족 아래 티베트인들의 문화와 정체성이 지워지고 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2025년, 그녀는 파리에서 경영학을 이수한 뒤
영국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기 전
가족들을 만나고자 7월에 잠시 중국을 방문했고,
조사 겸 티베트인 거주 구역인 윈난성 샹그릴라를 여행했다.

(샹그릴라. 티베트어로는 '갸탕')
7월 30일, 장야디와의 모든 연락이 두절되었다.
실종 직후 그녀는 WeChat을 통해 '병원에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CYS4T의 설립자이자 그녀의 절친 '두안'이 "셀카를 찍어봐라","진단서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응하지 않았다.
두안은 이 메시지가 강요된것일 공산이 크다고 짐작했다.

(후난성 창사시)
7월 31일, 예상대로 장야디의 가족들은
그녀가 윈난성에서 전격 체포되었다는 구류통지서를 받았다.
혐의는 형법 103조 2항, 국가분열 선동죄.
(최대 징역 5년이며 주모자의 경우 최대 15년의 중형이 선고된다.)
주로 소수민족을 겨냥한 법이며, 한족에게 적용된건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다만, 2018년 위구르 문화 연구자 펑쓰위(한족)가
같은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전례가 있긴 하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압수당한채로
고향 창사시 국가안전국 구치시설로 압송되었으며,
변호인 접견이나 가족과의 연락이 전면 차단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장야디는 8월 내내 구금 상태에 놓여있었다.
가족이 선임한 변호인은 국가안보 관련 사건이라는 이유로
접견을 거부당했으며, 모든 사법 절차는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창사시 당국은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문의를 거부했고,
가족들도 두려움 탓에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로이터는 공안에 논평을 요청했으나 답장이 없었다고 전했다.

9월 중순까지도 장야디의 행방이 묘연하자
중국의 저명한 인권변호사 '장톈융'이 가족들을 도우러 나섰다.
그는 과거 2017년 티베트인 인권 사건을 맡았다가
국가 전복 선동죄로 복역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9월 16일, 그는 그녀의 모친을 면담하고자 창사로 내려갔으나
면담 도중 공안이 들이닥쳐 그를 연행했고,
당국은 그를 몇시간 구금한 뒤 그날 저녁 석방했다.
그는 더 이상 사건에 관여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것으로 전해졌다.

(CYS4T의 공동설립자 진저 두안)
이날 이후 외신이 사건을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두안을 중심으로 한 지인들의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두안은
"우리는 분리주의를 주장한 적이 없는데, 설마 당국이 이런 중죄를 뒤집어 씌울줄 몰랐다. 장야디가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티베트와 한족간의 오랜 오해를 풀고 민간 교류를 촉진하려는 신세대 중국 청년들의 모임인데, 당국은 이런 청년들을 체포함으로써 티베트 정책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장야디에게 티베트어를 가르친 활동가 황이청은
"그녀는 젊고 아주 용감하나, 정작 본인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모르고 있었다"면서, 해외에 있는 자신들이 더 주의를 줬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녀의 친구는
"장야디는 학교 다닐때부터 몽골인, 티베트인, 위구르인이 직면한 문제를 늘 이야기했다. 중국에서 말할수없는 답답함을 해외에서 풀어냈다"고 증언했다.

특히 티베트 타임즈는 그녀의 티베트인 남자친구
칼상 야르펠(독일 거주 중)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칼상은 해외 티베트인들이 그녀에게 '왕초'라는
티베트식 이름을 지어줬다며 이를 소개하고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칼상은
"처음 만났을때 야디는 벌써 티베트 알파벳 30자를 뗀 상태였어요. 비록 문장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티베트에 깊은 애정이 있고 워낙 가르쳐 달라고 고집을 부려서 불교 입문서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딱 두번 수업을 들었는데도 큰 진전을 보였죠."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녀는 늘 중국 내 소수민족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학교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우니 정말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인터넷에 티베트 관련 글을 쓰기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마음에 감사하는것을 알게되자 우울함이 많이 줄었어요."라고 전했다.
또한 칼상은 "그녀는 티베트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편집자로서 그저 문화를 기록하고 알리려 했을 뿐이예요. 야디가 불법적인 일을 한 사실이 없음에도 중국 당국이 이 문제를 정치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고 머리가 타들어가는 심정입니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가디언은 그녀가 체포된 이유로 달라이 라마의 발언을 제시했다.
90세 생일을 맞은 달라이 라마는 7월 초에
자신은 생을 마칠때까지 지도자직을 유지할것이며,
자신의 환생자를 본인의 측근들의 찾아낼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베이징에 상당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하필 당국이 극도로 예민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한게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9월 말이 되고 그녀의 체포(사실상 실종)가 2달에 가까워지자,
FREE TIBET, HRW, 국제엠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이
일제히 중국 당국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HRW 중국 담당 연구원 야쿤 울루욜은
"당국은 젊은이들이 당의 공식 노선을 벗어나
민족 간 교류를 시도하는걸 두려워한다"고 분석했다.
또 국제엠네스티는 긴급행동을 선언하며
10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것을 촉구했다.

10월 중순이 된 현재까지도 추가적인 소식은 없으며,
야디는 여전히 가족 면회와 변호인 면담이 제한된 상태로
창사시 국가안전국 관리하에 구금되어 있는것으로 추정된다.
이건 중국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라서
공식 기소나 재판 일정 역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앞서 말했듯 같은 혐의로 기소된 위구르 연구자 펑쓰위가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사례로 미루어보아,
쉬이 끝날 사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외에도 뉴스가 났었었군... 무서운 나라다 진자
중국이 과거 역사의 중화를 다시 보고싶다면 저런 사람들이 나라의 기둥이 되어야 할 텐데, 정작 중화를 말하는 놈들이 나라를 지탱할 재목들을 싹부터 걸러내려는데 혈안이 되어있구나...
중국 당국이 특치 정치범으로 잡아 버린 사람들은 그 끝이 좋을 수가 없어서...중국인이 정치적 목소리 내려면 그냥 해외에 체류 해야 함
해외에도 뉴스가 났었었군... 무서운 나라다 진자
중국 당국이 특치 정치범으로 잡아 버린 사람들은 그 끝이 좋을 수가 없어서...중국인이 정치적 목소리 내려면 그냥 해외에 체류 해야 함
에휴...
중국이 과거 역사의 중화를 다시 보고싶다면 저런 사람들이 나라의 기둥이 되어야 할 텐데, 정작 중화를 말하는 놈들이 나라를 지탱할 재목들을 싹부터 걸러내려는데 혈안이 되어있구나...
에휴..
본토 돌아가는건 위험하지 않나 싶었는데 역시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