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요버스가 점점 실제 문화권 여럿을
한 지역의 모티브에 몰아 넣고 있음.
이는 사실 수메르부터 시작된 기조인데
수메르는 인도, 서남아, 북아프리카 문화권,
폰타인은 서부 유럽 문화권이었으며,
지난 나타는 특이하게도 남아프리카,
북미에 남미, 폴리네시아까지 몰고 있었지.
노드크라이는 동유럽 문화권인 것 같고.
(*내가 개인적으로 정리한
티바트 편 서사의 진행도.)
재미있게도 각 지역 서사의 뼈대는
대체로 해당 지역의 고대 종교 교리와
그 기저에 깔린 종교 철학이었지만,
사실 티바트 대륙이라는 틀로 보면
점차 본질주의로부터 실존주의로,
그리고 다시 그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순차적인 실제 철학사의 맥락을 담음.
쉽게 말하면 원신 티바트 편은
신화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있음에도,
그 실상은 실제 철학사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흐름을 담는 교양서임.
단지, 게임이라는 매체를 빌리면서
딱딱한 인상을 지웠을 뿐이지.
이 철학사 얘기는 다음에 하고..
그 대신 오늘은, 이전 지역인 나타에서
주로 아즈텍 신화에 기반하면서
호요버스 작가진이 무슨 의도를 담아
어떤 서사를 짰는지 살필까 함.
내 글은 언제나 길기 때문에 요약하자면
나타의 서사는 분명히 부활이 주된 테마지만,
정말로 전하고픈 바는 '시대적 순환',
그리고 '규칙을 비트는 변칙'이라 할 수 있음.
때문에, 그로써 [축복과 저주]라는 이원론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서사가 완성됨.
그럼 곧장 본론으로 가실까?
(*아즈텍 문명의 유물, 태양의 돌.
다섯번째 시대의 태양신이 새겨졌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아즈텍 신화가
무려 네 번이나 이전 시대의 종말을 본
시대 순환의 서사임은 알 텐데,
그래서 난 마신임무의 주간보스가 신경쓰였음.
불의 용왕인 슈코아틀의 기억과 형상을
심연만의 방식으로 본따 만든 그소요토스,
이놈과 싸우다 보면 역대 불의 신들한테서도
기억과 목소리를 훔쳤음을 알 수 있는데..
그소요토스는 초대 불의 신 스발란케부터
코챠니나, 쿠무쿨, 그리고 은뎅게까지
총 네 명의 전대 불의 신들을 모방했지.
그들 각각의 인생사에서 절망을 포착해
모독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속삭였음.
아즈텍 신화의 원전도 역시
창조신인 테스카틀리포카를 시작으로
케찰코아틀, 틀랄록, 그리고 찰치우틀리쿠에,
즉 이전의 네 시대가 있었으며, 현재는
불길에 뛰어든 태양신 토나티우의 시대지.
여기서 현임 태양신인 토나티우가 불길에
뛰어들었다가 살아나와 태양신이 됐음은,
당연히 마비카가 성화에 몸을 던져
무려 500 년을 도과해 부활하여 심연에
승리한 불의 신으로 거듭난 일의 유래겠고.
뿐만 아니라 많은 요소들이 겹치는데,
고대이름을 새긴 흑요석 단검인 텍파틀,
그리고 이런 텍파틀로 심장을 꺼내 바쳐
태양을 유지하는 동력인 토날리로써
아즈텍인들은 세계를 유지한다고 여겼고,
때문에 공양된 이는 죽어서 믹틀란,
즉 아즈텍 신화의 명계로 넘어가는데,
이때 명계의 신(주인) 믹틀란테쿠틀리가
부활을 위한 망자의 뼈의 운구를
*멋대로 번복하기도 한다고 하지.
(*죽음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의미인 듯.)
여기서의 토날리가 아마도
불이 돌아온 밤의 순례에서 전사들이
결투로써 생성한 '각축의 불꽃'이겠고,
연기주인 부족의 이명은 믹틀란이었지.
연기주인 부족이 밤의 신과 긴밀한 관계였고,
명계의 힘을 부릴 수 있던 점으로 보면,
특히 성화를 통한 전사의 부활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한 것도
다 위와 같은 유래가 있기 때문임.
그리고 월드임무이기는 했다지만,
불의 용왕이던 슈코아틀의 피조물이자
형제로서 친왕이 된 쿠쿨칸, 다른 이름으로
'불을 훔친 현자', 왁샤클라훈 우바 칸도 있지.
실제 게임 내 쿠쿨칸의 외양을 보면
다리조차 없는 용 인간의 형상이면서
특이하게 깃털이 달리기도 했는데,
이는 신화 속 쿠쿨칸과도 같은 특징임.
(*케찰코아틀은 아즈텍 신화,
쿠쿨칸은 마야 신화에 등장하는데,
외양의 특징이 같고, 권능도 유사함.)
이 쿠쿨칸은 두번째 시대인
케찰코아틀의 *이명이기도 한데,
바람의 시대를 이끈 신이었음.
티바트 서사에서 바람 속성은
단순히 자유와 해방뿐만 아니라
서사를 전하는 매개적 존재인 만큼,
바람의 신이기도 한 쿠쿨칸이
창조주이자 형제인 슈코아틀의
서사를 직접 전한 게 참 공교롭구만.
(*시틀라리가 부린 사역마로도 등장했음.)
그런 쿠쿨칸이 가동하려던 모조 융합별(치치미틀),
나타 지역 전체를 열소화하는 초기화 장치는
아즈텍 신화 속 전쟁의 신인 우이칠로포치틀리였음.
슈코아틀은 이걸 가동해서 한 시대를 끝내고
심연을 영영 몰아낼 계획이었는데,
그는 동생인 쿠쿨칸이 이 계획을
계승할 것이라고 내다 봤지만,
쿠쿨칸은 아들인 오치칸의 선택처럼
결국 나타의 열소화를 포기했음.
ㅇㅇ, 아즈텍 신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시대의 변화 및 순환'이기도 함.
호요버스 작가진은 이미 수메르에서부터
티바트 서사 속 종말적인 운명론에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왔음.
즉, 시대의 마무리를 '고작' 종말이나
공허로의 복귀 따위로 매듭짓지 않는다고.
세계수를 불사르는 겁회,
심연의 힘으로 만든 모조인간을
모조리 수몰시키는 대홍수는
전부 우리가 직접 저지했고,
우이칠로포치틀리도 예외는 아니었음.
티바트에서 종말적인 운명을 거부하고
한낱 미생에 불과한 백성 하나하나를
각자만의 실존을 갖춘 존재로 격상시켜,
이들 모두를 이끌고 나아가는 포용이
티바트 편의 진정한 핵심 주제라는 거지.
그래서 나타에서의 '부활'은
그런 핵심 주제의 매개물일 뿐,
우리가 정말 눈여겨 봐야 할 건
바로 '이름'이었다고 봄.
지난 여름 이벤트 무대인 시뮬랑카에서
마지막에 두린의 저주를 풀고 데려와,
알베도가 설산의 유해와 융합시켜서
펠라 핸들이 달린 대꼴 보추가 된
인조인간 두린으로 부활시켰지?
그 이전에, 설산의 두린처럼
시뮬랑카의 두린은 악룡으로 불렸으나,
내막을 알면 어떻게 봐도 악룡이 아니었음.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멋대로 붙인 별명이었지.
이런 서사는 나타에 도착하자마자
첫 부족에서부터 계승되는데,
바로 메아리아이의 부족견문에서
딸 네히자를 잃은 트라졸리가
고아 니페카를 공양하려던 사건이지.
당연히도 트라졸리는 니페카에게
친딸 네히자를 겹쳐 보며 고통을 달랬지만,
결국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흉계를 꾸며
니페카를 강제로 네히자로 바꾸려고 했음.
ㅇㅇ, 니페카를 인신공양하고,
대가로 네히자를 부활시키려던 것임.
구체적인 계획은, 트라졸리 본인이
네히자(실은 니페카)의 대영혼으로 지정돼,
네히자와 관련된 이전까지의 모든 기억을
주입시켜서 니페카를 네히자로 바꾸는 것.
(관련 해설문 링크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3446981)
[기억과 망각]이라는 이원론으로써
존재론에 대한 서사가 어떻게 흐르는지는
이미 수메르에서 진하게 겪었으니
따로 설명이 필요없겠지?
그래서 흑요석 소형 각인을 잔뜩 만들어
네히자를 아는 지인들의 기억을 뜯었는데,
문제는 그 기억들이 하나같이
'병에 시달려 죽어가는 네히자'였단 거지.
이미 한참 전에 심연의 습격에 죽은
진짜 네히자는, 본인은 겪은 적도 없는
병자의 모습으로 부활할 뻔했음.
더 기가 막힌 점은 트라졸리 본인의
고대이름이 [운두구(가족애)]라는 점.
이때, 실로닌은 트라졸리에게 들은
'이름'에 대한 격언까지 언급함.
"이름이란, 과거에서 미래에 보내는 축복이다."
부활, 축복, 그리고 이름.
위 세 요소가 나타의 서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첫 부족견문에서부터
꽤 과격한 방식으로 전하고 있음.
(*몬드 프롤로그 임무에서
'풍마룡'으로 불리던 드발린은
'악룡' 두린 토벌의 일등공신이었다.)
ㅇㅇ, 같은 이름이라고 해도 그에 붙는
평판이나 가치판단에 따라서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지.
그래서 나타의 핵심 이원론은
[축복과 저주]였음.
부활이란 요소는 그 매개물인 '이름'을
승계하는 부차적인 과정이었을 뿐이고.
생각해 보니 고대이름 단조장인인
실로닌의 고대이름도 바라카(축복)네..
그런데 나타에서의 이원론이
정말 '이원론 그대로'이던가?
켄리아인들에게 내려진 '불사의 저주'는
이미 데인을 비롯한 켄리아 유민들을 통해
절대 '온전한 불사'가 아님을 알 수 있었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불사라고 하면 불로불사,
즉 한 존재로서의 어떤 손실도 없이
완전한 형태를 간직한다고 여기잖아?
그러나 불사의 저주는 죽지만 않을 뿐,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수백 배로 늘려
그 고통의 시간만 늘리는, 말 그대로
로노바가 선사한 '저주'였다고.
헌데 나타에서의 불사의 저주를
카피타노는 한 집정관의 생명을
대가로 바쳐야 하는 상황에 제시해,
실질적인 대가의 지불을 회피했음.
수혜자인 우리 입장에서 봐도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타인들에게 혜택적인 이 거래에서,
'불사의 저주'는 그 의미가 뒤집혔지.
즉, [축복과 저주]의 역전임.
가족애라는 관념을 계승하고도
미래로 선사해야 할 축복(이름)을,
죽은 딸의 회생을 위한답시고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켜 더럽힌 트라졸리..
모국이 세계의 비밀을 들추고 정복욕에 빠져
온 대륙을 전쟁으로 휩쓴 대가로,
죽지도 못하고 구천을 떠돌았지만
결국 멸망으로부터 백성을 구한 카피타노..
나타에서의 전쟁은 단순히
심연과의 생존을 건 전면전뿐 아니라,
인간이 존재를 걸고 벌이는 투쟁에서
어떤 대가를 치를지 따지는 거래였음.
[쟁취와 상실]의 손익을 결산해야 함.
대가 없이는 무엇도 얻을 수 없음.
때문에 나타의 '거래'에서 중요한 건
대가를 최소화하고, 수혜를 최대화하여
후대에 가치있는 유산을 남기는 일임.
말할 것도 없이 고대이름을 계승시킨
대영혼의 영웅들은 후손을 충실히 지켰고,
각 부족의 전사들이 모여 싸워서
전의를 불태워야 얻는 각축의 불꽃은
심연과의 전쟁에서 전사자를 소생시킬
성화를 유지하는 핵심동력이었음.
때문에 나타에서의 '부활'은
심연과의 전쟁에 필요한 무기이기 전에,
[탄생과 죽음]을 '번복하는 역전'으로서의
의미가 더 값지다는 인상을 받았지.
아즈텍 신화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 속의 이원론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절대성처럼 여겨져
이를 구전한 백성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당연히도 신화라는 매체 자체가 백성들의
욕망을 반영하며 각색이 더해짐에 따라
절대적으로만 보이던 이원론을 허물기도 했음.
아즈텍 신화의 창조신을
앞에서 테스카틀리포카라고 했는데,
실은 그보다 앞선 부모신이 따로 있음.
아즈텍 신화의 구조에서 우주순환은
본디 무정형이자 혼돈인 오메테오틀이
그 시작점이며, 이 오메테오틀이 *이분화해
남편 오메테쿠틀리, 아내 오메치우아틀로
나뉘면서 이원론적 일원성에 기반함.
(*혹은 이분화가 아니라 위격, 즉
[남성성과 여성성]을 번갈아 드러냄.
오오.. 위대한 자웅동체..)
아즈텍 신화 속 다섯 시대의 태양신들은
모두 오메테쿠틀리와 오메치우아틀 부부의
자식으로 구성된 이전 네 시대의 대표자들이고,
첫번째 시대의 테스카틀리포카가 형제인
두번째 시대의 케찰코아틀과 함께
거대 괴수 틀랄테쿠틀리를 오체분시(..)하여
세상을 만든 게 창조의 시작이었거든.
오메테오틀의 이원적인 위격의 발현,
그리고 그 자식인 테스카틀리포카가
형제 케찰코아틀과 함께 [생성와 파괴]를
거듭하여 형성한 아즈텍의 창조신화..
(*관련 해설문 링크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2834930)
오래 전부터 내가 쓴 원신 해설문을
읽던 사람들은 아마 기억할 것임.
티바트 서사는 하나씩 뜯어 봐도
죄다 이원적인 관계가 사실은 일원성을
띄는 상호지탱의 관계였다는 걸.
[자유와 구속], [불변과 마모], [영원과 찰나],
[지혜와 무지], 그리고 [정의와 불의]까지,
티바트의 서사에서 이원론의 저울을 두고
한쪽만 편취하려는 인물은 집착에 시달리나,
모두를 포용하려는 인물은 서사의 끝에
스스로 깨우침을 얻어 신격에 다다르고는 했지.
(*자유를 향해 손을 뻗는다고 여기지만,
어느새 이전의 죄업이 구속의 손길을 건넨다.)
이나즈마와 수메르의 사이에서
두 지역 모두의 관념 중 하나만 편취하려던
스카라무슈가 끝내 심장을 잃고 추락하고는,
존재의 말살이란 대가를 치르고서야
겨우 속죄할 기회만을 얻어 여정에 올랐지.
반면, 일곱 집정관들 중에서도 고참인
벤티와 종려를 뺀 나머지 신들은
지난한 시련의 서사를 거친 후에는
각자가 추구한 관념에 한 발 더 나아갔음.
에이는 찰나에 지나지 않는 염원이
하나씩 모여 이룬 게 영원임을 알았고,
나히다는 지혜로운 업을 이루고자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지만 정작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게 무지임을 알았음.
그리고 푸리나는 대홍수가 끝난 후에라야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한 존재를
그 자체로 포용하는 게 정의임을 알게 됨.
비교신화학의 선구자이자 정점인
조지프 캠벨은, 영웅신화의 틀에서
'인간적인 영웅이 마지막으로 무지의
공포를 이겨내고 도달하는 신적인 상태
(divine state)'를 신격화라고 했지.
ㅇㅇ, 티바트에서 이원론이란 결국
그 사이를 비집고 뒤흔들어 역전시키며
사실은 그 맥락이 하나임을 깨달아야 함.
이를 모르면 추락하고, 깨달으면 승격하지.
흥미롭게도 아즈텍 신화 원전에서는
테스카틀리포카와 케찰코아틀 형제가
[생성과 파괴]의 이원론을 구성하면서
동등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묘사됨.
그리고 이들 사이의 갈등과 조화가
아즈텍 신화의 우주순환을 유지시키지.
이 형제신들 스스로도 우주순환의
고리에 포괄된 존재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태어나고 죽으며 환생함.
그리고 이게 [낮과 밤]의 자연순환으로,
더 나아가 역사 개념으로 굳었다지.
참고로, 지금의 다섯번째 시대마저도
테스카틀리포카가 승리하면서
거대한 지진으로 멸망한다고 예언됐음.
그러나 이를 티바트처럼 종말론적인
예언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됨.
케찰코아틀이 패배하고 태양이 사라지지만
두 형제신이 만든 현세가 무너질 뿐,
다시 오메테오틀의 무정형의 세계,
즉 혼돈으로 환원되고 창세가 반복되지.
(*동화세계 시뮬랑카에서 세상 밖으로의
여정을 망설이던 에스노어.)
단지, 원신의 티바트 편에 있는 우리로서는
그 혼돈으로의 환원, 즉 심연이 온 대륙을
삼키는 파멸의 이전에 외부세계와
왕래하는 우주로의 진출이 당면과제임.
시뮬랑카에서 우리는 이미
외부세계와의 교류가 자유로워짐을
예고받은 바 있기에, 나타에서의
거대한 '전쟁'이 의미하는 바는
고작 심연과의 전초전에 지나지 않되,
전사들을 소생시킨 부활의 서사는
티바트에서 벌어질 대전쟁의 거래에서
어떤 대가를 어떻게 지불할지 배우는
선행학습의 장이었다고 할 수 있음.
(*[축복과 저주]의 이원론은 스네즈나야는 물론,
켄리아와 셀레스티아까지 계속 될 예정.)
정리하면 나타의 서사 속 이원론은
전쟁이라는 주제 때문에 단순히
[생성과 파괴]로만 이해할 우려가 있지만,
실상은 [쟁취와 상실], [축복과 저주]야말로
핵심적인 내용이었으며, 부활이란 요소는
그 이원론을 역전했다는 표지로 쓰였고,
앞으로도 티바트의 서사에서 이원론이
얼마나 무참히 부서질지 예고하는 요소임.
양극으로 갈라졌다는 이원론적 착각,
하지만 사실은 한 맥락인 일원성,
그리고 그 양극이 서로에게 존재를
지탱받는 이항대립적인 구조..
누구든지 비극의 운명을 피하려면
조금이라도 빠르게 이를 깨달아야 함.
그리고 이건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얼음여왕은 티바트에서 발현되는 이원론의
규칙이 부조리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규칙의 발현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것 같음.
어쩌면 이원론의 양팔 저울에서
한 팔만 취하는 편향이 안 먹히는 건
이미 도토레 덕분에 파악했으니,
아예 저울을 없애려고 하려나?
한편, 우리는 카피타노는 물론,
이어진 해등절에서 호두를 구출하며
'규칙을 비트는 변칙'을 학습하기도 했음.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그 규칙에
구애되지 않는 변칙이 작용했지.
티바트 속 평이한 이원론의 교류에,
강림자를 비롯한 온갖 외부적인 요인이
앞으로 이원론의 해체에 동원될 테고,
지금보다 복잡한 서사가 전개되겠지?
..그런데 이런 글은 왜 나만 씀?
초장기 연휴면 너희도 좀 쓰라고..
p.s. 혹시 내가 써놓은
다른 글들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이용하면 됨.
https://m.ruliweb.com/game/85342/read/23474
요건 각종 유래, 모티브 관련 글,
https://m.ruliweb.com/game/85342/read/27930
요건 이번 게시글 같은
각종 서사해설 글 모은 거임.
취사한 이상 나오는것도 복잡해지고 해석도 더 늘어난다 ㄷ
안쓰는게 아니라 이정도 교양은 없어서 못써요....
아즈텍 신화가 순환서사인것도 방금 처음 알았....
볼때마다 티바트 역사학과 논문 같은 글이야
일단 와드
원신이 기본적으로 각 나라의 모티브가 되는 지역의 신화를 굉장히 심도있게 차용하다보니
플레이할 때도 아는만큼 보이고 감동을 받게 됨
겜 커뮤에 강한 회의를 느끼면서도 이런 양질의 분석글을 한번씩 볼 때면 그래도 세상은 넓다는게 느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