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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굴비, 첫 G1 우승


[말딸,괴문서]냉동 굴비, 첫 G1 우승_1.jpg




티아라.
벛꽃상, 오크스, 추화상으로 이루어진 왼쪽 귀 장식을 선호하는 우마무스메들이 추구하는 세 보석.
클래식 삼관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들이 도전하고, 그 문턱에서 주저앉는다.
그야 1착은 단 하나의 우마무스메에게만 허용되는 종착점이니까.
“후우, 후우….”
그리고 올해의 티아라는, 단 하나의 우마무스메에게 다 돌아갔다.
-스틸 인 러브….
3번의 맞대결에서, 경합을 이루어냈지만 결국 모든 보석은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메지로 라모누의 뒤를 이은, 두 번째 트리플 티아라라는 칭호를 얻어냈다. 그 생각에 땀을 아직도 땅에 쏟아내는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이를 악물었다.
분하다.
하나라도 손에 넣고 싶었던 보석을, 단 한 명의 손에 들어가게 해버리다니.
역시, 불순물이 섞여선 안 된다.
감정이라는, 인간관계라는 불순물을 쳐내고 순수한 얼음이 되어야 한-.
“하?”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퇴장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틸 인 러브의 트레이너와 그녀의 뒷모습. 뭐 이거까진 이해한다. 하지만 그가 일부러 과장된 몸짓을 할 때마다 라이벌이 흠칫흠칫 몸을 떠는 모습이 명백히 보였으니.
누가 봐도 명백히 다 큰 어른이 애를 놀려먹는 거 아닌가. 왜 저걸 눈치 못 채고 휘둘리고 있는 거 같은 모습이지?
그것도 트리플 티아라 우마무스메가?
-이건.
“좀 한심한데….”
그걸 보자마자 맹렬하게 타오르던 마음속의 불길은 한순간에 물이 끼얹어졌다.
아니, 저건 진짜 좀 그렇다고.
“…꺾어볼 만하겠어.”
동시에 새로운 각오를 품게 했다.
다음 G1, 엘리자베스 여왕배.
그 한심함을 꺾어주마.
-⏲-
그리고 그렇게 호언장담한 대로, 마침내 그녀는 엘리자베스 여왕배에서 스틸 인 러브의 독주를 꺾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오랜 짐이 덜어진 것만 같이 답답한 느낌이 마음에서 걷히며, 땀투성이로 들어 온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표정은 오랜만에 상쾌할 정도로 맑았다.
“장하다, 우리 아루브. 진짜 장해.”
“읏-.”
그런데 그렇게 땀투성이로 들어온 그녀의 머리에, 마치 어린애한테 하듯 트레이너의 손길이 닿았다.
뭐라고 할까, 느낌이 이상하다.
남한테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이번이 처음인 느낌인데.
아무튼, 진짜 이상하다.
차갑고, 순수해지고자 한 마음이 저절로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간질간질함이 가슴에서 느껴진다.
분명 인간관계는 귀찮은 것인데. 그러면 이걸 거절해야 하는데.
“좀 더 쓰다듬어 주세요, 파파.”
몸과 마음이 따로 나와서 튀어나오는 말이 저랬다.
“그, 파파라고 부르는 거 좀 밖에선 자제하렴.”
물론 트레이너는 그녀의 그런 태도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부르는 호칭을 지적했다.
“결혼도 안 한 남자한테 그렇게 부르는 거 딴 사람이 보면 진짜 야단난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둘만 있을 때 하도록 하죠.”
“그건-. 어휴, 마음대로 해라.”
사실 결국 허락해준 것도 트레이너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하면 어드마이어 그루브의 인간관계를 좀 더 개선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응, 지극히 어른다운 생각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애칭을 허락해 줬다는 것 그 자체가 우마무스메들에게 무슨 의미일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이유도 하나 있었다.
-죽어도 형하고 전화할 때 굴비라고 부른다고 할 수 없지.
뭐, 옆에 들리는 목소리로는 ‘가시나한테 굴비가 뭐꼬 굴비가, 연애 못 해본 티 드럽게 내고 앉았네!’라는 괄괄한 타마모 크로스의 외침도 섞일 때가 있긴 했는데, 아무튼 그랬다. ‘그루브’라서 굴비라 부른다는 말 듣고 전화 너머의 곰탱이 훌리건이 얼마나 처웃던가. 결국 그도 나름대로 그녀를 칭하는 별명으로 하나를 가족끼리 쓰고 있기에 약간의 짐이 있었다.
‘기렇다 쳐도 파파라 부르는 건 좀 많이 남사스러운디, 갸는 그게 뭔 뜻인지 알고 한다 카나’
아, 말해봤지.
그런데 돌아온 답이 뭐더라.
“트레이너님은 제 파파가 될 남자 아닙니까. 그러니 파파라 부르는 거지요.”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그 왜 로리콘 붉은 혜성이라던가.
샤아 아즈나블이라던가.
딱 그거잖아, 맙소사.
“맘대로 해라… 뉴스에만 안 뜨게 해다오.”
“명심하겠습니다, 파파.”
“하아.”
결국 작은 조건을 단 채 그냥 허가해 줬고, 그 이후 그는 아루브한테서 파파라고 호칭이 고정되었다. 왜 총각인데 파파라 불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 그녀의 가정사를 생각하면 참작해 줘야지.
처음으로 조건없는 선의를 받아본 제3자가 그가 처음이라면, 눈 안 돌아간 게 용하다.
그러니 애가 착한 거지.
“기념비적인 첫 G1 우승이구나.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니? 가지고 싶은 거라던가.”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솔직히 교육자로서는 뿌듯하다.
경쟁의식에 너무 몰두하지 않았고, 기회를 노려 허를 찌르는 영리한 방식으로 삼관 우마무스메를 꺾었으니까.
심지어 첫 담당인데 이러니 어디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거 말입니까?”
그런 그의 말에 아루브는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뭐든지 가능한지요?”
“그-.”
‘그래’라고 말하려다가 순간 위험함을 직감했다.
뭐든지, 라고 말하면 왠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본능의 경고가 울린다.
“-정도는 아니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그래서 회피기동을 택했다.
이러면 뭐, 알아서 적당한 걸….
“그러면 파파랑 주말에 쇼핑하러 나가고 싶습니다.”
“아.”
취소.
그래도 설마 뭐 사고 싶은 게 있어서 나가는 거겠지?
“그래, 원한다면 그러자. 살 게 있니?”
“아뇨, 좀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응, 아니야.
얘 말만 파파, 파파거리지 뭔가 심상치 않다.
“그래…. 그러자. 시간 말해주면 스케줄 조정을 해볼게.”
“알겠습니다, 돌아가면 확인하고 곧바로 LANE으로 보내겠습니다.”
유달리 기다란 두 귀를 쫑긋거리며, 서로 다른 색의 두 눈을 반짝거리는 거 보면 확실하다. 뭔가 꿍꿍이가 있다.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걸까.
경험 많은 트레이너도 걸리면 답이 없는 왼쪽 귀 우마무스메의 파리지옥에 들어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건, 훗날 어드마이어 그루브가 엘리자베스 여왕배 2연패에 성공할 때였다.
당장은 애한테 어울려준다는 느낌으로, 기꺼이 그녀의 요청에 응했다.
…이게 실상은 데이트라는 걸 아는 이들은 트레이너를 제외한 팀원의 전부였다.
풋내기에다가 연애 경험 제로라는 타이틀을 다 쥔 이 트레이너는 점점 인지도 못 한 채 끈적한 늪으로 빠져들어 가기 시작했다.
제때 눈치 못 챈 것이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는가.




회피기동 실패

뭐든지만 위험한게 아니다

댓글
  • 린성신관알타 2025/10/04 02:48

    굴비 이즈나블...

    (cbdqhx)

(cbdqh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