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들은 자기 성을 성이라 안 부르고 관명이라 부를 때가 있다.
대체 뭔 차이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트레이너는 생각했다.
-어드마이어 관명인 애들은 다 이상한가?
그야 그럴 수밖에.
호기롭게 계약을 권유한 후, 다음 날 아침 6시 그가 딱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작성을 완료한 계약서를 들고 트레이너실로 찾아왔다. 뭐, 여기까진 좋은데.
애가 뭔가 이상할 정도로 쌀쌀맞다? 아니, 사람을 경계한다?
뭐, 계약서를 업로드하면서 간단한 가족관계 등의 학생 인적 사항도 중앙 인트라넷을 통해 내려졌는데, 설마 조실부모하고 자라서 그런가? 아, 물론 담당을 깎아내리는 건 아니다. 인간관계가 지나치게 경색된 것이 우려될 뿐이지.
물론 그런 거 치곤 자랄 때 다른 어드마이어 가, 즉 어드마이어 베가나 어드마이어 돈 쪽의 도움을 좀 받긴 했다는 거 같긴 한데, 설마 얘는 자존심이 있어서 자기에게 준 지원을 다 쳐냈나?
그러면 매우 곤란한데.
뭐, 계약 권유 당시 한 칭찬에는 그 유달리 긴 귀가 쫑긋쫑긋하던 거 같은데 그걸로는 부족하다. 신뢰가 없으면 아예 성립되지 않는게 앞으로의 가시밭길이다.
앞으로 그가 할 지원은 아예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튜닝인데 말이다.
그나마 입학 전부터 관계가 있던 걸로 보이는 우마무스메는 현재로선 하나, 에어 그루브. 혹여나 문제가 생긴다면 그녀의 도움을 좀 받기로 하고, 일단 당장 눈앞에 있는 것부터 고민에 들어갔다.
“자, 이제 어떤 경주화를 사야 한담.”
팀 내의 서포트 지망 우마무스메들에게 물어보면 더 확실하겠지만, 일단 그는 막 올라온 풋내기다. 그러니 직접 해결해서 경험을 쌓고, 정 안 되면 애들의 힘을 빌려야지.
일단 선발 레이스 당시의 경험을 돌이켜봤다.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이제 같은 팀 소속이 된 적갈색 머리의 우마무스메, 즉 스틸 인 러브를 중반부터 후방에서 바짝 추월하려는 듯 따라붙었다. 완전 극후방은 아니고 후방 그룹에서 말이다. 계약 후 한 체력과 각질 검증을 위해 뛰게 했을 때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고. 이러면 떠오르는 각질은 일단 선입. 선행 또한 고려해야 할 범위다. 이는 신발의 범위를 좀 좁혀주긴 했다.
당장 오구리 캡이라는 걸물을 서포트하던 우마무스메가 남긴 데이터가 죄다 선행과 선입 두 쪽에 특화된 것이니까.
그러면 스퍼트를 올릴 때 다리 힘이 강하다는 것인데….
“그럼 이쪽이구먼.”
회색 괴물의 신발을 만든 걸로 유명해진 한 브랜드의 모델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을 보니 다소 헉 소리 나긴 했는데, 시리즈 내내, 그리고 훈련 내내 신을 신이다. 좋은 것일수록 교체 확률이 대폭 줄어든다.
“일단 불러서 보여줘야겠네.”
일단 해당 신발을 킵해둔 채 그는 담당을 호출했다.
골 아픈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줄은 상상도 못 하고 말이다.
-⏲-
“새로운 신발, 입니까?”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네 선택이 가장 중요하거든.”
그는 추려낸 신발 모델들을 보여줬다. 그중 두 장의 사진과 스펙을 정리한 걸 그녀에게 내밀었는데, 사유가 있었다.
“이쪽은 너랑 유사한 각질을 지닌 애들이 주로 신는 신발. 튼튼한 재질이라서 3강 시대 이후 메이저가 된 타입이지.”
다소 투박한 인상의 신발은 확실히 튼튼하게 보이긴 했다. 좀 지나치게 투박할 뿐.
“이쪽은 같은 메이커에서 내는, 힐 형태의 경주화. 뭐, 둘 다 튼튼하기론 유명한데, 일단 네가 원하는 방향을 고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두 가지를 유심히 보던 그루브는 이내 조용히 말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싼지요.”
아, 이건 확실하다.
좀 더 싸고 튼튼한 걸 고르려는 거다.
그런데 어림도 없지.
“가격은 일부러 다 빼놨다. 네가 신경 쓰일까 봐. 그냥 마음 가는 걸 골라. 내일 당장 사러 간다.”
“예…?”
‘가격 상관없이 니 맘에 드는 걸로 해라’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인 것일까. 서로 다른 색의 눈동자가 진동했다. 그렇게 다시 유심히 살펴보던 그녀는 이내 한 장을 골랐다.
“이게 좋습니다.”
“그래? 색은 가서 고르면 그만이니까 상관없겠고, 편자는 충분하니?”
“…아뇨. 학원 걸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는 김에 편자도 좀 사야겠네.”
사야 할 목록을 휴대전화에 빠르게 적어나간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내일 나간다. 같이.”
“잠시만요, 저도 같이 가는 겁니까?”
“3년 내내 신을 신발하고 네 발에 맞는 편자를 찾으러 가는 거니까, 당연히 같이 가야지?”
“아….”
그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그녀는 자신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마치 이만한 선의를 처음 받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알겠습니다. 내일 일정을 빼두겠습니다.”
“그래, 내일 트레이닝도 없으니까 아예 필요한 거 다 사 온다고 생각하자.”
그러던 중, 그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물었다.
“맞다, 승부복 원안도 혹시 그린 게 있으면 가져오렴. 미리 가는 김에 주문 제작하자.”
“…!”
승부복을 미리 재단한다.
이는 그가 그녀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명확히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철들기 전부터 부모님의 따뜻한 품을 겪어본 적 없이, 홀로 지내면서 종종 미래를 꿈꾸며 그려왔던 승부복의 원안은 분명히 그녀에게 있었다. 승부복은 이러나저러나 G1이라는, 대상 경주에서도 가장 최고봉에서만 입을 수 있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니까.
그러기에 그건 꿈이었다.
“…제 실력은, G1에 미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트레이너님.”
“맹세하마, 널 반드시 G1에서 뛰게 할 정도의 보석으로 다듬어 줄게.”
“…!”
그리고 그 오랜 꿈을 현실로 구현해 줄 것이라는 각오를 이 눈앞의 남자는 맹세했다.
“뭐, 팀 내 우마무스메와 경쟁이 될 거 같긴 하지만 말이야.”
“팀 내에서의 경쟁이라면, 아-.”
스틸 인 러브.
그녀 또한 G1을….
아니, 잠시만.
“제가 티아라에 도전할 실력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왜, 두렵나?”
만화에나 나올 법한 도전적인 표정으로 도발하는 트레이너의 모습에, 처음으로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하고 싶다.
손에 하나라도 쥐고 싶다.
왼쪽 귀 장식을 선호하는 우마무스메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길인 티아라의 세 보석을.
“하겠습니다, 반드시 뛰어보겠습니다.”
“좋아, 그 밑준비라고 생각하고 내일 만나자. 살 게 좀 많을 거 같다.”
그리고 이건, 마침내 어드마이어 그루브가 트레이너에 대한 경계심을 한 단계 낮추고 신뢰도는 한 계단 올리는 결정타가 되었다.
원하는 대로 뛰어라, 전력으로 지원해 줄 테니.
-⏲-
“다리가 가벼워….”
데뷔 레이스.
오랫동안 쓰던 낡은 중고 경주화와 달리, 새로운 신발과 맞춤형으로 주문된 편자는 게이트 안에서 뛰기 전 가볍게 다리를 푸는 어드마이어 그루브에게 남다른 기분을 느끼게 했다.
가볍다.
분명 신발은 더 무거워졌을 텐데, 다리가 느끼는 감각은 가벼움이다.
신발에 익숙해지기 위해 달리는 자세를 교정받았고, 어느 거리가 적성인지 파악하기 위해 적응을 겸해서 다양한 거리에서 훈련했다.
-1800m, 첫 레이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첫 경주의 앞에서 그녀는 자세를 갖추며 거리를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마일이라, 그러고 보니 훈련 끝에 나온 결과로는 마일에 대해 그녀가 어느 정도 적성이 있다는 것도 나오긴 했지.
‘마음 가는 대로 달려라, 후회가 없도록.’
동시에 한 사람의 말이 가슴속에서 울렸다.
왜 지금 생각나는 걸까.
무언가 가슴을 조금씩 간지럽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가운데,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거, 귀찮은 거 아닐까.
그러니 트레이너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탕!’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터프를 박차고 나아가며 그 결심을 더욱 강하게 굳혔다.
아니, 굳혀보려고 했다.
「어드마이어 그루브, 1착으로 골인!」
처음으로 뛴 레이스에서, 처음으로 1착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첫 우승 축하해, 혹시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 뭐든 들어줄 테니.”
위닝 라이브를 준비하기 위해 들어온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가 한 말에, 결심이 한순간 자취를 잠시 감춰버렸으니까.
“뭐든, 입니까.”
“그래, 뭐든.”
잠시 고민하던 어드마이어 그루브는 이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트레이너님을 파파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어?”
“동의하신 걸로 알아도 됩니까?”
“어, 아니, 어….”
그가 당황하는 가운데, 뒷짐을 진 그루브의 한쪽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었다.
‘녹음 중’이라는 화면이 떠 있는 휴대전화가.
신참 트레이너의 인생이 대판 꼬이게 되는 첫 단추, 드디어 꿰어졌다.
어드마이어 관명인 애들이 이상하게 좋다.
물론 최고는 아야베야.
어드마이어 : 광인기질을 가진 자들을 말함
아루브 : 또레나=상은 내 파파가 되어줄 남자였다!
스럽 : 파파? 또레나가?
그렇게 파파가 되고......오빠가 되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