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종들이 점점 맘에 안 드는 이유...

최신 기종들이 기술적으로는 당연히 훌륭한 게 맞고,
속도와 정확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그 강점이 빛을 발합니다.
다만 모든 사진에서 그와 같은 요소들이 필수가 아니라는 것도 팩트죠.
최신 기종, 최신 렌즈들의 무결성 지향의 이미지들이 언젠가부터 저는 슬슬 불편해지더라구요.
가장 큰 문제가 사람의 존재감을 줄인다는 것입니다.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전부 다요.
제가 우연히 RP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보고 들은 의견들이,
RP의 센서는 6D Mark II에 쓰던 사골 중 사골센서고, DIGIC 8도 너무 구형이다 라는 것이었죠.
둘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못 쓸 물건이 되는 건 아닙니다.
수동 렌즈가 주력이고 정적인 사진 위주라 AF 성능이나 연속촬영 성능 별로 안 중요하고, 고화질 동영상 찍을 거 아니면 RP와 바로 후속인 R8 사이에 기술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급속히 줄어듭니다. 고감도 성능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제가 DxoMark 점수를 확인해본 바로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노출 한 스톱 차이 이내였어요. 게다가 RP가 26MP로 24MP인 R8 보다 화소가 소폭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RP에서 F2.8 줌렌즈를 고집하지 않고 F1.8 단렌즈만 써도 고감도 성능 차이는 기술 레벨에서도 사실상 없어집니다.
(물론 R8에서 단렌즈를 쓰면야 다른 이야기지만요)
다만 이런 정량적 차이 말고 정성적 차이가 있습니다.
RP의 기본 색감이 R8보다 좋은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색감 표현은 구식/신식이라는게 없죠.
고성능 딥러닝 AF도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편합니다. 근데 카메라가 계산했거나, 계산할 수 있는 자리에만 맞추게 되잖아요... 저는 AF 렌즈들도 물론 사용 중이지만 오랜 기간 수동 렌즈를 함께 쓰면서 카메라가 계산 가능한 자리가 너무나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AI AF가 미칠듯이 발전해도 카메라 컴퓨터는 절대로 공중의 임의의 한 점에다 초점을 맞추고, 유지하진 못합니다. 그 점의 위치를 결정할 근거를 컴퓨터로는 절대 예측도 계산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덧붙여 이 글은 신기술 무용론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필름이나 DSLR, 광학 뷰파인더 카메라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디지털이 필름보다 좋고, 미러리스의 EVF가 자동/수동 렌즈 모두에게 훨씬 좋기 때문이죠.
다만 기술이 사용자를 방해하거나 앞서지 않고 뒤에서 충직한 조수처럼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기술로 잘 되는 영역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는 이야기고,
스타일이라는 것은 구식이 될 일이 없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