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는 6.25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총이 길거리에 많이 풀려있기 때문에 범죄 조직들은 상당수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성사 저격 사건처럼 거침없이 총들고 설치는 사건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던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총기가 엄격하게 규제 된걸까?
1 김신조 사건
북한 공작원들이 청와대 앞까지 침투하다가 교전한 사건으로
간첩 색출을 위해 주민등록증 제도까지 만들었고 예비군도 창설했을정도로 한국 안보에 영향을 주었다.
당연히 간첩들이 총기 주워서 사용하는것도 방지하기 위해 민간의 총기 사용을 엄격히 통제하고 처벌하는 법안들이 만들었고 길거리에 돌던 총기들도 전부 압류당했다.
2 구로동 카빈 강도 사건
어느날 2인조 강도는 은행을 털 총기가 필요한데 민간 총기는 김신조때문에 다 압류당한 상태.
이들은 결국 당시 보안이 허술한 예비군 무기고를 털어서 총기를 얻는 방법을 선택한다.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에서 종업원을 총으로 살해한뒤 현금을 털고 도주하다 어느 민간인 집에서 일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인질 가족들과 같이 소총으로 같이 ㅈㅏ살하게된다.
3 우범곤 사건
순경출신 우범곤. 역시 마찬가지로 경찰서의 무기고를 털어서
민가 여러곳에다가 총기난사를 시전하고 63명을 살해하고 강도2인조랑 마찬가지로 인질들과 동반 ㅈㅏ살
이 두 사건들로 전국민의 충격을 주었기때문에 예비군과 경찰서 무기고 보안도 매우 엄격하게 강화되었고 총기 소지법도 더욱 까다로워지게되었다.
해방 이전으로 가면 의병전쟁을 겪은 일제가 총기란 총기는 다 몰수해버린 역사도 있었다
그래서 무장봉기를 벌일 수 없어서 3.1운동 때도 비폭력 시위운동 말곤 선택지가 없었지
우범곤 사건이
최단시간내 단일범이 최다살인 기록이라던가?
해방 이전으로 가면 의병전쟁을 겪은 일제가 총기란 총기는 다 몰수해버린 역사도 있었다
그래서 무장봉기를 벌일 수 없어서 3.1운동 때도 비폭력 시위운동 말곤 선택지가 없었지
우범곤 사건이
최단시간내 단일범이 최다살인 기록이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