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대상이 바뀌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손을 맞잡고 주변인과 성도회, 그리고 나아가 트리니티 학원의 평화를 바라던 사쿠라코의 기도는 언젠가부터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신을 차려도 그마저도 잠시, 이내 마음 속으로 바라는 것은 샬레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선생의 안녕이었다.
그리고 또, 오늘은 선생과 만날 일이 있기를, 하는 자그마한 바람.
볼 일이 있어 샬레에 도착한 사쿠라코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건 그리 달라진 그녀 자신의 모습이었다.
달아오르는 볼과 복잡해진 상념을 흩어낸 건 사쿠라코의 휴대폰이었다. 매사 진지하기로 유명한 시스터후드의 수장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지만, 그 나잇대 여고생이라고 한다면 어울리는 귀여운 알림음이었다.
모모톡의 기능 확인 삼아 단 한 명을 위해 다르게 설정해두었던 그 알림음에 사쿠라코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내일 저녁 쯤에 트리니티에 볼일이 있어서]
[대성당에 잠깐 들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짧지만 정중한 부탁에 사쿠라코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피어올랐다. 열심히 기도한 보람이 있는 듯 했다. 혹여 그 잠깐 사이에 선생의 마음이 바뀔까, 답장을 작성하는 사쿠라코의 손가락은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내일은 언제오셔도 괜찮아요. 저도 대성당에 있을테니 편할 때 와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알겠어. 배려해줘서 고마워.]
금세 도착한 답장에 사쿠라코의 입가가 흐늘흐늘 풀어졌다.
[그나저나 답장이 빠르네]
이윽고 이어진 선생의 답에 또 다시 사쿠라코의 볼이 달아올랐다. 오매불망 선생과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들킬까 노심초사하며 사쿠라코는 황급히 변명을 보냈다.
어디선가 말하길, 먼저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된다고 했으니.
[마침 휴대폰을 보고 있어서요]
[다음부터는 따로 이렇게 말씀 안하고 와주셔도 괜찮아요.]
[아냐, 시스터후드 때문에 사쿠라코도 바쁠테니까.]
[민폐가 되진 말아야지.]
그럴 일은 없을 텐데. 사쿠라코는 선생의 답장에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오히려 바쁜 와중이라도 선생이 온다면 만사를 다 내팽개치고 선생을 맞이하러 갈 수도 있었다.
선생이 그녀를 좀 더 허물 없이 대해주고, 일이 없어도 그녀를 찾아와 준다면 더더욱 좋을 터인데.
그래도 내일은 선생을 트리니티 대성당에서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쿠라코의 가슴이 뛰었다. 마침 언제 먹을까 챙겨 두었던 유명 제과점의 디저트가 있었다. 선생과 함께 즐긴다면 맛이 배가 될테지.
그리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려는 순간 익숙한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얀색 코트 끝자락이 확신을 더해주자 사쿠라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선……."
곧바로 선생을 부르려던 사쿠라코의 귀에 이어서 들리는 또 다른 목소리. 정갈하게 차려입은 수녀복, 귀가 삐죽 솟아 올라와 있는 후드, 땋은 주홍빛 머리카락.
사쿠라코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채 입을 틀어막으며 벽 뒤로 숨어버렸다.
가벼이 얼굴을 붉힌 채 선생과 즐거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소녀는 사쿠라코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끼는 후배인 이오치 마리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선생이 같이 있다면, 더더욱 의외의 만남에 기뻐해야 하지 않는가?
마리가 선생에게 혼나고 있거나, 둘이 불편한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선생과 마리는 그저 평범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둘의 앞에 나서서 "어머, 우연이네요." 라고 말하며 자연스레 끼어들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지만, 대체 왜.
가슴이 이리도 술렁이고 지끈거리는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벽 너머에서 들리는 사소한, 그래, 무척이나 사소한 그 대화가 사쿠라코의 귓가를 흐를 때마다 가슴의 통증은 더해갔다.
방금까지 선생과 대화를 나누었던 매체인 휴대폰을 양 손으로 꽉 쥐었다.
목소리가 아닌, 전파를 통해, 그저 선생과 문자로 대화를 나누던 휴대폰을.
숨이 가빠왔다. 지끈거리던 가벼운 아픔은 어느새 마음이 갈라진 듯 따끔거리는 통증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갈라진 마음의 틈새에서 벽 너머의 소녀를 향해 질척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알 수 없는 적의에 사쿠라코는 그저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사쿠라코가 참회실을 찾은 건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제법 왔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시스터후드를 이끄는 입장이 되어보고 나니 참회실을 찾아가기가 껄끄러워진 탓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도망친 사쿠라코가 거친 숨을 내쉬며 트리니티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덮친 건 끔찍한 죄악감이었다. 아끼는 후배를 향해 정체도 모를 그리도 끔찍한 감정을 품다니.
마음 속 한 구석으로 밀어넣은 채 혼자 삭일만한 감정이 아니었다.
저녁을 지나 내려앉은 어둠이 그녀의 안에서 피어오르는 그 부정과도 같았다.
건너 편에 느껴지는 인기척을 신경 쓸 틈도 없었다. 그렇기에 사쿠라코는 은은한 참회실 불빛 아래 건너 편에서 빛나는 주홍빛 머리칼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자그맣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트리니티를, 시스터후드를, 그녀를 따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자신이 어느샌가 선생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그 사실을,
선생이 부른다면 어떤 일이도 내팽개친 채로 달려나갈거라고 생각해버린 자신의 생각을,
선생과 나누는 문자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그리고,
오늘, 샬레에서 선생과 아끼는 후배─마리가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순간 마리의 자리가 자신의 자리였다면, 아니, 마리의 자리가 자신의 자리여야 한다는 생각에 적의를 품었다는 사실까지를.
참회실 건너편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참회실을 채웠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소녀─마리는 무릎 위에 내려놓은 손을 꾹 쥐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라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자신도 건너 편에 앉아있는 그녀─사쿠라코와 똑같았으니까.
어느샌가 늘 선생의 평온을 위해 기도하고, 선생의 연락을 기다리고, 선생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선생과의 담소가 그 무엇보다 즐겁고.
그리고 선생의 곁에 있는 아이들이 부럽고, 부러우며, 또 부러웠다.
그리고 조금은, 미웠다.
어리석게도, 마리는, 소녀는, 여인은 그리하여 자신의 감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침묵을 이상하게 생각한 사쿠라코가 고개를 들었다. 본래라면 형식적인 답변이나마가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사쿠라코는 참회실 작은 창 너머, 은은한 불빛 아래 빛나는 주홍빛 땋은 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께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참회실에 작게 울려퍼졌다. 그렇지만 평소와 같은, 자애가 담긴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래, 말하자면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목소리였다.
사랑에 빠져, 질투를 깨달아버린 소녀의 목소리.
말하자면, 선전포고일지도 모른다.
"용서하실 겁니다."
그래, 신께서는 용서할 터였다.
그녀는, 용서할 수 없을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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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발언) 캣파이트 꿀잼임
전쟁을 선포한 두사람은 다음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영복을 입은 히나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