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님과의 시간여행

얼마 전 몸이 편치 않으신 80을 훌쩍 넘기신 노모에게 병 문안 차 갔더니, "이게 10년 전 돌아가신 네 아버지 유품이다" 하시며 건네 주신 낡은 카메라 하나, "미놀타 하이매틱 7S" ...
집으로 돌아 와 정성스레 닦고 배터리도 넣어 보았지만 노출계는 사망, 렌즈는 먼지와 곰팡이로 얼룩덜룩, 이중합치상은 흐릿하고 과연 촬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더군요...
그래도 슬라이드 필름 하나 끼워 들고 나갔습니다. 마치 "프리퀀시(Frequency)"라는 영화에서 아들이 아마추어 무선통신기로 시공을 초월하여 돌아 가신 아버지와 교신하면서 집안의 위기를 구하던가? 하던 것과는 다르지만 아버님과 함께 출사한다는 생각으로 한 롤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현상소에서 받은 슬라이드 필름은 거의 다 오버로 찍혀 버려야 했습니다. 원인은 조리개가 완전히 닫히지 않더군요. 셔터를 릴리즈 한 후 들여다 보니 조리개 날개들이 조그맣게 구멍을 내 놓은 상태로 닫혀 있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수동으로 노출을 맞추는데 익숙치 않았거나요...
그래도 돌아가신 아버님과 함께 사진 여행을 할 수 있어 기뻤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있었기에 비록 이 사진기로 아버님이 사진을 찍으시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체취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테스트 컷들이고, 핀도 나가고 노출도 안 맞은 사진들이지만 제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작품"입니다. 아버님과의 시간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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