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죽음을 택했으면 끝까지 엄격한 장군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임.
근데 정작 자기 목숨 아까우니까 목숨 구걸하는 것은 솔직히 좋게 못 보겠음.
우금이 노하여 그 무리들에게 말했다, “청주병도 함께 조공(曹公-조조)에 속하는데 다시 도적질을 한단 말인가!” 이에 그들을 토벌하고 여러 명의 죄를 물었다. 청주병이 급히 태조에게로 달아나 고해 바쳤다. 우금은 도착한 뒤 먼저 영루(營壘)를 세우며 곧바로 태조를 찾아가 배알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고
우금이 말했다,
“제군들은 공의 상령(常令)을 모른단 말이오! 포위당한 후에 항복한 자는 사면하지 않는다 했소. 무릇 법을 받들고 영을 행하는 데(奉法行令) 으뜸되는 것이 절(節-절도, 절조)이오. 비록 창희가 옛 벗이긴 하나 나 우금은 절(節)을 잃을 순 없소!” 직접 창희의 형을 집행했는데 눈물을 흘리며 참수했다.
저렇게도 했는데 마지막 항복으로 지금까지의 행적들은 목숨 아까우면 버릴 컨셉에 불과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함.
뭣보다 조조도 "내가 우금을 30년 동안 알고 지냈지만 위난에 처하자 오히려 방덕보다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짐작했겠는가!” 이렇게 평가했는데 조비 행동이랑 별개로 우금은 문제 있음.
"아니 거기서 항복 안 하면 병사 다 죽는다"고 할 수 있는데 어차피 우금이 잡힌 시점에서 포로들의 생사여탈권은 관우에게 있음. 그리고 항복 안 하고 자기 목숨 대가로 병사들 목숨 살려달라는 선택지도 있었음.
몇몇 하꼬들 말고는 싸움에 져서 잡혔다고 항복하는 경우는 극히 보기 어려웠는데 그걸 우금이 해냅니다
하후무는 잡혔다가 풀어주니까 쪽팔려서 귀환도 안했다고!!!
얘는 진짜 왜 항복한거지
병사들 목숨 살리려고 한건가 자기 목숨이 아까웠던건가
진궁이 조조 배신한거랑 버금갈 정도로 궁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