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의 1형', 데키마티오(decimatio)는, 고대 로마 군대에서 기강이 해이해지거나 전장에서 명예롭지 못한 행동을 한 병사들을 단속하기 위한 군사 규율 중 하나였다.
이는 부대 안에서 임의로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을 선발하여 나머지 군인들에게 그들을 직접 때려죽이게 하는 극형 중의 극형이었다.
데키마티오가 시행된 주된 배경은 로마 군대의 기강 확립과 사기 진작이었다. 로마 군대는 뛰어난 군사력으로 제국을 건설했지만, 이는 엄격한 규율과 훈련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데키마티오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었다.
-집단적인 반란 또는 항명: 부대 전체가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반란을 꾀했을 때.
-전장에서의 비겁한 행동: 적을 피해 도망치거나, 전투를 회피하는 등 집단적으로 비겁한 행동을 보였을 때.
-지속적인 규율 위반: 반복적으로 규율을 어기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부대에 경고를 줄 때.
시행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대상 부대 선정: 지휘관은 군사법정을 통해 규율을 위반한 특정 부대 전체를 징벌 대상으로 지정한다.
일반적으로 코호르트(Cohors, 약 480명 규모의 보병 부대)나 백인대(Centuria)와 같은 부대 단위가 처벌 대상이 되었다.
2. 병사 선출: 해당 부대의 모든 병사를 한 줄로 세운 후, 10명씩 조를 세워 무작위로 10번째 병사를 지목한다.
보통 헬멧이나 항아리에다 이름 집어놓고 제비뽑기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뽑힐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무작위성이다.
3. 처형 방식: 제비뽑기로 뽑힌 1명의 희생자를 나머지 9명의 동료 병사들이 옷을 벗기고 몽둥이, 돌, 채찍 등으로 때려죽인다.
이 과정은 푸스투아리움(fustuarium)이라고 불린다. 친한 전우라 할지라도 주저해서 살살 때리는것은 결국 전우의 고통을 늘리는 일이 되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서 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살아남은 병사들에게 죄책감과 공포심을 동시에 심어주어,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했다.
4. 부수적인 처벌: 데키마티오를 당한 부대는 그 이후에도 보통 안전한 군영 밖에서 야영하게 하고, 밀 대신 보리를 배급하는 등의 징벌을 받았다.
이 기한은 정해지지 않고 사령관의 판단에 따랐으며, 군역에서 해제될 때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는 부대원으로서의 명예를 박탈하고 모욕감을 주어, 규율 위반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하였다.
이 형벌은 공화정 시대부터 제정 시대에 걸쳐 매우 드물게 시행되었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로마 군인들에게는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었다.
기록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제3차 삼니움 전쟁 중의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Manius Curius Dentatus) 장군, 제3차 노예 전쟁 당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하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장군 등이 데키마티오를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미 당대 로마에서부터 너무 야만적이고 잔혹한 처벌이라 하여 비판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집행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고, 말만 10분의 1형을 선고하고 따로 주동자들만 가려내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형을 내리거나 그냥 겁만 주고 유예하거나 하는 식으로 실집행은 안하는 경우가 많았다.
로마가 암만 그래도 당시 기준으로는 문명화된 국가라 시간 지나서는 가급적 겁만 주고 실행은 안 했지
우리나라 팽형같은거였군
그리고 서브컬쳐에서는 쌈빡하게 2배수로 불려서 1/5형같은걸 내곤 한다.
저런 형벌은 숫자 더 죽인다고 딱히 더 잔혹한 처벌이거나 그런것도 아님
10분의 1형의 중요한 점은 더 죽이는게 아니라 전우의 손으로 다른 전우를 때려죽이게 시켜서
죄책감을 심고 본보기를 만든다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