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바나나 들어간 바나나맛 우유 만드는 이야기

아마 지금도 모니터 앞에서 빨고 있거나 아침에 한 잔 먹고 출근한 유게이들이 있을 법한 빙그레의 베스트셀러 음료 바나나맛 우유

유게이들이 국민학교 다녔을 1974년부터 출시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국민들의 당분과 칼슘을 책임져준 우유로

그 특유의 오묘한 맛 때문에 지금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팬층이 많은 음료다.

당연하지만 처음 이거 나올 때 까지만 해도 바나나 같은 건 1도 안 들어갔다. 진짜 바나나도 구경하기 힘든 시대였는데 그걸 우유에 어떻게 넣어

애초에 개발목적 자체가 국민들에게 진짜 바나나 못 먹일 거 같으면 바나나 맛이라도 보여주자는 의도로 만든 거라서

실제로는 바나나맛 합성착향료만 들어갔지 바나나는 갈아넣거나 바나나 과즙을 넣었다던가 하는 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름이 바나나'맛' 우유인 거

물론 그래도 맛있다는 건 다르지 않아서 1991년 바나나 수입제한이 풀린 이후에도 계속 불티나게 팔리며 빙그레의 캐시카우가 되었지만

2009년 이 바나나'맛' 우유에게도 위기가 찾아오니

식약청 : 아아 전국에 계신 음료 제조업체 여러분들께 안내 말씀 드리겠읍니다

제과업체 : 뭡니까 또. 설마 이상한 규제 만드는 건 아니죠?

다름이 아니라 최근 유럽에서 개정된 유럽 식품안전규정 및 상표명 법칙을 따라서 저희도 바꾸기로 했읍니다. 따라서....

(ㅅㅂ 이거 불안한데)

앞으로 모든 음료 제품에 대해서 총 함유량의 1%의 과즙 및 과일 추출물을 첨가하지 않을 경우 제품명에 OO맛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읍니다.

따라서 합성착향료만 넣은 과일맛 제품은 전부 OO향으로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이상

?????

그렇다. 그 동안 원가절감이니 한국인의 감성이니 하면서 과일 없는 과일 음료만 만들던 한국 식품회사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나온 것이었다.

당연히 국민 우유 소리 듣던 바나나맛 우유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30년 넘게 바나나 없는 바나나맛 우유를 만들어왔으니 이대로 가다간 바나나향 우유로 이름을 바꿔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

하지만 30년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우유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닥 좋은 현상도 아니었기에, 졸지에 바나나맛 우유에서 바나나향 우유로 다운그레이드되는 걸 막아야 하는 빙그레는 비상이 걸렸는데....

빙그레 : 뭐 말은 그렇게 해도 딱히 어려운 문제는 아니지 않냐?

예전처럼 바나나 구하기 어려운 시대도 아니고 그냥 바나나 과즙 넣고 그대로 가면 되는 거잖아

연구개발부 : 어... 음... 그게 말이죠... 이게 좀 문제가 생겼는데...

뭔데? 단가가 비싸졌냐? 수지타산이 안 맞아? 아님 유통기한 문제?

이게 바나나를 넣으니까 옛날의 그 맛이 안 나는데요?

????

그렇다. 바나나맛 우유가 정작 진짜 바나나를 넣으니까 기존의 바나나맛이 안 난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터진 것이었따.

더 어처구니 없는 건 바나나맛이 약해서 그런가 싶어서 바나나 과즙을 더 넣으니까 오히려 더 옛날의 그 맛이 안 나기 시작했다는 것

이 말도 안 되는 해괴한 사태에 빙그레 운영진이고 연구개발진이고 전부 머리를 싸잡았지만 그렇다고 빙그레의 밥줄을 버릴 수는 없는 상황

다행히도 식약청이 우유는 농림식품부 관할 품목이라고 1년의 유예 기간을 주었고

빙그레는 그 1년 사이에 공돌이들을 미친듯이 갈아서 결국 바나나 과즙을 넣으면서도 옛날 맛 그대로인 바나나맛 우유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문제의 바나나맛의 원인은 과즙을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1%만 넣으니 예전의 그 맛이 났다고 한다. 들려오는 썰로는 이거 찾는다고 시제품만 100개 넘게 만들었다고 함.

그래서 현재 나오는 바나나맛 우유의 포장지를 보면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바나나농축과즙(바나나:인도산)'이라고 적혀있다는 이야기

ps. 참고로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썰이 아니라 진짜로 빙그레가 사실이라고 밝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