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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MB의 성과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해인 2000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현대건설은 이라크 공사대금 미수금, 국내외 공사대금 미수금, 유가증권 평가손 등으로 이미 그로기 상태였다.
그해 정몽구·정몽헌 두 형제의 경영권 다툼은 대외 신인도 하락과 외국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채권 회수조치가 잇따르는 가운데 현대건설은 자금난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해 내내 월말만 되면 ‘현대건설 부도설'이 나돌았고 10월 1차 부도가 터졌다. 정부와 채권단은 2001년 5월 18일 감자에 이은 출자전환을 단행함으로써 현대건설은 채권단 관리아래 들어갔다. 2001년 6월 워크아웃에 들어갈 당시 현대건설은 적자 2조9000억원, 부채 4조4000억원이란 완벽한 부실 그 자체였다.
이명박 이라크 강박, 현대건설 악화 원인현대건설 여동진 해외사업본부장은 지난해 2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건을 계기로 아무리 규모가 큰 공사라고 하더라도 공사비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공사를 수주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건설이 이라크에 진출한 것은 이명박 전 시장이 현대건설 사장에 취임한 직후인 1978년부터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회사의 문제만 생기면 유독 이 전 시장을 찾았다는 유별난 총애는 불과 38세 나이의 그를 우리나라 최대 건설기업의 수장으로 발탁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현대건설 위기는 그의 현대건설 사장 취임부터 1992년 회장으로 자리를 뜨기까지 이라크 현대사와 함께 맞물리고 있다는 게 관련업계 시각이다. 시계를 돌려보자. 당시 이라크는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지속된 이란과 전쟁을 벌였으며 후세인 전 대통령의 잔혹 행위들이 알려지며 이 나라는 전세계로부터 고립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초토화 상태에 빠진 이 나라 경제는 대외지불능력 불가 상태에 빠져들었고 이로 인해 대부분 외국 기업들은 이 나라 시장을 떠났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이 전시장은 현대건설의 이라크 시장 사수를 강요했으며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 특수를 이어가기 위해 이라크를 선택했다는 얘기다.
현대건설은 이라크 시장에서 15년간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미수금은 이라크에 진출했던 한국기업 미수금 총액의 90%였으며 이라크 진출 전세계 민간기업 채권액의 4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대건설이 이라크에서 받아야 할 공사대금은 6억4000만달러로 이자까지 포함하면 16억5492만달러다. 현대건설은 1990년 초반부터 대금 회수 활동에 들어갔으며 서서히 일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한 임원은 “재임기간 중 수주한 공사에 대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고 악성 장기 미수로 남긴 채 회사를 떠난다면 최고경영자로서 결격사유”라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은 한 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을 공략하지 못했다.
현대건설이 사우디 시장 손 뗀 이유결정적 사건은 당시 현지에 있던 직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 전 시장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던 1979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의 데모가 발생했다. 당시 현대 건설은 해외 근로자에 대한 저임금 등 열악한 근로 조건을 제공했다고 한다. 참다못한 근로자들이 중장비를 몰고 와서 사무실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
현대건설 본사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폭동이라며 진압을 요청했다. 이 나라는 근로자들의 단체 행동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현대건설의 요청을 받은 사우디 정부는 방위군을 즉각 투입해 근로자들을 진압했다.
주모자들은 우리나라로 강제 송환 당했고 이들 중 일부는 국내에 들어와서 군사 정권아래 벌어진 사상 검증까지 혹독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모든 피해를 보상하고 사우디 공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으며 이러한 상태는 최근에야 풀렸다.
이 전 시장은 걸프전 당시 총알이 빗발치는 이라크에서도 현대건설 임직원들이 현장을 지키라고 강요했다.
직원들 전장에서도 끝까지 사수(?)걸프전 당시 이라크에 있던 외국인들은 모두 철수했지만 현대건설 직원들은 본사로부터 철수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공포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당시 이라크 현장에 있던 현대건설의 한 직원은 블로그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던 1991년 1월 14일까지 이라크의 북부 키르쿠크에서 나오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을 공포 속에서 지켜봤다”며 “시리아와 이란을 거쳐 간신히 귀국했다”고 회고했다.

댓글
  • 雅雲 2017/12/27 07:53

    이런 씨바를 놈을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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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echner 2017/12/27 08:07

    현대건설 1/10 감자탕 드셔 보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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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가이_n1 2017/12/27 08:09

    씹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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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오루나[新月] 2017/12/27 08:10

    결국 인성이 쓰래기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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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odori 2017/12/27 08:23

    연말이라 실적 압박이 많나보네. 곧 다스 주인 밝혀져 얼른 콩밥 처 먹어야지. 대가리 용량이 얼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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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도우메이커♥ 2017/12/27 08:43

    2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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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elMlike 2017/12/27 09:08

    조직을 망가뜨리면서 지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인간(이 아니고 쥐새끼구나)
    현대건설 말아먹은 거로는 성이 안차 나라를 해먹으려고 작정한 인간(이 아니고 쥐새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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