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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미국 콜럼바인 총기사건에 관한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제 닉네임은 이 사건의 가해자 딜런 클리볼드와 관련이 없습니다ㅠ)


 




저널리스트 데이브 컬런의 [콜럼바인]과 

가해자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입니다.



[콜럼바인]은 2009년 작이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2016년 작인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건 [나는..]은 작년, [콜럼바인]은 올 여름입니다.



한때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검색도 해보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했던 적이 있어서

[나는..]이 나왔을 때 읽어보고 싶었지만 저자가 가해자의 엄마 입장이라는 것이 뭔가 선뜻 

내키지가 않았는데 [콜럼바인]이 바로 뒤이어 나와 준 덕분에 

콜럼바인 먼저 읽고 나는..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콜럼바인]은 무척 잘 쓴 비평서입니다. 

사건 당일부터 시작해서 전개과정, 피해자들의 사연, 당국의 대처 과정, 유가족들의 소송, 

미국사회에 끼친 영향 등이 다큐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위의 얘기들과 가해자들의 얘기가 한 챕터씩 교차로 진행되는데 

본격적인 분석이 나오는 후반부는 몰입도가 상당합니다.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둘은 어떤 성향이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등의 분석이 나옵니다.

에릭과 딜런의 일기장과 작은 메모 한 장까지 샅샅이 경찰이 압수해서 증거품으로 제출되었는데 

나중에 이를 분석한 미국의 대부분의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자들은 

에릭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합니다. 

딜런은 자살욕구가 큰 우울증 환자였는데 이 둘이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가 났다고요.



한 심리학자의 분석이 인상 깊습니다.

“에릭이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딜런은 초반에는 범죄 실행에 갈등이 있었는지 친한 친구에게 에릭의 계획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하지만 친구는 농담으로 치부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20년이 지난 사건인데도 이 장면은 아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다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저자가 에세이스트로서의 소질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수작 에세이입니다. 

초반에는 아니 이런 사건에 이런 문학적 표현은 좀 아니지 않나 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몰입하면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욕먹겠구나 싶은 구절들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태도에 호의적으로 읽었습니다.


엄마 수 클리볼드가 사건을 겪는 과정이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데 

엄마의 감정이 처음에는 ‘우리 착한 아들이 그럴 리 없어’로 시작하기 때문에 

앞에 몇 장 읽고 껄끄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믿을 수 없다가 차츰 아들이 살인마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나옵니다. 

책을 읽으면 출간의 목적이 자기변명이 아님은 알 수 있어요.

많은 희생자가 있었기 때문에 부모가 좀 세심했으면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들기도 했지만 뭐 저도 청소년 시절 지내봤는데 불가능한 문제죠.



수 클리볼드가 아들이 죽었다는 슬픔과 아들이 살인을 했다는 믿을 수 없는 비현실감 속에 

넋 나간 시간을 지내다가 경찰의 연락을 받고 가서 총격 당시 cctv와 

에릭의 집에서 압수한 테이프(지하실 테이프라고 불리는 둘이 찍은 동영상들)를 

보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엄청난 충격으로 몸을 못 가눌 지경이 되지만 이때를 계기로 

아들이 학살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책에서는 “내 삶이 진정으로 끝난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들이 사건 당일 볼링 수업 때문에 일찍 나가야 한다고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컴컴한 거실에서 현관문을 탕 닫으며 

“안녕” 한 마디하고 나간 게 마지막이었답니다. 

나중에 딜런의 아빠는 그때 우리를 먼저 쏘고 가지 왜 그냥 갔을까 원망하며 웁니다.



저자가 사건 전에 장애우를 돌보는 사회복지사였고, 현재는 우울증 예방과 

자살방지 관련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쓴 의도도 그렇고 한 엄마의 수기로만 읽기에는 가치가 높습니다. 

내 아들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미치도록 알고 싶었기 때문에 

이후 쏟아진 사건에 대해 분석한 책들을 모조리 읽고 

우울증 관련 책들을 섭렵하며 20년을 매달리다 내놓은 책이니 어쩌면 당연하겠죠.




암튼, 두 책 모두 훌륭했고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봐도 후회는 안할 책들입니다.

저의 별점은 [콜럼바인]은 별 넷반, [나는 가해자의..]는 별 다섯입니다.


제천 화재 사건 생각하다가 이 책이 생각나서 후기 한 번 써봤습니다.



댓글
  • 박정아 2017/12/23 03:43

    엄마가 내놓은 결론은 뭔가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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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의탄생 2017/12/23 03:45

    잘봤습니다. 글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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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런 2017/12/23 03:59

    엄마가 내놓을 수 있는 결론은 없죠. 죽은 아들이 우울증이 심각했던 걸 몰랐던 데 대한 자책과 그에 따라 발생한 희생자들과 그 가족에 대한
    미안함 뿐.. 어떤 말로도 죄값을 다할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얘기하고 있긴 해요. 그렇다고 희생자 가족의 상처가 위로가 될 리야 없겠지만요.
    희생자 가족들이나 미국 국민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고, 부모가 뭔 죄겠냐 하는 반응도 있고 그랬나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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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리퍼즈 2017/12/23 04:01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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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N.MN 2017/12/23 04:15

    오 혹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알라딘 100자평에
    '콜럼바인'이랑 같이 읽으라고 쓰신 분인가요?
    오늘 그 댓글을 보고 '콜럼바인'을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내년에 두 책 모두 꼭 읽어보려구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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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런 2017/12/23 04:28

    JN.MN// ㅎㅎ 저는 아니에요..알라딘 서재를 하고 있긴 한데 아직 리뷰를 쓰진 않았습니다.
    알라딘에 리뷰 써야지 하고 있다가 화재 사건때문에 충동적으로 엠팍에 쓰게 되었네요.
    저는 두 책 모두 아주 만족하게 읽었습니다. 즐독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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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샤오롱 2017/12/23 05:05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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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두명가 2017/12/23 05:47

    글을 잘 쓰시네요. 본문을 읽고나니 해당 사건에 관심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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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atsmore 2017/12/23 07:43

    오 리뷰 좋아요.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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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투디투 2017/12/23 11:12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 린 램지의 '케빈에 대하여',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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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런 2017/12/23 11:31

    베니토// 닉네임관련 썰을 좀 풀면 이 사건과 상관없이 시인 딜런 토마스와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딜런 딜런, 바이런 바이런 ㄹ 발음의 리듬이 좋아서 블로그나 이런 데 딜런과 바이런 닉네임을 가끔 쓰고 그러는데 책에서 엄마가 젊을 때부터 두 시인을 좋아했어서 형에게는 바이런, 동생에게는 딜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걸 보고 진짜 깜짝 놀랐고 잠깐 가슴이 쿵 하기도 했었습니다.ㅎㅎ 뭐 우연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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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니토 2017/12/23 11:37

    앗 첫 줄 추가하신거 보고 댓글 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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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런 2017/12/23 11:38

    알투디투// 다 좋은 영화들이죠. 영화는 엘리펀트가 가장 좋았습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책이 특히 좋았는데 인터넷리뷰들 보면 평이 좋지 않은데 저는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이 저와 궁합이 잘 맞았고 지금도 좋아하는 책으로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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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런 2017/12/23 11:40

    댓글 추천 주신 분들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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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킨맨 2017/12/23 11:45

    무슨 사건인지 몰라서 한 번 찾아보고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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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n사이다 2017/12/23 12:24

    딜런님의 다른 책 리뷰도 궁금해지네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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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념세자 2017/12/23 12:30

    부모가 어떻게 하던 교육을 어떻게 하던 한 사회에서 극단적 사이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구입이 어려웠다면 희생자는 줄일 수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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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골린 2017/12/23 12:33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즐겨듣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소개한 적이 있어서 무척 관심을 갖고 언젠가는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이런 책을 읽으면 우리의 감정에 기대어서 선악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허술한 방식인지를 종종 느끼게 합니다. 우리 삶이란게 수많은 다양한 가치와 모순성 속에 혼재한 채로 그 어느 지점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좀 더 영리하다면, 그리고 좀 덜 게으르다면 영화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말했던 것처럼 비디오 게임따위에 책임을 떠넘기는 잘못은 저지르지 말아야 할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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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차투 2017/12/23 12:44

    갑자기 이누야시키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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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표지성빠 2017/12/23 13:03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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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가컸으면 2017/12/23 14:37

    기억하고 있다가 책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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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머 2017/12/23 15:03

    평소라면 그냥 이런게 있구나 했을텐데 며칠전에
    컬럼바인사건을 소재로 만든 엘리펀트란 영화를 봐서 엄청 구미가 당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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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가고 2017/12/23 15:33

    [리플수정]오래전에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전 절대악인 아들에 대한 엄마의 슬픈 모정을 그린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영화 초반에 그려진
    엄마가 결혼전 자유롭게 살다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미숙했던 행동들을 보고
    엄마의 잘못된 양육때문에 악인이 된 아들로 해석하더군요.
    준비되지 않은 모성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는 영화라는 의견도 있던데..
    부모의 성격이나 양육환경과 상관없이(영향받지않고)
    본질적인 절대악으로 태어나는 친구도 있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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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쉬라이먼 2017/12/23 18:09

    [리플수정]영화 '볼링포콜럼바인'도 볼만합니다.
    거기서 무어는 왜 그 학생들은 총기난사전에 '볼링'을 쳤는가? 에 주목합니다.
    그러니 제목에 볼링이 들어가죠.
    자세한 이유와 내용은 스포니 영화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국 총기에 대한 문제, 그리고 정치란 무엇인지에 대한 굉장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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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축왕 2017/12/23 18:17

    태클을 하나 걸자면, '장애우'가 아니라 '장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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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끼얏호만세 2017/12/23 19:27

    정성된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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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arCAT 2017/12/23 20:48

    글쓰기에 소질이 대단하시네요. 절로 책 찾아 보고 싶게 만드는 ㅎㅎㅎ... 양서 추천 감사합니다. 잘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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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윅 2017/12/23 21:23

    에릭은 어떤 환경에서 컸길래 싸이코패스가 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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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드리햇밥 2017/12/23 22:05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책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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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떼뿌이 2017/12/23 22:57

    나는 가해자의 엄마 입니다
    저도 추천10000 합니다!
    아들이 에릭의 전화를 피했던걸 어렴풋이 느꼈던 엄마의 기억에서...
    아이가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어쩌면 신호나 도움의 요청일 수 있었다는 걸 엄마가 늦게 깨달았다고 자책하는 부분을 다시 읽고 또 읽고 했었네요. 안타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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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잉사자 2017/12/23 23:48

    이런 좋은 리뷰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꼭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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