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초기에 고안되었던 `국기에대한경례` 모습
`경례` 뜻이 `인사` 인걸 감안하면 아주 당연한 모습이라고 당시 높은분들은 생각했던거 같은데
하필 이게 신사참배하던 시절의 모습과 비슷한게 문제.
이걸 신사참배 거부했던 일부 목사들이
"저 미친 짓을 또 국민들에게 강요하냐?"
라고 하며 국기에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막으려함
`국기에대한경례` 자체는 막아내지 못했지만
덕분에 경례하는 자세를 바꿈
그건 신사참배하던 다른 목사들
유감스럽게도 신사참배 반대한 목사는 소수고 대부분의 목사가 신사참배함
그럼뭐해 이미 신사참배에 지들 종탑녹여서 일본군한테 넘겼는데
가끔 반대에 있는 애가 있긴있어
심장이 두 개인 타임로드인가보죠 뭐
그리고 원래 심장은 거의 가운데있어
오
잘 바꿨다
저 때는 제대로 돌아갈때지...
그럼뭐해 이미 신사참배에 지들 종탑녹여서 일본군한테 넘겼는데
그건 신사참배하던 다른 목사들
유감스럽게도 신사참배 반대한 목사는 소수고 대부분의 목사가 신사참배함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교단의 당시 한상동 목사와 출옥성도 20인을 제외하고 대다수는 신사 앞에 무릎을 꿇는다.
대다수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외에 박형룡 박사처럼 아예 만주로 피난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
그렇다고 해서 당시 신사참배에 거부했던 사람이 소수라는 의미는 아님.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사를 배운 사람으로서 한국 교회의 대다수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일반화 ㄴㄴ
유게 글리젠이 루리웹 70%라고 루리웹이 유게라 할 순 없잖아
저짓을 장로교가 주도했는데 거기서 반대하고 나온게 고신파였던가 였었지
그리고 그렇게 친일화 됬다가 해방이후 방공을 부르짖음
우리교단은 고신임 어게이 ㅎ
지금의 고신 교단을 신사참배를 반대한 고신교단의 후신으로 볼수만은 없는것이... 해방 후 이합집산을 거치며 이리저리 합쳤다 나눠서 나온 것이 지금의 고신이라..
4.19 이후 `신앙회복 운동` 으로 친일목사 문제를 끄집어낸 적이 있는데
읍읍읍 때문에 유야무야 되고 지금의 상태로....
나는 고신출신이고, 경기인천지역 한 대학에서 SFC활동을 하고
거기서 위원장까지 맡았었고, 대학연합 기독교동아리 연합회 총무로 활동했었던 사람이었지만
지금 고신 꼬라지 보면 한상동 목사님 천국에서 오열할거다.
그놈의 자기들은 신사참배 거부한 출옥성도의 후예라는 자부심만 가득하지
정작 지금와서는 국가를 신격화하고 다카키 마사오와 그 딸년 찬양하는 놈들로 가득하고
교회에 하나님 위에 국가가 올라가있는 것을 보면 오열을 안할 수가 없을거다.
+@로 고신 신학은 칼바르트 이후로 아무것도,
아니 칼바르트 가르치는 것도 최근이지 예전엔 칼바르트 언급하는 것만으로 바로 자유주의자로 낙인찍혔더라...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이게 무슨 뜻인지 목사님한테 물어보고, 현재 고신이 그러고 있는지 한번 물어봐라.
아마 아무 말 못할거다.
이게 낫네
중간에 있는애는 심장이 오른쪽에있어???
가끔 반대에 있는 애가 있긴있어
그리고 원래 심장은 거의 가운데있어
심장이 두 개인 타임로드인가보죠 뭐
심장은 실제로 거의 중앙에있지 왼편에 있지않음.
저거 심장 위치 였던건가.. 답답하면 바운스 하시던가
기성용이네 납득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가슴 가운데에 밀착시켰을때가 심장 위치랑 거의 일치
신폐소생술 흉부압박할때 왜 가운데다 하게
나도 심장위치는 사실 아는데
위치 바뀌었다고 돌려말한거였음 ㅠㅠ
내 댓글은 실패해 부러써 ㅠㅠㅠㅠㅠ
투탕카멘은 타임로드!
한때 김해여고에서도 고신측 여학생들에 의해서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반대가 나온 적도 있었지.
그래서 그때 6명의 여학생들이 제적 처분당했던 사건이 있었지
강제로 시행되는 국민의례와 개인의 신앙적인 신념
이 둘 중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무조건적으로 중요시되던 당시 박통 시대의 서슬 퍼런 유신정권이
어떻게 개인의 신앙적인 신념을 철저하게, 그것도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들을 그렇게나
압박하고 마음졸이게 만들고, 결국 제적되게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고,
아마 현대에 저런 일이 다시 벌어지면 아마 판사는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겠지...
씁쓸한 역사네
보자마자 일본스럽네... 생각햇는데 ㅋ 저건 잘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