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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기다림 17년.

1996년 7월 18일 아침 6시 30분이었습니다.
평소 습관대로 아침운동을 나서시던 어머니가 잠자던 가족들을 깨웠습니다.
늦잠을 자다 얼떨결에 깨워진 저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답을하며 어머니가 계셨던 아파트 복도로 나가봤지요.
"ㅇㅇ아, 저기 저거 사람 아니니?"
저희 아파트는 서울시 은평구의 가장 구석의 능선을 따라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가 갈리는 거북산의 산자락을 끊고 닦아 지은 아파트여서 복도 쪽에서도, 발코니 쪽에서도 산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복도쪽에서 보이는 산과 아파트의 경계는 2미터에 다다르는 높은 콘크리트 담장이 있고 담장 위로도 꽤나 높은 철조망이 쳐져 있는 형태였습니다.
어머니가 가르킨쪽은 콘크리트 담장위의 철조망의 안쪽이었습니다.
그쪽은 사다리없이 담장을 타고 올라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거북산의 등산로로 진입한 뒤 일부러 길이 없는 수풀속을 헤치고 들어가 철조망을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위치였지요.
그곳을 자세히보니 분명히 사람인 듯한 형체가 엎드린 채 미동도 없이 있었습니다.
저는 우선 인터폰을 이용해 경비아저씨께 연락을 했습니다.
저희집이 있는 층까지 올라오신 경비아저씨는 저희 가족과 함께 그쪽을 한참 확인하시더니 아무래도 진짜 사람인 것 같으니 당장 경찰에 연락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머니가 발견하신 그 형체는 실제 사람이 맞았고 저희 아파트의 옆동에서 투신자살을 하신 한 중년부인의 유체였습니다.
이십년이 더 지난 일이라서 이 지점 이후의 그날의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곧 학교를 가느라 그 뒤에 경찰이 도착하고 난 뒤의 일을 모르는 것 같네요.
자살자가 나왔다는건 분명 안타까운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그렇게 떠나는 분들의 경우가 희소한 일도 아니기에 "대단찮은 일일 뿐이다." 라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날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건 사후 경찰조사에서 밝혀진 자살자분의 안타까운 사연때문이었습니다.
부인의 바깥분되시는 분은 수도여고에서 선생님으로 계셨던 '고상문씨' 였다고합니다.
고상문씨는 결혼 후 당시 임신중이었던 부인분을 남겨두고 네덜란드로 해외연수를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외연수중 여행차 잠시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방문하십니다.
안타까운 사연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1979년 4월 16일, 고상문씨는 오슬로의 시내에서 여권이 들어있던 여행가방을 분실하게되었고 그 사실을 알게된 후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여권분실신고와 임시신분증 발급을 위해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한국이 남북으로 나뉘어진 분단국가라는걸 택시기사가 몰랐던 것이었을까요?
택시가 멈춰 선 곳은 대한민국 대사관이 아닌
북한대사관이었고 고상문씨는 그자리에서 북한대사관 직원과 경비들에게 붙잡혔다고합니다.
이 부분의 디테일이 부족해서 몇가지 의문점이 남긴 하지만 (택시가 대사관 영내로 들어갔던 것일까요?) 아무튼 여권분실로 정신이 없던 고상문씨는 어리둥절한 채 그대로 납북이 되어버렸답니다.
이후 6월 30일 북한은 고상문씨가 자진 귀순을 했다는 인터뷰방송을 송출합니다.
하지만 임신한 부인이 한국에 있고 그럴 정황이 전혀 없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이 사건은 귀순이 아닌 납북이었다는 점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 후 고상문씨는 탈북을 시도하다 붙잡혀 간첩혐의로 정치범수용소에 갖혀있는 모습을 탈북 영화감독인 신상옥(1926 - 2006)씨에게 목격됩니다.
그 뒤 국제사면위원회의 노력으로 1994년 7월 정치범수용소에서 석방되었음이 확인되었지만 아직도 북한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상문씨의 부인인 조복희씨 (향년44세)는 결혼 10개월만에 남편과 생이별하고 홀몸으로 임신했던 딸을 낳아 기르며 살아오셨지만 투신자살 이전까지도 오랬동안 우울증, 신장병, 갑상선이상에 시달려오셨음이 가족들과
주변지인들의 증언으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끝내 저희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심으로 고통뿐이던 삶을 스스로 마감하셨습니다.
이런 사연들이 뒤늦게 알려지시면서 저희 어머니는 최초발견자로 신문사와 인터뷰도 하시고 다음날 신문에 "최초목격자 안모씨"로 사진도 실리셨습니다.
(이걸 로토사진이라고 부르던 거였던가 가물거리는데 얼굴사진만 작은 원형으로 오르는 형태였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계실거라고 추측할 뿐인 고상문씨와 스스로 삶을 마감하신 부인 조복희씨, 그리고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못한 채 어머니까지 잃고 살아가고계실 두분의 따님이 모두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도, 북한에서도, 그리고 하늘나라에서도요...
댓글
  • 튀김검사 2017/12/08 06:11

    북한 x새끼들이다.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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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고양이 2017/12/08 06:47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군요...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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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magaki8102 2017/12/08 07:12

    사소한 계기로 운명이 이렇게까지 잔인해지는지 ...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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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참 2017/12/08 08:01

    북한이라는 것은 나라도 아니야
    멀쩡한 사람을 그냥 납치한것 아니야
    피해만 없다면 트럼프가 걍 밀어 버리면 좋을텐데
    피해가 크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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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대땜에가입 2017/12/08 08:03

    택시기가사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세 사람의 생을 박살을 내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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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매거진 2017/12/08 08:14

    가슴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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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안한사람 2017/12/08 08:29

    북괴 빨갱이새끼들...상식이 없는 버러지같은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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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네럴 2017/12/08 08:34

    ////
    그러다 8월22일 노르웨이 경찰이 오슬로 한 호텔에서 고씨의 숙박흔적을 찾아내고 숙박계에 적힌 출생지와 국적이 평양과 북한으로 서명돼 있다는 점이 전해지면서 초점은 친필이냐의 여부에 맞춰진다. 이에 앞서 주노르웨이 대사관은 노르웨이 측이 북한측 공관에 확인결과 고씨가 4월17일 당시 직접 여권분실확인증명서를 소지하고 입북을 희망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외무부에 전달한다.
    노르웨이 경찰이 고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심증을 굳힌 가운데, 당시 우리나라와 노르웨이를 중재하던 네덜란드 대사관측은 10월6일, 노르웨이측이 고씨가 강제납북됐다는 한국의 입장과 다르며 그가 가까운 시일 내에 귀국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해온다.
    그해 11월20일, 당시 박종진 외무부 장관은 국회 질의답변에서 '고상문이 스스로 월북했을지 모른다'고 발언한다. 여기에 12월1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고씨의 숙박계 서명을 필적감정한 결과 친필이라는 판정을 내리면서 일단락되게 된다.
    실제로, 외교부는 고씨가 비중있는 인물도 아니고 교사인데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던 만큼 자진 월북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
    라고 하는군요. 이래서 송환이 어려웠구나... 저런 것까지 치밀하게 조작해서 납북시키네요. 무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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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깨두무구 2017/12/08 09:12

    한 마디로 비극.. 가슴이 먹먹해져 오네요. 남은 두 딸들의 행방이 궁금하고 혹시 어렵게 지낸다면 후원같은 걸 해도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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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버 2017/12/08 09:24

    79년이면...
    북한도 북한이지만...
    과연 외교부나 국과연을 믿을 수 있었던 시기일까... 싶습니다...
    적극적으로 구조해야 할 놈들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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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yeah 2017/12/08 10:13

    어제 오늘 뉴스 기사나
    커뮤니티 게시글에
    유독
    북한관련 글들이 많이 눈에 띄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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