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은 17세기의 동아시아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주인공 함이의 분투를 다루는 역사 웹툰이다. 해당 웹툰의 이야기는 명, 후금, 조선을 무대로 펼쳐지며, 그렇기에 그 국가의 사람들이 다수 등장하여 마치 그물처럼 얽히고 설켜 상호작용을 하면서 극을 이끌어 나간다.
해당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의 대사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연히 한글, 한국어로 처리되지만, 극외의 관점이 아니라 극내의 관점으로 보자면 등장인물들간 대사에는 다양한 언어가 구사된다. 명나라 사람들끼리는 한어(漢語)로, 후금의 사람들끼리는 한인들은 한어, 그리고 다수의 팔기 인물들은 여진어 내지는 몽골어로, 일본인들끼리는 일본어로, 항왜들끼리는 일본어 내지는 조선어로, 조선의 사람들끼리는 조선어로 대화를 나눌 것이며, 타국의 사람들끼리는 상황에 따라 상대측의 이해를 받고 저마다의 언어를 쓰거나 통역을 거치는 표현이 있다. 이는 칼부림 1부때서부터 이어져 왔다.
1부 38화. 통역을 통해 후금측 장수와 대화하는 한명련
작내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대화는 해당 대화에서 어떤 언어가 쓰였을지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화도 있다. 그럴 경우, 해당 대화에 쓰이는 몇 가지 단어 단서를 통해서 그 대화에 쓰이는 언어를 유추할 수 있다. 칼부림 4부 35화에 표현된 누르하치와 김경서간 대화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https://bbs.ruliweb.com/etcs/board/300780/read/53895995)필자는 김경서의 누르하치에 대한 인명호칭을 통해서 당시 대화에 여진어가 쓰였다고 유추했다.
여기서 또 다른 예시를 들어 보고자 하는데, 칼부림 5부 105화 중 조선에 팔기의 간첩이자 함이에 대한 암살조로서 잠입한 등장인물 타스하와 바야라간의 대화이다.
5부 105화
작중에서 후금의 한 홍타이지로부터 조선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함이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은 후금의 간첩조에 소속된 타스하와 바야라, 가칭 A는 오랜 시간 첩보를 수집하고 함이를 추적하면서 사적으로 적지 않게 가까워졌다. 그런 가운데서 두 사람은 밤에 노숙할 곳을 찾아 한 바위 밑에서 야영을 하게 된다. 그 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출신에 대해 터 놓으며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타스하는 자신이 조선 출신임을 밝히며, A는 자신의 출신을 건가퇴(件加退, 건퇴件退)1로 밝히며 출신을 울라(ula, hvlun) 내지는 울라에 내속된 번호 출신으로 드러낸다.
이 대화에서 쓰인 언어는 무엇일까. 둘 모두 후금의 사람이니만큼 여진어로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필자는 조금 다르게 보는데, 이 두 사람이 조선어로 대화를 했을 가능성이 좀 더 크다는 생각이다.
첫째로, 두 사람은 조선에서 조선인으로 위장을 하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입장이다. 최신의 화에서 더 이상 숨길 것도 무엇도 없는 입장에 처하여 거리낌없이 여진어를 털어 놓으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입장이나(5부 119화), 그 이전 이들이 첩정 임무에 집중할 당시 이들은 혹여라도 자신들의 출신을 노출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철저히 조선인으로 위장했다. 조선인의 외양을 하고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나 많은 수의 사람들 사이에 섞일 때 언제나 조선말을 썼다. 위의 장면에 나오는 조선식의 복식과 상투등이 모두 그러한 위장의 일환이었다.
타스하야 본래부터 조선인이었기에 조선어에 능통한 입장이고, 바야라 A는 건퇴에 거주하면서 조선과 접촉할 일이 많았다. 특히 육진의 거점 중 하나인 종성(鍾城)과 건퇴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건퇴는 당시 번호였던 아당개의 거점 지역으로 살펴지며, 종성과 결부되는 관계였다.2 그런 만큼 그런 건퇴 출신의 바야라 A 역시 조선어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런 만큼 조선에 대한 첩정 임무에 투입될 수 있었을 것이다. 번호였다가 울라에 신속하여 부잔타이 휘하가 된 추장 아당개가 조선의 피로인 이춘(李春)3과 대화를 했을 때에도 따로 통역이 있었다고 보여지지 않으므로 바야라 A 역시 이미 임무를 수행하기 이전부터 어지간한 조선어 역량을 갖추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4 그런 만큼 작중의 두 사람은 조선어로 대화를 충분히 능숙하게 나눌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두 사람은 조선이라는 적지의 고군으로서 언제나 자신들의 신분이 들키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했다. 그리고 당시 상황은 본인들의 은거지가 아닌 야외에서 야영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조선어로 대화를 나누어야 했을 것이다. 비록 야간이라고는 하나, 여진어로 대화를 나누었다간 자신들의 대화를 들은 '누군가'에 의해 자신들의 출신과 입장이 누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두 사람이 언급하는 '지명'이다. 바야라 A는 자신이 '건가퇴'출신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건가퇴'라는 것은 여진어 지명을 조선식으로 음차한 것이다. 앞서 서술했듯 두만강 바깥에 존재하는 울라와 조선 중간의 여진 부락인 건가퇴는 건퇴, 건을가퇴 등으로도 이칭되는 지역인데, 모두 조선이 여진식 지명을 음역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해당 지역은 실제로 어디이며 여진인들에게 어떻게 불렸을까.
학술적인 탐구를 거친 결과, 현재서 추정되는 건퇴의 실제 위치는 현재의 길림성 안도현에서 발원하여 연길시를 지나는 포이합동하(부얼하퉁강) 유역 인근으로 살펴진다. 포이합동강은 만주어에서 유래된 지명인데, 만주어로 Burgatu/Burhatu-부르가투/부르하투로 지칭된다. 해당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버드나무와 관련이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5
부르가투라는 명칭과 조선의 건을가퇴라는 지명 지칭은 발음상에서 그 유사성이 크다.6 또한 지리상으로도 부르가투는 조선에서 지칭한 건퇴와 그 위치가 비슷하다. 건퇴 요새 인근에 '물'(水, 하천)이 있었다는 함경감사 서성(徐渻)의 언급에도 부합한다.7 또한 효종 시기 2차 나선정벌의 조선군 지휘관으로 나선 신류(申瀏)의 『북정록』에도 역시 건가토(件加土, 건퇴를 의미)를 강으로 지칭하기도 했다.8 이런 근거로서 건을가퇴/건가퇴/건가토/건퇴 등의 조선식 지명은 부르가투를 지칭한다는 것이 뒷받침된다.
만약 타스하와 바야라 A가 여진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면, 바야라 A는 자신의 출신을 '부르가투' 내지는 '부르하투'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외적 각주로서 해당 지역이 '건퇴'를 의미한다고 서술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작품은 독자들이 생소해 할 용어나 지명에 대해 각주를 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내의 직접적 대사로 자신이 세거했던 지역을 건가퇴라고 칭했다. 이는 타스하와 바야라 A가 조선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필자는 당시 타스하와 바야라 A가 조선어로 대화를 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타스하와 바야라 A가 어떤 언어로 대화를 했는지, 작가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고일권 작가께서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확실히 알 수 없다. 이는 다만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측을 한 결과일 뿐이다. 어쩌면 필자의 모든 추정이 의미없이 그저 단순히 여진어로 대화를 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 명의 독자이자 팬으로서, 작품의 각각의 장면을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 분석하는 것 역시 작품을 즐기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아래는 각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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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기서 말하는 건가퇴란 두만강 너머의 여진 부락이다.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 건퇴는 여러 지역으로 비정된다. 세조 시기 이시애의 난 종미부 이시애(李施愛)가 체포된 지역은 경성 인근의 건가퇴였는데 이 역시 건퇴를 의미한다.(『세조실록』 세조 13년 8월 12일) 또한 북로기략에서는 육진의 경원 관할하 요새인 아산보가 여진인들과 현지인들에게 건을가퇴(件乙加退/건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서술된다. 이들 지역은 선조 시기 울라와 조선 사이 중간지대로서 주로 서술된 건퇴와는 다른 곳이다. 후술하겠으나 건을가퇴/건퇴는 본래 여진어에서 기원한 지명으로서 현지 여진인들이 지역의 특징에 맞추어 지역을 호칭하던 것이 조선에 의해 음역, 기술된 것인 만큼 여러 곳에 이러한 지명이 붙은 것으로 사료된다.
2.장정수, 2022a, 「선조대 조선의 對여진 征討와 그 실상 ―李廷龜의 箚子⋅獻議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 94,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318쪽; 2022b, 「선조대 말 건퇴 전투의 발발 배경・경과와 대(對)여진 관계상의 변화」, 『韓國史硏究』 196, 한국사연구회, 122쪽. 기반이 된 사료는 『선조실록』 선조 37년 8월 8일.
3. 『선조실록』 선조 37년 8월 8일 앞과 동일 기사. 여기서 등장하는 종성 토병 이춘의 경우 『등록류초』에서 언급된 쇄환포로 이난(李難)과 동일인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4.다만 『등록류초』권 14 갑진년 4월의 이난의 공술에 의하면 본인이 듣기에 울라인들의 언어가 성저 호인의 언어와 다르지 않았다는 묘사가 보이므로, 이난이 종성의 토병으로서 번호들과 맞닿아 살았기에 여진어에 능통하여 서로 여진어로 대화를 하였기에 통역이 필요없었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건퇴에 거주하던 이들이 조선과 맞닿아 산 여진인으로서 조선어에 능통했을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5.이강원, 2010, 「 白頭山・豆滿江일대에 표시된 몇 가지 地名의 검토」,『한국지역지리학회지』 vol16 no5, 한국지역지리학회, 486~487쪽 ; 배우성, 2010, 「만주에 관한 지식과 조선후기 사회」,『역사학보』 208, 역사학회, 249~256쪽.
6.이강원은 부르가투 그 자체가 아니라 부르가투 강의 특정 위치를 건을가퇴라고 지칭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청룡동(靑龍洞)에서 성자산산성(城子山山城) 부근까지의 부르가투 강의 별칭이 강의 특징을 근거로 여진/만주어로 '가르가터이 비라(Gargatei bira)였다고 추정했고 그것이 건을가퇴 내지는 건가퇴로 음역되었다고 보았다. 이강원, 2010, 앞의 논문, 487~488쪽.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르게 볼 수도 있는데, 훈차를 사용했을 가능성이다. 이는 추후 다른 글로 서술하고자 한다.
7. 『선조실록』 선조 38년 5월 19일.
8.신류, 『북정록』, 무술년 5월 3일.
추천주면 감사.
잔말 말고 얌전히 박혀
아무튼 정성추;;;
뭔데 씹 추천 왜이렇게 빨리 박혀
그림 진짜 겁나 잘그리네....
달라고해서 줬더니...
뭔데 씹 추천 왜이렇게 빨리 박혀
잔말 말고 얌전히 박혀
박을게
달라고해서 줬더니...
이것이 소문난 역사고봉밥
내가 부계 30개 동원해서 박았음
아무튼 정성추;;;
그림 진짜 겁나 잘그리네....
그림체도 그림체지만 고증에 힘을 뽝 주는 작품이라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음.
뭔진 모르겠지만 작성자가 칼부림에 대한 내용으로 베스트 갔다고 알면 되는거지?
칼부림 진짜 내가 수욜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것부터 챙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