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종교적인 장소에 가면 나의 종교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숙연해진다.
신자가 아니라고해도 사찰이나 교회, 성당에 가게 되면 언행을 삼가하게 된다.
랄리벨라의 암굴교회에서 거행되는 종교의식인 스께를 관람하면서
비록 정교회 신자는 아니지만 종교의식의 경건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리라.
우리 일행은 암굴교회 외벽 위에 자리를 잡았다.
바닥은 울퉁불퉁한 바위여서 앉은 자세가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절벽 쪽의 면은 높고 앉아 있는 곳이 조금 낮은 자리였다.
다리를 펴고 앉았는데 그러다 보니 몸이 뒤로 쳐질 수 밖에 없었다.
불편한 자세로 인해 바지와 티셔츠 사이에 허리의 맨살이 드러났나 보다.
나의 엉덩이 쪽에 누군가의 발이 닿았다.
사방은 깜깜했고 끼어 있는 나는 편하게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자세도 아니었다.
워낙 비좁고 복잡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스스로 다독였다.
그런데 내 몸과 닿은 누군가의 발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 되었고 조금씩 정도가 심해졌다.
티셔츠와 바지 사이에 드러난 허리에 발을 대고 바지를 아래로 내리려는 노골적인 시도가 반복 되었다.
몸을 어렵게 뒤틀어 돌아 보았고 문제의 발을 거슬러 올라가 '그 놈'을 확인했다.
경멸의 눈빛으로 쏘아 보았다.
제자리로 몸을 돌렸지만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다시 몸을 뒤로 돌려 '그 놈'을 째려 보며 한참을 직시했다.
뻔뻔하게도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이 전혀 아니다.
다음 날은, 밤 비행기로 '그 놈'을 포함한 일행은 마다가스카르로 떠나고
한 여자분과 나는 역시 밤 비행기로 인천으로 귀국하는 일정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휴식하는 시간이 있었다.
함께 귀국하는 여자분께 그날 있었던 '그 놈' 이야기를 했다.
"우리 일행 중에 변태 새끼가 한 마리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함께 귀국하는 여자분에게 자세하게 성추행 사건을 설명했다.
그 분은 이야기를 듣고서 기겁을 하셨다.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귀국 후에 지인 변호사와 상담했습니다.
"성추행 현장이 외국이고 증거나 증인도 없고 피해자 진술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처벌 받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넘어가면 '그 놈'은 다른 곳에 가서 또 그런 짓을 할 것이고.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여행사는 여행 전에 단톡방을 개설합니다.
준비물 등 공지사항을 전달하기도 하고 여행 중 서로 찍어 준 사진을 올리는 용도입니다.
마다가스카르 팀도 귀국하고 사진 교환도 마치고 단톡방을 해체하는 끝 무렵에 내가 당한 성추행 사건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을 올리자마자 바로 '남자P'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남자 3명과 여자 1명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남자P의 글에 동의하고 성추행 피해자인 저를 공격하는 글이었죠.
동조하는 남자 3명과 여자 1명은 모두 70대로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었습니다.
남자A : 같은 생각입니다.
남자B : 공감합니다.
남자C : 황당한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공감합니다.
남자A, 남자B, 남자C는 단순 가담자였으나,
이후 남자D와 여자E는 악랄한 정도로 저를 조롱하고 모욕했습니다.
남자D가 쓴 글입니다.
요즈음 "성추행" 한마디로 (사실이든 거짓이든) 남자한사람 나락으로떨어뜨리는건 식은죽먹는세상이되어버렸읍니다.
후에 거짓을 증명한다해도 이미 그사람의 명예와 정신적고통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을테니까요.
초점잘맞추고 뒷배경잘골라서 사진을잘찍는다고 다 작가는 아닙니다.
제가보는 진정한 사진작가는 첫째, 본인이 찍은사진에 책임을져야합니다.
둘째, 사진을통해서 전하고자하는 "진실한 메세지"가 있어야합니다.
의미없이 무조건 카메라들이데고 셔터만 누르다가 어떻게 운좋게 하나건지겟다는 맹목적행위가 돼서는안됩니다.
(중략)
가난한 것도 슬픈데 처량한 몰골을 사진을 찍느냐?
미국이나 유럽선진국에 가서도 그렇게 함부로 거침없이 본인 동의없이 마구 카메라 들이대봤읍니까?
장담하건대 못했을겁니다.
왜냐면 그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사니까요.
나라가 가난하다고 사람까지무시하면 안돼죠.
(하략)
70대 '여자E'가 쓴 글입니다.
즐거운여행에 찬물을....
그런 일 있었고
개인카톡이나
블로그비밀댓글...
사적인 경로로
사과를 받아야한다면
그 당시 당사자와 해결하거나
***님께 알려서 해결하면 될일을
우리팀 모두를 더러운 기분으로 마무리하게 하니
소중한 여행 망친
우리팀에게 먼저 사과하세요.
맨 처음 '정신적 과대망상'이라며 글을 올린 남자P는 계속해서 저를 모욕하는 글을 올렸고
이후 남자A, 남자B, 남자C, 남자D는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여자E 는 계속적으로 저를 모욕하는 글을 올렸지만, 저는 남자P 외에는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P와 여자E는 모욕하는 언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자P와 여자E는 '공개하지 않으면 허구'라며 계속 공격했습니다.

70대 '여자E'가 쓴 글입니다.
공개 안할거면
떠들지도말고
조용히 당사자와 해결해야지
왜,
떠벌려요.
초딩도 수준도 아니고
여행 끝까지 못해서
배 아파 심술부리는 초딩 같자나요....
남자P는 "무슨 심술이냐? 단톡방에서 나가라"


남자P는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답글을 올렸습니다.
양평 경찰서에 남자P를 명예훼손죄로 형사고발했습니다.
단순가담자까지 모두 고발 접수할까 생각했지만,
"나는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스스로 다짐하는 것으로 마감했습니다.
며칠 뒤 형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실명이고 조사할 것도 없지만 오셔서 조서는 작성하셔야 합니다."
조서 작성이 끝나고 형사님께 여쭤봤습니다.
나 : 성추행한 '그 놈'을 형사고발하면 처벌 받게 할 수 있을까요?"
형사 : 처벌 받기 어렵습니다.
범죄 장소가 외국이고 증거도 증인도 없지 않습니까? (변호사와 비슷한 답변)
악질인 경우 무혐의로 판결나면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놈도 있습니다.
나 : 거짓말 탐지기 조사도 있잖아요.
형사 :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을 당하면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세요.
나 : 이런 일 당하면.. 머리 속이 하얘지고 논리적인 대응은 커녕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형사 : 그런 일 당하면 당연히 그렇지요.
며칠 뒤 담당 형사님으로부터 남자P의 주거지로 이첩될 거라는 전화를 받았고
열흘 뒤 쯤 이첩된다는 내용의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2주 쯤 지난 후에 여행사 직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일전에 경찰서에서 협조 공문이 와서 P씨의 신상정보 알려드렸다."
"P씨가 사과를 하고 싶다는데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괜찮겠느냐?"
"전화 통화 하고 싶지 않다.
사과할 기회는 단톡방에서 충분히 드렸고, P씨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사과할 생각이 있다면,
여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경찰 통해서 형식 갖춰서 피해보상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며칠 뒤 다시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P씨가 피해보상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겠으니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해 달라고"
벌금이 얼마인 지도 모르겠고 생각나는대로 합의금은 백만원,
진심이 담긴 자필사과문을 우편으로 보내는 조건을 제시.
그날 바로 백만원이 입금 되었고.
우편 사과문은 며칠 뒤에 받았습니다.
우편으로 받은 사과문은 사과한다기보다는 자기 변명글이었습니다.
여행사 직원께 전화했습니다.
"진심이 담긴 사과문이 조건이었는데 이건 사과문이 아니다.
진심 없는 사과문은 접수할 수 없다."
여행사 직원 : 보상금도 받으셨는데 이 정도에서 넘어가 주시지.
직접 통화해 보시라. 더 이상 중간 역할을 하지 않겠다.
카톡으로 '남자P'에게 아래의 글을 보냈습니다.
어제 사과문을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내용은, 첫줄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한 줄이고,
나머지 90%는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행을 함께 했던 분이 자신을 추행범으로 오해를 했다,
***님(주:여행사 직원)께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절대 나는 그날(주:종교의식이 있던 밤) 참석하지 않았다.
저도 화가 난다.
추행법을 고발해 달라.
저는 진심이 담긴 사과를 원했습니다.
보내온 사과문은 사과라기보다는 'P'씨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성추행을 당한 치욕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한 것에 대한 사과보다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주가 되는 내용은 사과문이 아닙니다.
‘진심이 담긴 사과문’에 대한 저의 요청사항입니다.
(1) 자신의 입장 호소가 아닌, 성추행 피해자를 2차가해하여 괴롭힌 점을 명시해서 사과문을 보내 주십시오.
(2) 사과문에는 “이후 사과문에 반하는 언행을 뒤에서 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길 시에는 정신적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문구를 넣어 주십시오.
(3) 에티오피아 단톡방에 자신의 입장 호소가 아닌,
“성추행을 당한 치욕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피해자인 ***에게 과대망상이라며 2차가해한 본인의 언사를 진심으로 사과한다,” 는 내용의 글을 올려 주십시오.
'P'씨가 “있지도 않은 성추문 사건은 혼자만의 과대망상” 이라는 글을 올리니
함께 한 일행으로부터 'P'씨 본인이 추행 당사자로 오해 받게 된 것인데,
오해를 받았기 때문에 “있지도 않은 성추문 사건은 혼자만의 과대망상” 이라는 막말을 하게 되었다는 건 전후가 잘못된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P'씨 부인이나 딸이 이렇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하면,
'P'씨는 수치심과 치욕감으로 괴로워하는 부인이나 딸에게
“있지도 않은 성추문 사건은 혼자만의 과대망상”이라고 치부할 것인지요?
정작 본인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면서 모든 정황을 다 아는 것처럼 단언할 수 있는 건지?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렇게까지 막말을 한 건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중간 역할을 하지 않겠다던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직접 사과를 하고 싶으니 저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고심 끝에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려주니 전화가 왔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집사람이나 며느리가 성추행 당했다고 생각하니
과대망상증이라고 한 건 정말 제가 잘못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정말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사과함)
단톡방에도 사과문 올리겠다. (이후 단톡방에 사과문 올렸음)
전화 통화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못된 사람'인 줄 알았는데 ㅡ
가정을 가지고 있고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의 말투와 태도인 겁니다. 하아..
10대부터 성추행을 많이 당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때 왜 당하고만 있었나.. 후회, 자괴감, 절망감이 가슴 깊은 곳을 송곳으로 찍고 긁는 것 같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의 추행은 셀 수도 없었고
어떤 날은 스커트에 허연 액체를 묻힌 적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타지 못했지요.
차라리 점심을 굶거나 김밥 한 줄로 떼우더라도 택시를 타거나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녔습니다.
선생놈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으니 그 시대는 여성에게 암울한 시대였다고 할까요..?
우리 시대에는 '성추행', '성희롱', '스토킹'이라는 단어 조차도 없었으니까요.
'강O'이라는 단어가 있었지만 '죽을 만큼!' 저항하지 않으면 화간이 되었고,
위협을 느낄 정도의 집요한 스토킹으로 신고하면
경찰은 "이 청년이 그렇게 좋다는데 만나보지 그러느냐" 며 피해자를 회유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의 작은 몸이 놈들에게 만만하게 보였을 수는 있겠지만
제가 무슨 성추행 유인제를 뿜어대거나 행실이 그러한 여자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시대 여자들끼리 깊이 감춰둔 수치스러운 일들을 털어 놓는 자리가 되면
이런 일들에 대해서 너도..? 너도..? 너도.. 그랬어? 이렇게 비일비재했던 추악한 시대였다고 할까요.
그 상처를 다시 또 헤집는 일이 이 나이에 정말 이 나이에..
남편 친구의 부인들은 손주에게 할머니 소리를 듣는 이 나이에..
이런 추잡한 일을 당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젊어서는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 날들을 돌이켜 보면 후회할 일, 부끄러운 일, 반성할 일 투성이지 않습니까?
제발 나이 들어서는 추태 부리지 말고 젊잖게 제발 사람답게 곱게 늙어 갑시다.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커뮤니티라고해서 욕설, 비하, 인신공격, 조롱.. 등의 악에 바친 저열한 댓글들을 봅니다.
선업도 악업도 모두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입니다.
내게 돌아오지 않은 선업과 악업은 자식에게라도 돌아간다 생각하면
누구에게라도 함부로 배설하듯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명예훼손 형사고발건으로 받은 합의금 백만원.
가족에게 합의금은 NGO단체에 후원하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과 딸이 좋은 생각이라며 성원해 주었습니다.
합의금 100만원은 '국경 없는 의사회'에 일시후원금으로 냈습니다.
그 돈 헛되게 쓰지 않았다고 P씨에게 약정서 링크해서 보내 주었습니다.

1등
웅.. 감사합니다.
즐거워야할 여행에 못된 인간때문에 심히 불쾌한 일을 당하셨네요..ㅜㅠ
어떻게 적어야 위로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나쁜 기억 빨리 떨쳐내시고 평온한 마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NGO 단체에 후원금 내니 회복이 어느 정도 되더라구요.
인터넷 실명제는 요원한 일일 터이고.
누구든지 참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생업 때문에 시간 없어서 접는 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성가시더라도 해야만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터넷 세상이 그나마 정화되거든요.
"젊어서는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 날들을 돌이켜 보면 후회할 일, 부끄러운 일, 반성할 일 투성이지 않습니까?
제발 나이 들어서는 추태 부리지 말고 젊잖게 제발 사람답게 곱게 늙어 갑시다.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커뮤니티라고해서 욕설, 비하, 인신공격, 조롱.. 등의 악에 바친 저열한 댓글들을 봅니다.
선업도 악업도 모두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입니다.
내게 돌아오지 않은 선업과 악업은 자식에게라도 돌아간다 생각하면
누구에게라도 함부로 배설하듯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 윗글 공감합니다!
임자를 제대로 만났군요^^
이젠 마음 푸시고(용서해 주시고) 평안한 하루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의기록님의 진심이 느껴져서 울컥했네요. ㅜ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젊은 날..
이제는 참지 않으려구요.
인터넷은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잖아요.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는 아니지만, 해야 합니다.
참고로,
모욕죄 : 욕설
명예훼손죄 : 인신공격, 비하, 조롱.. 등입니다.
유죄일 경우, 벌금형은 1백만원 부터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성추행도 안 좋지만 그 후 적반하장을 당하셨군요. 저는 그 후의 일들이 더 어처구니가 없네요.
그래도 끝까지 밝히셔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