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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괴문서) 웃을 수 없는 농담

죽은 사람이 꿈에 나오면 좋겠다. 

그렇게 바란 건 언제부터였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곧잘 나오곤 하던데.
방황하는 주인공 앞에 환각으로 나타난다거나
꿈 속에서 상황을 타파할 만한 힌트를 던져주곤 해.


가끔 실제로도 몇몇 사람들은 꿈 속에서

죽은 사람과 다시 만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만나볼 수 없었다.
어쩌면, 죽었다는 것을 받아드리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골드 쉽이 죽었다." 라고 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믿었을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그런 식의 장난이냐면서
마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같이 취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골드 쉽이 죽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5년 전에.


처음에는 그저 장난인 줄로만 알았다.


병원에서 급한 연락이 왔을 때조차도.
설마 이번에는 병원까지 섭외한건가 하며

또 어떤 장난이 있을까 놀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병원에 도착하고 난 뒤

마주친 의사 선생님의 무거운 표정은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웠다.


간이 침대에 위에 덮인 새하얀 천을 들어 올리자

그곳에는 눈을 감고 있는 골드 쉽이 있었다.
그저 잠든듯한 그 얼굴은 너무나 깔끔했기에
왁-! 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난 골드 쉽이

장난을 친다 해도 기꺼이 용서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미동조차 없었다.
호흡도, 숨소리도,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싸늘하게 식은 몸만이 남아있었다.


"골드 쉽씨!!! 트레이너씨!?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허겁지겁 소리를 내며 들어온 맥퀸이었지만
내 얼굴과, 잠든듯한 골드 쉽의 얼굴을 본 직후

그대로 주저앉아 혼절하고 말았다.


나중에 상황을 듣기로는 도로에 넘어진 아이를 구하려다가 대신 차에 치였다고 한다.

그 아이는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고.
나는 골드 쉽의 트레이너로서, 맥퀸은 그녀의 친우로서 장례식을 도왔다.

정 중앙에 놓여진 영정 사진을 보면서도,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기꺼이 찾아와 주신 친척, 친구, 선배, 후배들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여전히 죽음이 실감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을 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더 이상 이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삶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에 슬픔만이 가득했다.


허나 죽은 자의 시간은 완전히 정지해 흐르지 않지만

산 자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매정하게 흘러갈 뿐.


그렇게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슬픔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순 없기에

몰두한 트레이너 일은 어느새 나를 상위 팀 트레이너로 만들어버렸다.


그녀의 죽음에 가장 충격을 받았던 맥퀸 역시
메지로 가문의 당주가 되어 어엿한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다만 가끔 나보다도 더 일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 걱정 될뿐.
시간은 흐르고 슬픔 역시 옅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픔은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 흉터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골드 십은 어딘가에 살아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이 두 눈으로 그녀가 관에 들어가고 사라지는 장면까지 그 모든 것을 보았음에도.

어째선지 그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골드 쉽이라면 어쩌면...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가 해내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트레이너로 있으면서

아주 많이 깨달았지만 역시 그럼에도.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
꿈을 꿨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배경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여, 트레삐. 그동안 잘 지냈나?"


"고, 고루시!? 정말 너야?"


꿈에...골드 쉽이 나왔다.


"뭐야 뭐야? 죽은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그야 넌..."


"골드 쉽, 교통사고로 사망. 이라고 알고 있겠지.
사실은 좀 다르다고 트레삐삐."


"뭐...?"


꿈은 무의식의 투영이라고 하던가.

꿈 속의 골드 쉽은 내 막연한 생각처럼

마치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듯 말을 하고 있었다.


"실은 말이지...많이 아프긴 했는데

지금은 멀쩡해서 전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정말로?"


"암암, 물론이지 물론이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트레삐."


"좀 미안한 얘기지만 나 나 뭔가 못 믿겠는데.

증거라도, 아니.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그래? 그러면 삼여신상이 있는 분수대 앞으로 와.

지금 바로. 늦으면 안된다, 트레이너?"


"잠깐, 고루-!!"


꿈은 그렇게 허망하게 끊겼다.

평소에 그녀가 하던 장난처럼.


그저 꿈일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뛰쳐나가
숨이 헐떡이도록 뛰어 삼여신상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맥퀸 역시
급하다는 듯한 얼굴로 삼여신 상 앞에 섰다.
"맥퀸...설마 너도?"


"네. 아무래도 저희 둘이 완전히 똑같은 꿈을 꾼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


하지만, 분수대의 물이 졸졸 아래로 흐를 뿐.

골드 쉽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꿈은...역시 꿈인가."


"그렇네요...역시 일어날 리가 없죠."


알고 있다.

이미 몇 번이고 확인한 일이다.

하지만...하지만...


"고루시...이런 농담은 웃어줄 수가 없다고..."


"...어찌보면 그분 다운 농담이네요...저도 웃음이 나오진 않지만."


"이제...정말 인정하라는 걸지도."


"그렇네요...저도 아주 조금은 믿고 있었거든요.
'골드 쉽씨라면 어딘가에 살아계실지도 모른다.' 고.

트레이너씨, 오늘이 어떤 날인지 기억하시나요?"


"오늘...? 오늘은...아."


맥퀸의 말을 듣고 급히 스마트폰을 켜 날짜를 확인하자,
캘린더에는 "골드 쉽 생일. -절대 잊지 말 것!- 이라고 적혀있었다.


"...참 짓궂은 분이시죠?

돌아가신 뒤에도 이런 장난을 치실 줄이야."


"...너무하잖아, 고루시. 죽은 사람은 나이 같은 거 안 먹는데.

넌 아직도 천진난만한 고등학생이잖냐...우린 너무 많이 먹었다고..."


죽은 자의 생일이란.

참으로 기묘한 날이 아닐 수 없다.

나이는 먹지 않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이 자리에 없는 자를 위해.


맥퀸과 나는 분수대에 앉아 이렇게 만나게 된 김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학창 시절 골드 쉽에 대한 이야기로 한동안 웃기도, 또 울기도 하며

결국에는 떼어낼 수 없었던 상념을 같이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날 밤.

꿈에 고루시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됐다.
이제 꿈에 죽은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골드 쉽이 어딘가에 살아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골드 쉽은 이제 우리의 곁에 없으니까.
내가 만나고 싶다고 보챈다면

기다리고 있는 쪽이 불안해할 테니.


우리의 모든 시간이 끝나는 그날까지.
만나는 것은 잠시 미루어두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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