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박아놓자면
"나에게는 좀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왜냐하면 내가 기대하던 종류의 봉준호 필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1. 미키17은 어떤 부류의 영화인가?
내가 기대하던 '종류'가 무엇인지 밝히려면 봉준호 작품을 카테고리화할 필요가 있겠음.
1) 주인공이 선역일 경우
2) 주인공이 선역이 아닐 경우
1)에 해당하는 작품이라면 괴물, 설국열차, 옥자 등을 꼽을 수 있겠음.
작중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임.
괴물의 박강두처럼 때때로 모지리에 멍청해서 답답해 보이기는 할지라도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얘를 응원하게 됨.
그리고 이런 작품에서 주인공을 움직이는 동력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품는 감정임
딸을 구하기 위해서, 불평등한 사회를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내 가족 옥자를 구하기 위해서
너무나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그리고 이런 주인공을 막아서는 건 보통 사회의 거대한 구조와 관념임.
무관심, 관료주의, 계급구조, 불평등, 자본주의 논리 등등.
이로부터 비롯된 절대악에 가까운 무언가가 주인공을 막아 섬.
그래서 그런지, 이런 봉준호 작품들은 대체로 결말이 깔끔함.
왜냐면 일개 선량한 개인이 거대한 구조를 뒤집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물론 설국열차의 경우에는 시밤쾅하고 다 뒤집어 버리긴 했지만, 그 결과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사망하고 말았고...)
2)에 해당하는 작품은 살인의 추억, 마더, 기생충 등을 꼽을 수 있음
이런 작품의 주인공은 내가 그 사람 자체에 감정이입하기에 심리적 문턱이 있음.
이들은 전통적인 가족애, 모성애, 정의관이 비틀려 있고, 거대한 사회적 관념과 구조 자체에 저항하기 보다는 그 한가운데에서 발버둥치고 있음.
그래서 이런 부류의 작품을 볼 땐 주인공을 응원하기보단, "아 진짜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래;;" 하는 생각을 하며 보게 됨.
그리고 이런 봉준호 작품의 특징은 결말이 한없이 찝찝함.
자연스럽게 '저런 년놈들이랑 나는 다르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보통의 사람을 갑자기 이야기 한가운데 집어 던져버림.
넌 니 아들 살인죄를 정정당당히 신고할 자신 있어?
넌 저 반지하 가족만큼 몰리면 그런 욕망 안 품을 자신 있어?
넌 저들과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할 자신 있어?
무엇보다 무서운 건, 이런 부류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내면에 잉태한 악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현실을 사는 사람은 이런 질문에 쉽게 "난 저들과 다르다!"라고 대답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거임.
1)번과 동일하게 거대한 사회 구조와 관념이 가장 큰 절대악이지만, 그런 절대악으로부터 관객이 자신을 타자화 시키기 어려움.
그리고 내가 더 좋아하는 부류의 봉준호 작품은 2번임.
미키17은 1번 부류고.
봉준호식 얼터드 카본, 공각기동대를 기대했다면 실망할거임.
이 작품은 봉준호식 나우시카, 아바타거든.
미키라는 인간이 2명이 함께 존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서브플롯일 뿐임.
이 이야기의 진짜 구조는 선량한 원주민을 몰살하려는 미련하기 그지없는 사악한 악당을 몰아내고, 남은 선량한 인물들이 함께 공존을 모색하게 되는 이야기임.
2. 미키17은 설국열차와 비슷하다.
다만, 나는 어디까지나 2번을 더 좋아한다 뿐이지 1)번 유형의 이야기를 싫어하지 않음.
하지만 미키17이 좀 실망스러운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건 잘 안된 1)번 이야기라고 느꼈기 때문임.
1) 유형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는 작품은 괴물이라고 생각함.
괴물에서 등장하는 구조적 절대악은 그 실체가 모호하고 거대함.
관료적인 경찰, 진실에 무관심한 언론, 부도덕한 미국 연구원, 부패한 공무원...
하나의 개인으로 한정되지 않은 무언가가 작품 내내 도사리고 있음.
반대로 아쉬운 작품은 설국열차임.
계급적 구조와 불평등이 가장 큰 절대악인데, 그 절대악의 실체를 윌포드라는 개인에게 몰빵해버림.
그 추종자들은 많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윌포드의 말을 재생산할 뿐 자체적인 생명력이 있는 캐릭터로 기능하지는 않음.
그 결과 윌포드라는 인물은 한없이 비인간적이고 미련해짐.
열차 부품 생산이 안되서 어린애를 부품 대용으로 쓰는 그런 비인간성을 너무나 쉽게 드러냄.
이건 등장인물이 멍청하고, 각본이 멍청한 것과는 다름.
등장인물이 관념과 구조에 잡아먹힌 것에 가깝지.
윌포드는 인명을 경시하면서까지 불평등한 계급 구조를 지키려는 기득권 그 자체가 되어야 하니까.
그런 와중에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섥히는 드라마까지 챙기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각 인물들 자체의 이야기는 동력을 비교적 잃고 메시지와 관념이 남게 됨.
고아성과 어린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어버린 이야기 위에 놓인
'불평등을 타파하려면 체제 그 자체를 전복시켜야 한다.' 라는 관념이.
그 상징성과 메타포의 완성도가 썩 좋아 평단에게 호평을 많이 듣지만, 일반 관객 입장에선 그 상징성이 와닿기 어려움.
미키17은 설국열차와 비슷한 단점을 공유함.
다보고 정리해보면 너무나도 메시지가 명확하고 쉽지만, 그 과정에서 관념과 메시지가 등장인물의 서사를 잡아먹어버리는 작품임.
이 작품에 도사린 절대악은 순혈주의, 인종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그걸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사령관에게 전부 몰아줌.
그 결과 사령관 부부는 한없이 비인간적이고 멍청하고 미련한 기득권층 악당으로 묘사됨.
그를 따르는 추종자는 무비판적으로 그를 찬양하고 따르고.
(물론 이런 기득권층 묘사가 현실성이 없진 않다는 건 참으로 씁쓸한 현실임...)
그러니 작품이 후반부 어느 기점에 이르면 '저 ㅆ새끼를 죽여버려야 한다'로 귀결되고, 그게 이루어지고 나면 그 후에는 모든 일이 잘 풀려버림.
순혈주의와 인종주의의 상징을 제거해버리고 모두가 공존할 일만 남았으니까.
그 이전에 있었던 둘로 나뉜 미키의 갈등, 미키를 소모품으로 보는 사람과 인간으로 봐주는 사람들의 인간 군상, 우주 너머까지 쫓아온 변태 빚쟁이의 끄나풀 문제 등은 휘리릭 넘어가 버림.
3. 관념과 메시지를 걷어내도 후반부 서사는 너무 잘 아는 맛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미련한 사령관 부부는 아기 원주민을 생포한데다가 이를 죽여버리려 하고 있고
미키에 동조하는 인물들은 공존의 가능성을 외치며 이를 막으려 하고
아기를 잃어 분노한 어미는 온 동족을 이끌고 인류를 위협함.
내가 위에서 이 작품이 봉준호식 나우시카라고 했는데, 후반부 사건의 전개는 ㄹㅇ 나우시카 극장판의 오마주 수준임.
행성의 원주민 외형도 나우시카의 오무와 상당한 기시감이 있고.
표절이라는 건 아님.
서사가 너무나 익숙하다는 거지.
나우시카와 차이를 준 부분이라면, 나우시카 1명이 했던 역할을 2명의 미키와 미키의 여친에게 나눠줬다는 것 정도?
처음으로 저들과의 공존 가능성을 깨닫고 대화하는 건 미키17이
공존을 설파하며 아이를 돌려주는 건 미키의 여친이
분노한 원주민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은 미키 18이
각각 나누어서 하게 됨.
이야기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봉준호 특유의 블랙 유머는 건재하고, 현 시대에 공존의 메시지를 다시 되짚는 건 분명 유의미하다고 생각함.
어디까지나 내가 실망스럽게 느낀 쪽이라서 그런 내용 위주로 적었을 뿐이지,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낮지 않음.
하지만 기생충이나 마더를 봉준호의 커리어 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니가 원하던 작품은 아닐거임.
세줄요약
1) 이 작품은 봉준호식 알터드 카본이 아닌 봉준호식 나우시카다.
2) 인물 자체의 서사보다는 메시지와 관념이 앞서는 작품이다.
3) 서사 자체도 익숙한 맛이다. 좋게 말하면 대중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뻔하다.
세계관 묘사는 어떰?? 설국열차처럼 닫힌 세계가아닌 광활한 우주행성의 여러느낌 잘살림?
음......신선한 느낌은 없음.
어디서나 볼법한 척박한 얼음 행성과 우주 이주선임
여러 소감들이 설국열차향이라 하는거보면
뇌빼고 보기 좋은영화겠군
ㄹㅇ 나도 약간 너무 기대했나 싶음
물론 재밌었음
다만 봉준호라면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을까 했던거고
특히 악역은 설국열차보다 더 구려진거 같아 너무 1차원적이야
ㅇㅇ 준수한 팝콘무비는 됨.
근데 봉준호 영화를 보러 가며 팝콘무비를 기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개인적으론 괴물과 송강호가 친구가 되면 이 느낌이었을 것 같더라
서는 거나 입 갈라지는.것도 셀프 오마주 많고
괴물에선 입을 까보니까 현서는 죽고 세주라는 새로운 희망이 들어있었는데 여기선 새끼 한 마리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는 걸로 셀프 오마주 느낌 받음
좋은리뷰추
의외로 직구라 놀랍긴 했어 재밌게 본거랑 별개로
좀 더 씁쓸한 결말인가 했는데 해피엔딩인것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