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랑 얘기할 때 적은거라 경어체로 작성되어있슴다.
-----------------
일단 서론부터 말하자면
촉의 화폐에 대해 중국 위키 백과에 적힌 내용을 보면 '펑신웨이'라는 화폐경제학자가 '촉한 화폐와 오의 화폐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생겼고 그로인해 위가 승리하고 촉, 오가 패배했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촉한의 동전에 비판적인 국내 유저들은 일본 학자인 카가누마 요헤이 교수님의 논문등을 근거로 직백오수는 동탁과 같은 주조차익을 얻기위한 수탈이라고 비판하며, 오나라는 촉한의 동전을 구리가치로만 따져서 매입후 경제적으로 종속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냥 한문권 계열 국가에서 부정적인 평만 있는 것일까? 하고 조사를 해보니 그런건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대만쪽 동화대학교 사학교수 Chen Yanliang(陈彦良) 란분은
(링크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1459168)
조위는 디플레이션, 촉한은 제한적 인플레이션, 오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라고 이야기 하신적 있습니다.
또 후한말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무역체제가 붕괴됬는데 촉한의 사회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제가 보기에
오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있던것으로 보이는데 (여몽에게 형주 탈취 성공에 대한 포상으로 1억전을 줬다는 구절이 있음) 이를 해결 하기 위해서 손권이 따로 주화를 발행한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액면가가 다른 나라보다 5배, 10배(대천오백, 대천당천)나 컸고 오나라의 화폐생산능력이 조악했던지라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것 같아요.
단순 손권도 시뇨리지 차익을 위해서 발행을 했다고 보기엔 촉보다 화폐발행이 늦었으며 그 문제점과 폐단에 대해서 익히 아는게 정상일텐데도 더 심각한 행동을 했다는 것에 모순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청두대학 wang peng (王鹏) 지도교수의 촉한의 건위오수에 대한 글입니다.
https://m.fx361.com/news/2020/0911/12886213.html
이 글은 촉한의 오수전에 유비가 정치적인 메시지(뭐 대충 한조재건 관련입니다.)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중요한 건 서천에서는 구리를 얻기 힘들었지만 건위 지역을 손에 넣은 유비는 그곳의 구리 자원으로 화폐를 발행했고
이 화폐의 유통으로 인해 위와 오의 부를 가져오는게 가능했으며
이것에 위는 어느정도 실물경제로 돌아간 덕분에 방어가 가능했지만
오는 그렇지 못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후 후기에서야 손권은 문제점을 알게되어 손오 자체 화폐를 발행했지만
실패하였고 촉의 화폐를 사용하였다고 말합니다.
보통 촉의 직백오수전을 비판하는 의견으로서
'당백전'과 그래샴의 법칙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이야기를 들지만
저는 후한시기에는 조선 말의 당백전 발행때와 상황이 달랐고
그래샴의 법칙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이야기는 오히려 반론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백전 발행전 조선은 상업의 발전으로 화폐가 필요했으나 농업국가였던지라 화폐가 부족했고
디플레이션 형상이 벌어졌으며 그리하여 유통을 위한 고액적인 당백전을 발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당백전의 가치측청 실패 덕분도 있고 여러모로 실패했죠
반면 삼국지, 즉 후한 말 시대는 왕망의 4차례 따른(ㅁㅊㄴ...) 화폐 개혁과
영제의 사출오수, 동탁의 화폐개혁으로 양화는 커녕 악화가 잔뜩 늘어나는 일만 생겼습니다.
즉, 그래샴의 법칙을 생각한다면 삼국 위,촉,오가 한 화폐발행은 '수탈'이 아니라 '양화'발행으로 인한
화폐신용도 회복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후한 환제때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桓帝时有上书言:“人以货轻钱薄,故致贫困,宜改铸大钱。”事下四府群僚及太学能言之士。孝廉刘陶上议曰:
후한 환제 시기에 어떤이가 황제에게
"화폐를 가볍게 여겨 빈곤에 이르게 되었다. 큰 돈(고액권)을 주조해야한다.(인플레이션)"
다만 환제는 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유도'라는 신하가
'큰 돈을 만들어 봐야 백성만 더 고통스러울 뿐이고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으니 농사에나 더 신경쓰자'라는 의견을 체택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영제때 사출오수를 만들었던 걸 보면 당시 화폐가 상당히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그래샴의 법칙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수탈이다.' 를 말하고자 한다면
당시 화폐상태가 정상이거나 그러진 못하더라도 촉한의 직백오수같은 화폐보다는 상태가 좋아야
그게 인정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 듯 왕망, 영제, 동탁의 연이은 화폐개혁 실패로 인해 과연 그 당시 화폐의 질이 좋았을까? 질문은 던져본다면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그건 아닌 것 같아 보이거든요.
촉한의 화폐는 후기에 갈수록 나라가 피폐해져서인지 금속자체의 함량이 조악해지긴 했지만
직백이라는 액면가는 그대로 유지했는데
손권이 발행한 화폐는 대천오백-대천당천-대천이천-대천오천(이건 위키 보니까 좀 이야기 있어서 모르겠음) 이렇게 있는데 물건만 놓고보면
짐바으웨 화폐마냥 액면가가 올라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전형적인 초인플레이션 현상이긴 하네요 이게... 심지어 손권 시기 10년?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진걸로 아는데
이건 아무래도 촉은 제한된 인플레이션, 오는 초인플레이션이라는 대만 교수님의 말에 적절히 부합하는 내용이긴 합니다...
더군다나 당시 손권은 조위처럼 화폐경제를 물질경제로 때울수 있긴 힘들고
장강유역을 통해 상업을 발달시킬때나 아니면 내부 시장운영에 돈이 필요할테니
아무래도 손권이 앞서 촉나라의 화폐발행을 보고 화폐를 발행했거나 아니면 화폐주조의 필요성을 느껴 발행한 것으로 보이고요.
하지만 오나라의 화폐기술이 조악했다는 추측을 봤을때 손권은 구리와 제조기술 부족,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직백오수보다 액면가가 5배~20배나 되는 화폐들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청두대학 저널에서
'오나라가 기술 부족으로 고액전을 뽑아냈어도 많이 만들진 못했으니 인플레이션 피해가 크지 않았을거고
촉의 동전을 수입하여 상호간의 경제를 성장시켰다...' 라고 했으니 오나라에도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바이두 위키, 중국 위키백과를 기준으로 얘기했을땐 촉한의 화폐관련이야기는 긍정적이진 않는 터라
저도 촉 화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려면 논문이나 유물출토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
대충 이 정도, 본문은 촉한의 화폐에 대해 긍정적으로 적긴했지만
나는 화폐 관련해선 아직도 정확히는 판단은 유보중임
(다른게 아니라 삼국지 사료가 겁나 부실하고 디테일하지도 않아서)
별개로 그냥 이걸로 팬덤 끼리 우열짓는게 지겨운게 있고 또 싸움판 날까봐
그냥 몇몇 사람이랑 얘기 좀 나누고 말았는데
그래도 기왕 쓴거 올려는 보자하고 올려봄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폐정책 자체는 위촉오 다 했고 특히 손권은 대차게 말아먹었죠.
그리고 이런 문제는 경제사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팬덤식으로 그래서 유비가 손권이 촉이 오는 잘했니 못했니 하니까 논의가 ㅄ수준인 거고요.
뭐 일전에도 말하고 다녔지만 삼국지 지식을 팬덤의 우위를 점하는 데 쓰는게 제일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마냥 정의롭게 행동하고 다닌건 아니지만, 노력은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여기에 조홍 재평가 관련 글 많이 쓰고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게끔 하기도 했고
반대로 조운의 대한 과대평가에 대해서 고찰하는 글을 적는등, 저도 팬덤싸움에서 벗어난 글을 많이 적으려고 노력하고는 있거든요.
언젠간 다시 흥미로 접근하는 삼국지 판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타임머신 개발해도 쉽지않지 현대통계도 해석이 갈리는 마당에 유통이 더욱 제한적인 시대적 배경으로서도 삼국 내의 지역차도 심할거고
전국시대부터 무제까지 어쨋든 화폐라는건 발행인의 경제적 지배력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신생국가로서 양화의 발행은 연호를 세우는 것과 같고
촉한이란게 하루이틀 간게 아니라 40년을 갔는데 정책의 행위가 같다고 의미가 끝까지 같을 수도 없을 노릇이고 행정학에서 현대적인 정책학이 튀어나온 이유기도 하니
전국에 요순을 꿈꿀 수 없고 허물을 씌운들 제 허물은 어찌하랴
하지만 진수쿤...! 이런다고 사료가 부실한것에 대한 변명이 되지 않는다네!
어째서 더 자세하게 기록하지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