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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살인청부업자 아내를 사랑한 남편

" 시급 1억인 거 알고 오셨습니까? "

사내의 질문에 청년은 당황했다.

" 네? 아 네.. "

설마, 그 이야기가 정말인가? 
청년은 시급 1억 원짜리 임상시험 알바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집을 찾아왔다.
소파 맞은편을 내준 집주인은 퀭하니 지친 인상의 사내였는데, 전혀 농담 따위를 할 것 같지 않은 인상이었다.

"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오셨습니까? "
" ... "

청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얼굴로 저렇게 진지하게 나오면 허투루 생각할 수가 없다. 1억은 정말로 목숨값이다.
사내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 사실은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1억도 바로 지급해드립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초콜릿 하나만 먹어주시면 됩니다. "
" 네? "

사내는 청년의 앞에 초콜릿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 이 초콜릿 하나를 먹어주시면 됩니다. 그럼 1억 원을 드리겠습니다. "
" 무슨...? "

청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사내는 상자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 이 초콜릿에는 독약이 들어있을지도 모릅니다. "
" 네?? "

뜨악한 청년이 달걀 모양 초콜릿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부터 사내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제 아내는 살인청부업자였습니다.

그녀와 결혼하기 직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었죠. 저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울면서 밤을 새웠습니다. 과거는 모두 잊고, 평범하게 살자고 밤새도록 맹세했습니다.
그녀와의 결혼생활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1년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녀의 과거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녀가 혹시 일부러 나에게 접근한 것은 아닐까?

저는 비밀리에 어떤 약을 개량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고통 없이 죽여주는 약 말입니다.
자살한 친구의 노트에서 우연히 그 약을 발견한 저는, 그 약이 안락사나 사형집행용으로 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전혀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문제 말입니다. 부검해도 단순 심장마비로만 처리되는 약의 위력은 너무나도 위험했습니다. 
저는 그 약을 개량하거나, 그 약을 검출해낼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운명처럼 그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녀가 살인청부업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무엇이었을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저는 애써 그 생각을 부정하며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저는 사랑을 믿었습니다.

물론, 그 약에 관한 모든 걸 숨기고 연구도 중지했습니다. 평생 그 약 따위는 잊고 살 생각이었습니다. 
약이든 그녀의 과거든, 다 잊고 그녀와 행복하게 사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그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시체조차 온전히 남지 않은 사고였습니다. 저는 세상이 무너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그녀를 따라 죽을까 고민하던 저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 제가 숨겨두었던 그 약을 찾아냈었다는 흔적 말입니다.

저는 결혼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의심을 다시 불러왔습니다.
혹시, 그녀가 그 약을 찾고 나서 모습을 감춘 게 아닐까? 목적을 이뤘으니 내 곁을 떠난 게 아닐까? 왜 그녀는 시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않았을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이 초콜릿이 도착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그녀가 예약해놓은 초콜릿이었습니다. 
그녀는 초콜릿 예약 배송 같은 걸 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업체에 물었을 때, 그녀가 2배의 금액을 내며 신신당부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살인청부업자인 그녀가 계획적으로 저에게 접근했다면. 원하던 약을 손에 넣어 목적을 이루었다면. 그 약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저라면.
그녀는 저를 죽여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 초콜릿에 그 약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이 초콜릿에 독이 들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녀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말입니다.

그녀가 살아만 있다면, 저는 제 남은 평생을 그녀를 찾기 위해 살 겁니다.

저는 진실로, 이 초콜릿에 그녀의 독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무색무취에 흔적도 없는 약입니다. 동물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먹어보기 전에는 독약이 들어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임상시험에 1억을 내건 겁니다. 

당신은 그저, 제가 보는 앞에서 이 초콜릿을 먹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
.
.

" 이 일을 하시겠습니까? "
" ... "

청년은 떨리는 눈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마주쳐오는 사내의 텅 빈 눈빛이 청년의 머리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초콜릿 하나를 먹는 것 만으로 1억.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하지만 독약이라니? 죽을지도 모른다니?

사내는 말 없이 청년의 결정을 기다렸고, 청년은 갈등했다.
청년은 죽기 싫었지만, 손쉽게 1억을 벌 기회를 놓치기도 싫었다. 그는 사내의 표정을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은, 제가 이 초콜릿을 먹고 죽기를 바란다는 건가요? "
"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
"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이 초콜릿에 독약이 있다는 건, 아내분이 선생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자신을 죽이는 여자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건가요? "
" ... "

사내는 길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 화가 날 겁니다. 배신감도 클 겁니다. 어쩌면 소름 끼쳐서 온몸이 떨려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가 살아있었으면 합니다. 단 1분 만이라도 그녀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저는 제 모든 것을 걸어도 좋습니다. "
" ... "
" 그녀를 만나, 저를 사랑한 마음은 진심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해줄 겁니다.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그 1분이면 충분합니다. "
" ... "

청년은 사내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이야기는 모두 농담이나 쇼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청년의 결정이다.

초콜릿을 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 ... "

아내의 가짜 죽음과 발렌타인데이에 배달된 독약 초콜릿? 너무 허황한 얘기다. 
하지만 만에 하나 진짜라면. 사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죽는다. 죽음. 누구를 원망할 의혹도 없는 죽음.

청년은 초콜릿을 노려보며 5분이나 고민했다. 청년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 아내분이 살인청부업자인 것은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

사내는 말 없이, 근처 서랍에서 꺼낸 문서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시신 사진과 청구내용이 든 영수증이었다.
흔들리는 눈으로 고민하던 청년은 끝내,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합니다.. 못 먹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사내는 예상이라도 했던 것인지, 큰 놀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거절한 것은 당신이 3번째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
" ... "

사내는 무덤덤한 얼굴로 청년을 배웅했다.
집을 나선 청년은 복잡한 얼굴로 한번 돌아보았다. 두려운 것인지, 안타까운 것인지, 혹은 궁금한 것인지.

.
.
.

사내는 눈앞에 떨고 있는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 초콜릿을 드실 겁니까? "

중년인은 '후하' 숨을 내쉬며,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의 충혈된 눈이 초콜릿에 못 박혀 있었다.
그는 물었다.

" 만약...내가 죽어도 돈은 가족에게 보내주시는 겁니까? "
" 그렇습니다. "
" 어떻게 약속할 수 있습니까? "
" 글쎄요. 원하신다면 지금 미리 퀵 서비스를 불러놓으셔도 됩니다. 초콜릿을 먹고, 돈이 든 상자를 집으로 보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편지를 미리 쓸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
" 으음... "

중년인은 '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 당신을 믿겠습니다. 만약 제가 죽거든 1억을 꼭 우리 가족에게 전해주십시오. "
" 알겠습니다. 드실 겁니까? "
" ... "

중년인은 초콜릿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사내의 눈이 조금 커졌다. 처음으로 초콜릿을 먹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기어이 초콜릿을 손으로 집어 든 중년인. 벌어진 입술을 부들거리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안으로 던져넣었다!

우득. 우두득. 우득.

적막이 가득한 방 안에 초콜릿 씹는 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소리는 서서히 줄어들어, 중년인의 입도 멈추어졌다.

떨리는 눈으로 가만히 눈치를 살피는 중년인의 숨소리가 길었다. 
이윽고,

" 아- "

사내가 장탄식을 하며 눈을 감아버렸다.
고개를 젖힌 사내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쩔 수 없이 흥분하고 만 중년인이 물었다.

" 도,독은 없는 겁니까?! 없는 거지요?! 없지요?! "
" ... "

사내는 천천히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손에 검은 가방이 들려 나왔다.
안의 내용물은 확인한 중년인은 크게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사내는 무반응이었고, 중년인은 혹시 사내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집을 떠났다.

남겨진 사내의 손에서 초콜릿 상자가 강하게 구겨졌다.

.
.
.

" 저기, 잠깐만요. "
" ?! "

중년인은 누군가의 부름에, 가방을 끌어당기며 과민반응했다. 
처음 보는 검은 양복의 남자가 중년인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 초콜릿을 먹었습니까? "
" ... "

중년인이 경계할 때, 남자가 안심하라는 듯 명함을 건넸다.

" 저는 기자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암암리에 퍼져있는 그분의 스토리가 워낙 영화같아서 말입니다. 그 결과만 알고 싶습니다. 혹시 초콜릿을 먹었습니까? 독이 든 초콜릿이 아닙니까? "

중년인은 남자를 경계하다가 멀리 도망치듯 떠나며, 직전에 말했다.

" 그냥 초콜릿이었습니다! "

남겨진 남자는 아쉬워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 쩝. 혹시나 했더니. "

남자는 미련 없이 떠났다.

.
.
.

사내는 짐 가방을 들고 공항을 걸었다.
한국을 떠나는 길, 이제 다시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비행기에 올라타 창밖을 바라보는 사내. 
곧, 그 옆자리에 한 여인이 앉았다. 

" 드실래요? "

그녀는 사내에게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 그럼요. 감사합니다. "

사내는 웃으며 초콜릿을 하나 집어 먹었다. 
그녀의 손이 사내의 손등 위에 얹어졌다. 

" 사랑해 당신. "
" 나도 사랑해. "

둘은 축배를 올렸다. 계획대로, 그녀가 속해있던 조직에게서 영원히 벗어난 것을 축하하며.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1/22 01:05

    이야기를 쓰면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참 축복받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봐주시는 분들이 남아있을 때 계속 써야겠지요. 하루 종일 이야기를 구상하는 이유입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꼭이요

    (CNd6Jw)

  • 공게덕후 2017/11/22 01:56

    힘든 상황에 너무나 힐링되는 이야기네요ㅠㅠ
    뭔가 굉장히 신뢰가 느껴지는 사랑 같아요.
    자신을 죽이려고 했음에도 사랑한다는 게, 실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보단 뭔가 신뢰한다는 뜻 같아서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죽이려는 의도가 실제로는 없었겠지, 아니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믿었고 그 결과 다시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던...
    사랑에 심하게 상처받고, 저런 사랑조차 아름다워 보여서 왜곡된 해석을 하는 건가요..ㅋ
    그리고 앞에 포기한 세명을 비롯해서 거의 누구라도 먹지 못했을 초콜릿을 담담히 먹은 중년남성도ㅠㅠ가장으로서 사랑과 희생의 모습을 보여줘서 뭔가 슬프면서도 감동이고 그것도 해피엔딩(?)이어서 좋았어요.
    너무 힘들고 우울했는데 힐링 잘했네요 감사합니다.
    엊그제 목격자도 너무 재밌게 봤는데 제가 며칠 후에 중요한 일이 좀 있어서, 요즘 정신이 좀 없어갖고.. 그 걸작을 보고도 댓글도 못 썼네요. ㅠㅠ
    작가님께 두 번의 힐링이나 빚지니까 저절로 로그인을 하고 있네요. ㅋㅋ

    (CNd6Jw)

  • 죠니뎁 2017/11/22 02:22

    드디어 복날은 간다님 글을 제가 토해서 베스트로 보내보는군요!

    (CNd6Jw)

  • 똥의흐름 2017/11/22 02:50

    이번꺼 진짜 괜찮았어요 ㅇㅇ

    (CNd6Jw)

  • 스톡홀름로즈 2017/11/22 03:13

    엇 저는 다르게 해석되었는데
    해피엔딩이 맞는건가요?

    (CNd6Jw)

  • JSOY 2017/11/22 03:20

    와....이번 글도 정말ㅠㅠ 잘 읽었습니다 역시 복날님...!!!
    결국 아내의 죽음이나 이 임상실험 전부 다 그 조직을 속이기 위한 계략인거죠? 기자를 사칭한 남자가 아내가 살아있는지 정말 죽은건지 알기 위해 독인지 아닌지 물은거구요..?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네요ㅋㅋㅋㅋ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아내가 처음 사내를 죽이려는 목적이나 약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접근한건가요..?

    (CNd6Jw)

  • 부담됨 2017/11/22 03:29

    사내, 청년, 중년인, 남자
    이런 애매한 인칭대명사들
    조금만 더 읽기 좋게 확실하게 구분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재밌는데 몇번을 아래위로 왔다갔다 했네요;;;

    (CNd6Jw)

  • 신들린검사 2017/11/22 09:36

    전 두 부부가 짜고 범죄조직에서 탈퇴하기위해 궁리하다 저런 상황을 벌인걸로 생각하며 읽었어요 마지막 검은 양복 사람들은 조직사람들이고 정말 그 여자분이 죽었는지 확인하는...
    그리고 따돌렸다 생각했을때 한국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나고

    (CNd6Jw)

(CNd6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