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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프로젝트 4 월드 그레이트 게임 (351)


장크트갈렌-알텐하인 공항의 10번 활주로를 향해
점점 고도를 낮춰 가던 ACJ319 비행기는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부드럽게 활주로 위에 착륙했다.
부드러운 착륙이었지만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을 때 발생하는 진동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기체 속도를 줄이기 위한 엔진 역추진이 시작되면서
기내에 전달되는 진동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얀 베르그만은,
마치 그런 진동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고서,
그날,
그 여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
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시아계 여자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을 때,
여자는 바로 전화기를 건네받지 않았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동자에는 주저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잠시 전화를 바라보던 여자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받아 들고
얼굴로 가져갔다.
전화기가 얼굴에 고정되었음에도,
여자의 손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에 관한 이야기로,
너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따를 필요 없어.
그러나
여자의 목소리 그 어디에도
떨림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나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말아 줘.
여자의 얼굴에도.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말아 줘.
여자의 눈동자에도.
-그저 당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가 줘.
여자의 영혼에도.
-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떨림은 없었다.
얀 베르그만은
여자의 모습에서,
여자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의 감정이
얀 베르그만에게 전달되었다.
바싹 말라 쩍쩍 갈라진
안 베르그만의 마음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스며든 여자의 감정은
얀 베르그만의 마음 안에서 파동을 만들었다.
마치 같은 헤르츠를 가진 두 개의 소리굽쇠가 공명하는 것처럼,
얀 베르그만의 마음속에서도
감정이라는 이름의 진동이 느껴졌다.
얀 베르그만은 여자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속에 울리는 진동을 바라보았다.
얀 베르그만은
그 진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진짜 감정인지,
진짜 감정이라면 어떠한 감정인지,
공감인지,
동정인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인지,
얀 베르그만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진짜 감정인지,
그리고
진짜 감정이라면 어떠한 감정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얀 베르그만이 무언가를 느꼈다는 것이었다.
할 말을 끝낸 여자는
전화기를
다시 얀 베르그만에게 내밀었다.
얀 베르그만은 전화를 건네받지 않았다.
그저 여자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여자의 손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잇토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여자의 손 떨림이 강해졌고,
동시에
희미해져 가던 여자의 감정도
다시 강하게 물결쳤다.
그 순간
얀 베르그만은 마음을 정했다.
이 여자를 곁에 두어야겠다고,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고.
얀 베르그만이
여자를 확보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서용석이 죽어 버렸고,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잇토키를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장난감,
술래잡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 줄
새로운 장난감.
여자의 가치는
단지, 그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 이상
여자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다.
앞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곁에 두고 지켜보고 싶었다.
흥미롭군.
얀 베르그만은
그런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그녀의 손에 들린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여자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전화기를 얼굴로 가져갔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얀 베르그만은
침묵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분노를 느꼈다.
잇토키의 감정도
얀 베르그만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아주 흥미롭군.
얀 베르그만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속하지.
그녀는 안전할 거야.”
여전히 시선을 여자에게 고정한 채로
얀 베르그만이 말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전화기를 통해 씹어 삼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거냐.
다시 한번
잇토키의 감정이
얀 베르그만의 마음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 소년이 느끼는
분노, 절망, 고통이
마치 바싹 말라 있는 땅을 적시는 빗물처럼
그렇게 스며들었다.
“나중에.”
얀 베르그만은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때가 되면
그때 알려 주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얀 베르그만은
자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댓글

  • 사이보그 탐색자
    2025/02/15 06:20

    잘 보고 갑니다

    (fcsBtj)

(fcsBt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