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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왜 비효율적인 사약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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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보면 자주 나오는 사약!

사극에서는 입에 들이붓자마자 끄아악 하고 피를 토하다 죽지만 실제 기록을 보면 바로 죽지 않고 꽤 고통스럽게 보내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많다. 입에 상처를 내고 먹였다던지, 뜨뜻하게 군불을 땐 방에서 몇시간 동안 대기했다던지, 그러고도 안 죽어서 결국 목을 졸라 죽였다는 이야기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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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발로는 안 죽어서 사약을 세사발이나 먹어야 했던 송시열)


그렇다면 당시 사약을 제조한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로 들지 않는 약을 줬을까? 

반역죄인이니까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으라는 사디스틱한 의도?


유교국가에서 그럴리가 없지. 

나는 프로 빙의자의 심정으로 조선시대 내의원의 입장에서 사약에 쓸 가장 적절한 독이 무엇일지 상상해 본 결과, 당시 기술력으로는 그나마 제일 빨리 죽게 말아준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당시 기준으로 구할 수 있는 여러 독들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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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구꽃


투구꽃의 덩이뿌리를 말린 것을 초오라고 하고 덩이뿌리 옆의 새끼뿌리를 부자라고 한다. 사약의 공식적인 레시피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야사나 기록의 효과를 보면 가장 많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재다. 


투구꽃의 주된 독 성분은 아코니틴으로, 각종 부교감신경을 건드린다. 적게 쓰면 강심작용을 일으켜 심장이 빨리 뛰게 하고 체온을 올리지만 많이 쓰면 신경이 막 날뛰다가 20~30분에서 6시간쯤 후 부정맥과 심장 발작으로 죽는다. 오한, 복통, 두통 등은 덤.

아코니틴은 오래 끓이면 독성이 약한 벤조일라코닌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미리 끓여 법제하는 방식으로 약재로 사용해 왔다. 


투구꽃 독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효능과 쉬운 재배다. 위에 썼다시피 제대로 들으면 20~30분만에 사람이 죽을 뿐 아니라 전국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재배도 쉽다. 꽃이 이쁘기 때문에 지금도 관상용으로 많이들 기르며, 무분별하게 시장에서 사다 먹고 중독되는 일도 아직까지 흔하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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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뱀독


일단 우리나라에는 물리면 바로 죽는 맹독성 뱀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 서식하는 살무사류는 주입되는 독의 양이 적어 사망까지 가는 일이 드물 뿐 아니라, 성분도 용혈독으로 혈관에 주입되면 적혈구를 파괴하고 혈관벽을 약하게 만들어 출혈을 일으키는 종류다. 그렇다, 혈관에 넣어야 한다. 먹으면 그냥 단백질로 소화되는 것이다.


상처를 내서 넣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몸을 정갈하게 보존하려고 내리는게 사약인데 상처주변이 뱀독으로 팅팅 붓고 시퍼렇게 멍이 들면 말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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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버섯독


어떤 버섯들은 한번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산이라고 맹독성 버섯이 없지 않았을테니 버섯을 쓰면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 자라는 버섯 중 광대버섯류의 아마톡신, 붉은사슴뿔버섯의 트리코테신 등은 약간만 섭취하거나 만져도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독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독들은 사람 몸의 세포분열을 방해하는 식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죽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현재 세포가 아니라 노화로 교체되는 세포를 작살내는 방식이라 먹고 나서 죽는데 7일 가까이 걸린다. 금부도사가 옆에서 7일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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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마자


피마자로도 불리는 아주까리는 기원전부터 기름을 짜기 위해 재배하던 아주 유용한 식물이다. 그러나 기름을 짜고 남은 열매에는 리신이라는 치명적인 독성 성분이 들어있다. 


리신은 리보솜과 결합해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는 독으로 혈관 등에 투여 시 볼펜심 분량 정도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이다. 


문제는 단백질 독이라 위로 들어가면 분해되므로 독성이 약 1/30 정도로 급감하는데 피마자는 맛이 역겹기로 유명해 많이 먹이기 힘들다. 또한 먹여도 원리상 세포분열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버섯독처럼 죽는데 며칠씩 걸리는 문제가 있다. 


그래도 사람만큼 대형 동물이 아니면 충분히 치명적이어서 아주까리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비료(유박비료라고 함)를 산책하던 동네 개들이 주워먹고 죽는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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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소


보통 비상이라고 부르는 한약재로 비소가 산소와 반응해 만들어진 삼산화비소 화합물이 강한 독성을 가진다. 


구하기 쉬워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유구한 사용 역사를 가진 독약이다. 서양에서는 손자가 부유한 조부모를 죽이는데 쓴다고 "상속가루"라는 별칭으로 부를 정도. 현재도 쥐약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체내에 들어가면 ATP에서 인 대신 비소가 붙어 세포호흡을 방해해서 사람을 죽게 만든다.


다만 소량으로는 죽지 않기 때문에 조금씩 중독시켜 병사로 위장한 독살 사건이 잦았다. 그만큼 사람이 빠르게 죽는 독약이라고 보긴 어렵고, 연산군 때 폐비 윤씨 사건에 연루되어 죽으라는 명령을 받은 윤필상은 잡으러 오기 전에 스스로 비상을 먹었으나 한참을 기다려도 죽지 않아 결국 목을 매서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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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협죽도


꽃이 예뻐 관상식물로도 많이 기르는 협죽도 잎과 줄기에는 올레안드린이라는 독이 들어있다.


올레안드린은 인터넷에 있는 것처럼 청산가리보다 강하느니 협죽도를 만지기만 해도 죽는다느니 젓가락으로 쓰기만 해도 죽는다느니 하는건 과장된 것으로 보이나, 적은 양으로도 위장관 이상과 심장마비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맹독임에는 틀림없다. 사람 대상 정확한 치사량은 들쑥날쑥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편.


문제는 협죽도가 지중해성 식물이라 제주도에서만 자란다는 것이다. 온돌과 인터넷 배송의 힘으로 한겨울에도 방구석에서 열대 관엽식물을 키우는 지금이라면 모를까, 조선시대에는 필요한 때에 구하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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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살구씨


살구씨는 행인이라고도 불리는 약재로, 사과씨, 은행 등에도 들어있는 아미그달린이라는 청산배당체 종류의 독이 들어있다. 


청산배당체는 추리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청산가리와 비슷한 물질로, 치사량 이상 복용 시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를 방해해 약 30분 안에 숨을 쉬어도 세포가 호흡을 못해 질식사한다. 


문제는 우리가 아는 청산가리와 달리 자연에 있는 아미그달린은 활성도가 낮아서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 사과씨의 경우 약 200여개를 먹어야 위험한 수준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열에 금방 분해되며 심지어 가만히 있어도 습기와 반응해 사라져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보존을 위해 끓이거나 말려야 하는 의원들과 약재를 죄인이 귀양간 저 섬으로 멀리멀리 가져가야 하는 금부도사에겐 꽤나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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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복어독


조선시대에도 복어에 독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으며 먹고 죽는 사고와 복어독을 이용해 남을 죽이는 사건이 꾸준히 일어났다. 


복어독의 주성분은 테트로도톡신으로 투구꽃의 아코니틴과는 완전히 반대의 기전으로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호흡신호를 포함한 신경신호를 차단해 희생자를 질식사시킨다. 


문제는 의외로 복어독도 효과가 날 때까지 오래 걸린다는 것. 사고 사례들을 보면 중독 후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20~30분에서 6시간 까지 간격이 천차만별이며, 천천히 호흡근이 마비되어 죽어가는 증상은 대개 4시간 후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이정도면 투구꽃과 큰 차이가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복어의 독은 투구꽃과 원리가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같이 썼다간 독성이 없어진다. 즉 둘중 하나만 써야 한다는 건데 재배의 편의성 측면에서 투구꽃을 선택했다면 복어독은 자연히 탈락하는 것이다. 


9.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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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본 것과 같이 당시에 구할 수 있던 여러 독과 비교해 보면 부자가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 획득 난이도, 보존성 등 여러 면에서 그나마 가장 빠르고 적절한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사람들도 바보라서 죽는데 몇시간씩 걸리는 독을 쓴게 아니라 그게 그나마 가장 괜찮은 방법이었던 셈.

댓글

  • 체리보쌈
    2025/02/11 16:55

    오옹 내용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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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ウルトラマンネクサス
    2025/02/11 16:56

    직접 조사함. 혹시 제가 경찰에 잡혀가면 그냥 베스트에 미친 유게이라고 증언해주세요.

    (TvPy35)


  • Cloud Chaser
    2025/02/11 16:56

    경찰 아저씨! 여기에요! 여기!

    (TvPy35)


  • 직구지온잔당군
    2025/02/11 16:57

    레시피가 안 남은 것도 그때그때 배합해 먹이느라 딱히 그런거 없다던가

    (TvPy35)


  • 여섯번째발가락
    2025/02/11 16:57

    결론은 나름 저래뵈도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란건가

    (TvPy35)


  • 멀리까지가보자
    2025/02/11 16:57

    독살도 생각보다 쉽지 않군..

    (TvPy35)


  • 봉완미
    2025/02/11 17:05

    다만 이제 조선 후기로 가면 청나라를 통해 서양에서 독을 수입하면서 효율적인 독살이 가능해졌다고 하더라.

    (TvPy35)


  • 루리웹-7784804381
    2025/02/11 17:11

    청산가리가 1700년대 말에 합성됐다더라고. 그때쯤 되면 청산가리를 수입해서 쓰면 됐을듯

    (TvPy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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