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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명 vs 15700

1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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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음력 7월10일

1차 금산 전투

 

음력 7월8일

전라도의 공략을 위해 전주성을 향하던

고바야카와 다카카케가 이끄는 왜6군은

웅치고개는 뚫는 것까지는 성공하였으나 피해가 심하여 후퇴하였고,

이치고개 역시 쉽사리 뚫지 못하다가

도바야카와가 어떠한 급보를 전해듣고서는 철수를 시작했다

 

고바야카와가 전해들은 급보.

의병장 고경명과 전라병사 곽영의 연합부대가

금산성을 노리고 있다는 보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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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

서인의 유력자였던 그는 1591년 동래부사에 제직 중이었으며,

같은해 서인의 대표격 인물 중 한 명인 정철의 건저의 사건으로 인하여

서인이 몰락할 때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한 인물이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고 조정이 급히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대를 만들었다

그 수가 무려 6000에 육박했다

 

06 금산혈전출진도.jpg

 

 음력 7월 9일

고경명이 이끄는 의병대는 무사히 전라 병사 곽영의 관군과 합류하여

금산성을 포위하였다

의병대의 6000과 관군 1000이 합쳐 약 7000여명의 부대였다

 

왜군은 산발적으로 성을 빠져나와 조선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그 규모는 미미했으며

양군 모두 큰 성과 없이 9일이 지나갔다


고경명_1.jpg

 

음력 7월10일

왜6군이 전주성 공략을 포기하고 웅치와 이치에서 모두 철수한 사실을 접한

전라 병사 곽영은 고경명에게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고 자신들 역시 철수하자고 건의하였다

 

하지만 고경명은 곽영의 철수 제의를 거부하고 부대에게

공격을 명하였다

 

고바야카와는 의병대와 관군의 진영을 살핀 후

관군의 수가 훨씬 적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곽영의 부대를 집중공격하였다

곽영의 조선군은 얼마지나지 않아 붕괴하였으며

곽영은 그대로 후퇴해버리고 말았다

 

고경명은 의병대 역시 후퇴하여야 한다는 부하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지시했다

결국 고경명이 전사하며 의병대 역시 완전히 무너졌고

막내아들 고인후 역시 전사하였다

 

남은 부대는 고경명의 장남 고종후가 수습하여 후퇴하였으며,

부대를 재정비한 이후 금산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왜6군은 이미 성을 버리고 철수한 이후였다

 

고종후는 자신의 부친과 동생을 비롯한 조선군의

장례를 치른 후 남은 의병대를 이끌고 금산성을 떠났다


고경명은 훗날 임진사충신으로 추대되어 그 명예를 높였으며

그의 행동은 고바야카와의 철수를 유도하여

 결과적으론 전주성을 구한 것이 되었지만,

직접적인 전주성 방어작전(웅치,이치 전투)에 불참한데다가

쓸데없는 전투로 병력을 분산, 괴멸시켰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댓글
  • 발업도안된조그만저글링 2017/11/05 23:22

    우욍 우리 조상님이시당

  • 불꽃저그 2017/11/05 23:26

    조선시대 의병에 대해 사람들이 잘 오해하는 부분인데.
    그냥 일생을 농사짓던 순박한 농민들이 집에있던 낫이랑 몽둥이 들고 뛰어나온 사람들이 아님.
    조선시대엔 대충 지금으로치면 중딩부터 해서 당시 평균 수명에 해당하는 나이 까지
    주기적으로 끌려가서 몇개월씩 군사훈련 받고 돌아와서 농사짓고 다시 끌려가서 훈련받고를 반복 하던 사람들이
    조선시대 농민이란 존재임.
    광해군이 자기가 뛰어다닐 수 있는 후방지역에서
    모아서 방어선 구축한 군사들이나
    전장 인근 지역에서 지역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조직 된 의병들이나
    대부분 군사훈련 경험이 상당한 그 시대 베테랑 솔져들임.
    그래서 의병 활동할 때
    "농민 치고는 잘 싸웠다."
    이런 오해들을 하는데.
    사실 실전경험이 부족했을 지언정 보통 내기들은 아니었음.

  • 발업도안된조그만저글링 2017/11/05 23:22

    우욍 우리 조상님이시당

    (3pW9MU)

  • 녹였다얼린메로나 2017/11/05 23:23

    오 대단하신 분의 후손이시군요 ㅊㅊ

    (3pW9MU)

  • 불꽃저그 2017/11/05 23:26

    조선시대 의병에 대해 사람들이 잘 오해하는 부분인데.
    그냥 일생을 농사짓던 순박한 농민들이 집에있던 낫이랑 몽둥이 들고 뛰어나온 사람들이 아님.
    조선시대엔 대충 지금으로치면 중딩부터 해서 당시 평균 수명에 해당하는 나이 까지
    주기적으로 끌려가서 몇개월씩 군사훈련 받고 돌아와서 농사짓고 다시 끌려가서 훈련받고를 반복 하던 사람들이
    조선시대 농민이란 존재임.
    광해군이 자기가 뛰어다닐 수 있는 후방지역에서
    모아서 방어선 구축한 군사들이나
    전장 인근 지역에서 지역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조직 된 의병들이나
    대부분 군사훈련 경험이 상당한 그 시대 베테랑 솔져들임.
    그래서 의병 활동할 때
    "농민 치고는 잘 싸웠다."
    이런 오해들을 하는데.
    사실 실전경험이 부족했을 지언정 보통 내기들은 아니었음.

    (3pW9MU)

  • picaresqe 2017/11/05 23:28

    이 사건이랑은 좀 다른거지만 어릴때 칠백의총 가까이 살아서 자주 놀러갔었어요.
    민족기록화랑 디오라마? 같은것도 있었는데, 초등학생 때 였지만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3pW9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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