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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멸망의 세균

그동안에도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지만, 그 사내만큼 정확한 사람은 없었다.

" 오늘 자정까지 일어날 전 세계의 주요 뉴스 100개를 모두 미리 예언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미래에서 왔다는 걸 인정하시겠다면 저를 생방송에 출연시켜주십시오. "

그의 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적중했다. 
요구대로 그는 생방송에 출연했고, 많은 관심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 미친 과학자가 미래에 아주 끔찍한 세균을 개발했습니다. 공기 중으로 증식하는 그 세균은 이미 전 지구를 덮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는 지금 멸망하기 직전입니다. "

그야말로 충격적인 소식에 사람들이 놀랄 때, 사내는 목적을 꺼냈다.

" 저희는 그 미친 과학자의 정체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김남우라는 노인에 대해서는 알아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김남우라는 아이가 있을 겁니다. 그는 나중에 자라서 특이한 세포 변이를 일으키게 됩니다. 미친 과학자가 그 김남우의 몸에서 추출한 세포로 세균을 개발한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그 한 사람을 희생해서 미래를 구해주십시오. "

인류로서는 너무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사내가 설명한 세균은 정말로 무서웠다. 공기중으로 빠르게 퍼지며, 감염되면 온몸이 점점 붉게 뭉그러지다가 썩어버린다. 약조차 없다.

하지만 막연했다. 미래의 일 아닌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내가 설명한 김남우란 아이도 찾아냈지만, 무턱대고 사내의 요구를 들어줄 순 없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가 급변했다. 사내가 이후로도 굵직한 사건들을 계속해서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내가 진짜 미래에서 왔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고, 진지하게 멸망에 대한 토론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아이 하나와 지구의 미래를 저울질할 수 있습니까? 그의 말대로 해야 합니다. "
" 아이를 죽이잔 말입니까?! 그 아이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건 도덕적이지 못합니다! "
" 도덕도 정도가 있는 거지, 인류 전체와 한 아이를 비교할 수 있습니까?! "
"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평생 정부에서 관리한다거나 말입니다! "
" 100% 안전을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평생 감시받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이로서도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

난제였다. 한 아이를 희생해서 모두를 구하는 게 옳은가? 

극렬한 누군가는 당장 내가 가서 그 아이를 죽이겠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그 반대편 누군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한 인류는 차라리 멸망하는 게 더 낫다는 이도 있었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어렴풋이 통찰하고 있었다. 
김남우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논란이 계속될 거란 것을. 희생 찬성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반대는 무수히 승리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어린아이인 김남우를 죽이자는 게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꺼려질 뿐이었지, 어차피 언젠가는 그렇게 될 운명과도 같아 보였다.

저 어린아이를 어떻게 죽일 수 있냐는 외침에, 누군가 대답했다.

" 지금 우리에게는 오지도 않을 미래의 일이니까, 우리에게는 상관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 김남우라는 아이와 함께 자랄 모든 아이들은 세균으로 죽게 될 겁니다. 지금 저희 주변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말입니다. "

" ... "

그 말이 사람들의 망설임을 줄여주었다.

결국, 인류는 여전한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김남우를 희생시켰다.

일이 처리된 뒤, 사람들의 관심은 사내에게로 돌아갔다. 사내에게서 미래의 기술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이득이겠는가?
정부에서는 각계의 전문가들을 초청한 자리를 마련했다.

" 부족하나마 식사를 마련했으니 드시면서 얘기를 하시지요. "
" 아니요. 괜찮습니다. "
" 예? "

식사를 정중히 거절하는 사내의 모습에 모두가 의아해할 때, 사내가 손을 뒤통수로 향하더니, 뚜껑을 들어 올렸다.

" 흐엑?! "
" 엄마야! "

사내의 뒤통수가 열리며, 정교한 기계장치가 드러났다!

" 로,로봇이잖아?! "
" 로봇이야?! "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아찔해졌다.

" 서, 설마...! 속은 거야? 세균 이야기가 다 거짓말이었어?! "

사내는 손으로 뒤통수를 조작하며 말했다.

" 거짓말이 아닙니다. 미래에는 정말 공기 중으로 세균이 퍼지고 있습니다. 모든 금속에 달라붙어 녹이 슬고 부식하게 만드는 세균 말입니다. 미래의 기계들은 멸망 직전까지 간 상황입니다. "

어안이 벙벙한 사람 중 누군가 다급하게 물었다.

" 그럼 그 세균이 우리 인간에게도 붙는단 말입니까? "
" 아니요. 아마도 무해할 겁니다. 생물형 인간이 멸종에 가까워서 확인된 사항은 아닙니다. "
" 뭐?! 며,멸종?! " 
" 예. 생물형 인간은 너무 비효율적이라 멸종 작업 중입니다. 대신, 저희 기계들이 지구를 계속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 미친 과학자의 세균 때문에 무너지던 참이었지만 말입니다. "
" ... "

사람들은 말문을 잃었고, 사내는 뒤통수의 조작을 끝냈다.

[ 임무 완료. 전원 종료. ]

" ... "

사람들은 전원이 꺼진 사내를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이 소식은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한 아이를 희생했는데, 미래에 인류가 이미 거의 멸망했다니?
게다가 더 최악인 건, 우리의 미래는 기계에게 저항할 세균조차도 없는 미래란 것이었다.

" 그러니까 김남우를 죽이지 말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
" 벌을 받은 거야! 한 아이를 희생해서 모두가 살려다가 벌을 받은 거라고! "

그야말로 대혼란이 펼쳐졌다.
같은 시각, '사내'의 몸체를 수거해서 조사하던 과학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 이게 뭐지? " 

사내의 피부를 벗겨서 조사하던 와중, 불그스름한 반점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 아참! 그 세균이 공기 중에 존재한다고 했지? 그럼 혹시 과거로 올 때...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0/31 00:47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쓰는 게 어렵습니다. 온종일 노력해도 1차원적인 이야기만 나오네요.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나요. 흐하 이거 참..
    감사합니다. 더 궁리하여 정말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게 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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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고파파 2017/10/31 00:54

    '사내' 가 사실 자신의 세균병기에 필요한 김남우를 찾기 위해 과거로 온 과학자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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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푸아 2017/10/31 02:02

    이런 이야기 매트릭스 프리퀄같고 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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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게덕후 2017/10/31 02:02

    우와 우와 저도 드디어 추천을 할 수 있네요!! 신난다ㅋㅋ 이제 '신규회원' 아닌가 보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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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탄소뎐단 2017/10/31 02:06

    와 ㄷㄷㄷ
    그럼 그 기계안에 있는 세균덕분에
    인류가 다시 살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건가요
    와 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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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세법률주의 2017/10/31 02:10

    어차피 일어날 일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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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말은아파요 2017/10/31 03:02

    근데 아직 기계가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는데...사람은 살지만 문명은 살리기 어렵게됐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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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SumRiDa 2017/10/31 05:39

    근데 인류 명말은 막은 되긴
    기술은 엄청 나게 퇴보 하겠네요
    원시시대 이전까지 갈지도...
    모든 기계 장치도 사용 못하고
    농사 지을 곡괭이 낫 이런 것도 못쓸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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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zukinana 2017/11/01 21:53

    과거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죽여도 또다른 히틀러가 나타나서 결국 같은 결과를 낼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모티브 같군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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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용돈30원 2017/11/04 22:38

    우웩~~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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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chernar 2017/11/04 22:46

    오멜라스를 떠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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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wiMyWaifu 2017/11/04 22:48

    12 몽키즈인척 뒷통수를 후려치는 얼얼한 느낌...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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