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음력 4월 14일
다대포진성 전투
역사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많은 한국인들이
임진왜란의 두번째 전투는 음력 4월15일
송상현 장군의 동래성 전투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두번째 전투는 부산진 전투와 같은 날 벌어졌던
서평포진 전투
세번째 전투가 다대포진 전투이다
서평포진 전투에 대한 기록은 현재 남은 것이 없어
주둔한 장수와 병력의 수도, 피해를 입은 백성들의 수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음력 4월 14일 오후
부산진 전투에서 정발 장군을 꺾고,
서평포진도 어렵지 않게 꺾은 왜군은
다대포진에 도달했다
경상좌수영 다대포진첨사는
윤흥신이라는 장수로,
중종~명종 때의 권신인 윤임의 아들이다
윤임의 가문은 을사사화때 멸문되었으나
윤흥신과 그의 동생 윤흥제는
어린나이의 노비라는 이유로 화를 피했다가
선조 대에 윤임이 신원하자 마찬가지로 노비를 벗어나
무관에 임관하였다
다대포진에 주둔한 병력은 약 800으로 추정되며
역시 사료부족으로 정확한 전투양상은 파악할 수 없으나
다대포첨사 윤흥신과 그의 동생 윤흥제는
당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다대포진성 전투는 당시 전쟁 초기의 정보 혼란으로
한동안 전투의 유무도 파악할 수 없었으나,
영조 때에 통신사로 일본에 향했던 조엄이
우연히 다대포진성 전투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여
전투가 있은지 약 171년이 경과하고서야
조선에 알려졌다